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 디지털 경제와 효율성
멕시코가 이렇게 된 것은 효율성을 지나치게 추구한 탓이었다. 효율성이란 가능한 한 적은 자원으로 더 많은 결과물을 내는 특성을 의미한다. 어떤 기업이 기존에 있던 자원이나 새로 확보한 자원에서 더 많은 것을 뽑아낼 때 수익성을 높일 수 있다. 하지만 효율성에만 매몰되면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지 않으며, 새로운 성장의 기반이 될 수 없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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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경제가 침체된 핵심에는 마킬라도라의 확산이 있다. 이는 제품 수출 시 해당 제품 제조에 사용한 원재료와 부품, 기계 등을 무관세로 수입할 수 있는 제도를 의미한다. 1965년 도입된 이후 수많은 외국계 공장이 등장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체결 이후에는 가속화됐다. 마킬라도라에 따른 고용이 증가했고, 수출이 늘었으며 해외 직접투자가 급증했다.

[디지털 이코노미] 멕시코 경제의 발목을 잡은 마킬라도라
멕시코에는 아우디, 포드, 닛산 등의 자동차 공장은 물론 소니, LG, 필립스 등의 전자회사 공장도 많아졌다. 표면적으로는 경제에 더할 나위 없이 좋아 보였다. 이 과정에서 수익을 높이는 핵심은 효율성이었다. 멕시코를 찾는 글로벌 기업들은 이미 포화된 시장에서 조금이라도 수익을 높여야 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경쟁자들과 시장 점유율을 놓고 치열한 싸움을 벌여야 했다. 결국 생산비용을 낮춰 제품의 이윤을 줄이는 방법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었다. 2008년 포드가 멕시코에 조립공장을 세운 이유도 수익성 회복이었다. 멕시코 노동자의 평균 임금은 미국 노동자의 6분의 1 수준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생산된 자동차 대부분을 미국 소비자에게 팔았다. 하지만 자동차 가격이 낮아진 것은 아니었다. 원가 절감을 통해 확보한 수익이 모두 포드와 그 주주들에게 돌아간 탓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원가 절감에도 불구하고 판매량이 늘어나진 않았다. 사실 판매량 증가를 위해서는 마케팅, 광고, 영업에 대한 투자가 늘어나야 한다. 하지만 멕시코에서 투자는 이뤄지지 않았다. 또 다른 문제는 효율성은 어디든 찾아갈 수 있다는 점이다. 더 낮은 임금이 가능한 지역이 나타나면 글로벌 기업들은 지체없이 공장을 옮긴다. 결국 멕시코는 효율성을 추구하며 확보한 자본을 교육이나 의료에 투자할 수 없게 되면서 국가의 번영으로 연결시키지 못했다. 혁신과 효율은 다르다하지만 효율이 아니라 시장 창조로 눈을 돌리면 새로운 기회가 보인다. 멕시코의 제빵 기업 그루포빔보가 대표적이다. 이들이 1945년 창업 당시부터 주목한 소비자는 불투명한 포장지에 싸인 곰팡내 나는 빵만 구입할 수 있던 대다수의 멕시코인이었다. 가장 먼저 선보인 전략은 투명 셀로판지로 빵을 포장하는 일이었다. 소비자는 구입하는 빵에 곰팡이가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들은 신선한 빵을 구입할 여력이 없는 더 많은 멕시코인을 확보하기 위해 투자도 단행했다.

오늘날 그루포빔보는 멕시코에서 두 번째로 큰 제분업체다. 보다 저렴하게 품질 좋은 밀가루를 공급하기 위해 투자한 결과다. 비용적인 부분은 부담이었지만 더 많은 소비자에게 팔리기 시작하면서 제분소는 수익 창출의 기지로 탈바꿈했다. 이후에는 밀을 재배하는 농장에도 투자했다. 당시 대부분의 밀은 비싸고 품질이 떨어지는 수입품이었다. 좋은 품종의 밀을 심도록 하고, 멕시코 농부들이 수확한 밀을 사들였다. 직원들의 주택과 교육, 건강, 출퇴근, 여가활동에도 신경썼다. 이렇게 형성된 시장은 임금이 올라간다고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옮겨갈 수 있는 유형이 아니라 활기차면서도 지역 경제에 깊이 뿌리 내린 지속가능시장이다. 부유함과 번영
김동영
KDI 전문연구원
김동영 KDI 전문연구원
부유함과 번영은 다르다. 가치 있는 천연자원을 많이 보유한 국가는 별로 번영하지 않아도 ‘부유한’ 국가로 분류할 수 있다. 번영은 어떤 지역에서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의 경제적·사회적·정치적 복지를 개선하는 과정이다. 마킬라도라는 멕시코를 부유하게 했지만, 번영하도록 하지는 못했다. 새로운 혁신과 다양한 시장이 존재하는 문화를 낳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으로는 모든 사람을 위한 사회적 계층 이동 가능성이 생겨나지 않고, 부의 근원이 사라졌을 때 번영을 유지할 환경을 만들어내지도 못한다. 번영은 갈수록 더 많은 경제적·사회적·정치적 자유를 가져다주며, 특정 자원에만 의존하는 경향을 줄여준다. 번영을 창출하는 일은 어렵다. 너무나 명백해 보이는 해법이나 자금 지원, 눈에 보이는 인프라 구축과 같은 직접적 투자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디지털 전환으로 경제 발전의 초석을 다지는 오늘날, 효율성이 혁신이 아니며 부유함과 번영은 다르다는, 보다 넓은 시각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