(125) 간도는 누구의 땅인가 (下)

첫째, 토문(土門)과 두만(豆滿), 투먼(圖們)은 위치, 지형, 물길, 발음 등이 분명히 다르다. 목극등(穆克登)은 지형을 설명하면서 토문(강)의 물이 끊긴 곳(건천)을 조선에서 표시해달라고 요구한다. 그런데 두만강 선을 고수한다는 조선 정부의 입장을 반영한 박권은 두만강이 그곳이 아니라며 변경할 것을 제안했다. 그러자 목극등은 ‘토문’이 분명하다며 설명까지 덧붙였다. 일부에서는 목극등의 판단에 실수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청나라에는 레지가 정확하게 측량한 뒤 조선의 지도까지 참고해 만든 만주지도가 이미 있었다(1709년 12월 완성). 그렇다면 황제의 명을 받고(奉旨) 국가사업을 실행하는 목극등이 이 지도를 참조했거나 소지했음은 분명하다. 더구나 그는 1차 답사에서 토문강이 송화강과 합수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따라서 그의 목적은 천지(대택)를 포함한 백두산(장백산)을 청나라의 영토 또는 관할권으로 만드는 일이었다.
조선은 이때 백두산과 대택(천지)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청나라에 넘기고 말았다. 다음해(1713년) 9월 중단될 때까지 토문강 상류의 건천(끊긴) 부분에 185개의 흙무더기와 돌무더기를 쌓고 목책을 설치했다.(육락현 <간도는 왜 우리땅인가?>)
또 하나 밝혀야 할 사실이 있다. 만약에 ‘토문’이 ‘두만’이라면 두만강 이북은 청나라 영토여야 한다. 그런데 레지가 측량하고 조선의 지도를 참고해 만든 프랑스인 당빌의 ‘새중국지도’와 1718년 완성된 ‘황여전람도(黃輿全覽圖)’에는 조청의 경계선이 더 북쪽에 그려져 있다. 당빌의 지도를 보면 두만강 하구 약 6㎞ 동쪽 지점에서 시작해 백두산을 가로질러 압록강 상류의 모든 수계를 포함하는 동서산맥에 선을 긋고, 봉황성의 남쪽을 압록강 하구의 대동만에 이르는 지역에 국경선이 그어져 있다. 이는 듀 알드의 ‘중국지’에서도 동일하다. 당빌은 ‘새중국지도’의 서문에서 조선과 청나라의 국경선은 거의 정확하고 완전함을 강조했다.(김득황 <백두산과 북방경계>)

더불어 정계비에 새겨진 ‘압록’과 ‘토문’은 본류만이 아니 수계망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특히 당빌이 만든 ‘새중국지도’ 등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앞으로 정계비 문제는 압록강 이북의 조선 영토 및 국경선과 더불어 해석할 필요가 있다. √ 기억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