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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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국회의원에겐 유별난 권한이 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행정부에서는 아무리 직위가 높아도, 종교계 지도자도 가질 수 없는 특권이다. 헌법에 있는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에 관하여 국회 외에서 책임을 지지 아니한다’(제45조)는 면책특권이다. 이와 함께 헌법에는 ‘국회의원은 현행범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회기 중 국회의 동의 없이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아니한다’(제44조 1항)는 불체포특권도 있다. 가짜 뉴스를 만들거나 확대 재생산하고, 대형 수뢰 혐의가 있어도 동료들이 슬쩍 막아주면 체포되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 김의겸·노웅래 의원이 대통령 관련 ‘가짜뉴스’ 의혹을 내놓고,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가 짙어도 일반인과 다른 대우를 받는 게 이 특권 때문이다. 국회의원의 면책·불체포 특권, 계속 둘 것인가.[찬성] 행정부 권력 감시 위한 민주주의 전통…입법부 위축되면 국민권한 못 지켜국회의원은 개개인이 국민을 대변하고 대표하는 헌법상 조직이자 기구다. 국민의 대표가 돼 권력, 주로 행정부와 사법부를 당당하게 감시하고 입법부를 지키기 위해 도입된 게 이들 제도다. 국민의 대변자로서 외부 압력에 위축되지 말고 소신껏 국정에 대한 질의를 하고, 의문을 적극 표시하는 등으로 문제 제기를 하라고 국민이 준 권한이다. 면책특권이 있기 때문에 정부 고위관계자를 향해서도 인신 모욕, 명예 훼손, 허위사실 공포 같은 사법적 위험을 무릅쓰지 않은 채 질의나 자료 요청을 할 수가 있다. 그래서 국정감사 기간 외에도 국회가 열리는 동안은 국회에서 활발한 대정부 견제 활동이 가능하다.

불체포특권도 같은 맥락이다. 명백한 현행범이 아니라면 국회가 열리는 회기 중에는 국회 등원을 보장하자는 게 이 권한을 도입한 취지다. 지금은 많이 변했지만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는 국회, 특히 야당 의원에 대한 정치적 탄압이 상시로 반복됐다. 상당한 수준의 선진국이 아니면 정권의 압박·회유·위협이 무서운 형태로 나타났고, 이에 대한 방어수단이 불체포특권인 셈이다.

두 가지 권한 모두 국민의 알 권리 등 기본권 충족을 위한 것이며, 권력 횡포에 맞서 국민을 지키고 대신하는 권리일 뿐이다. 행정부 권력에 의한 입법부의 부당한 체포·구금 배제는 자유로운 국회 기능을 보장하기 위한 방편이다. 국회의원의 이 권한을 없애 입법부 활동이 위축되면 독재권력 출현도 얼마든지 가능해 결국 일반 국민의 손해로 이어진다. 불체포특권은 17세기 영국에서 법제화된 이후 미국 연방헌법에 의해 성문화되면서 헌법상 제도로 발전해온 민주주의 정치의 오랜 전통이다. 면책특권 또한 국회에서 직무상 한 발언과 표결에 대해 국회 밖에서는 책임지지 않게 함으로써 자유발언과 소신 표결을 보장하자는 것으로 결국 국민 대표성 확보를 위한 장치다.[반대] 범죄 의원 보호 수단으로 전락…'민주주의 과잉' 시대 맞게 폐지해야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이 민주주의 역사의 산물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민주주의 과잉’이라 할 정도로 시대상이 달라졌다. 특히 국회는 ‘제왕적 국회’라고 비판받을 정도로 입법부가 행정부 권한보다 더 커진 측면이 있다. 국무총리·장관이 국회에 불려가 쩔쩔매는 모습은 이제 일상사다. 국정감사 기간이 아니고, 국회 상임위원회만 열려도 그런 장면이 연출된다. 참고인으로 불러놓고 형사사건 피의자처럼 대하는 의원들의 기고만장·오만무례한 태도는 무엇을 말하나.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이 남용되면서 국회의원은 민주사회의 신흥 특권층이 돼버렸다.

노웅래 민주당 의원은 자기 집에서 3억여원의 수상한 현금 다발이 나와도 바로 체포되지 않았다. 해명이 비상식적이고 의문점이 쌓여도 동료 의원들은 체포동의안을 쉽게 처리하지 않았다. 뇌물과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이 국회의원 앞에선 정지된 것이다. 일반인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같은 당 김의겸 의원이 기초 사실관계조차 확인하지 않은 채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이 한밤중 악단을 부르고 술판을 벌이지 않았느냐’며 막무가내식 의혹을 제기했어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은 것 역시 면책특권이라는 ‘절대 방패’ 덕이었다.

이런 제도적 특권 때문에 같은 당 의원들은 ‘방탄 국회’를 열어 범죄혐의가 짙은 동료를 보호했다. 여야 구별도 없다. 나쁜 제도가 비리 의원을 보호하는 후진 정치의 극단적 단면일 뿐이다. 입법부의 이런 퇴행을 내버려둬선 안 된다. 그러자면 법을 확 바꿔 불체포특권은 아예 없애고 면책특권도 최소한으로만 남겨야 한다. 그래야 국회의원이 청렴해지고 국회 내 발언에 대해 스스로 책임진다. 국회의원이 절제·자율·책임에 더 앞장서야 정치 개혁도 된다. 그간 많은 정당이 툭하면 이 양대 특권을 없애고 내려놓겠다고 해온 것 자체가 문제가 크다고 자인한 것 아닌가.√ 생각하기 - 정당마다 "특권 내려놓겠다" 자체가 문제 시인…퇴행 정치 만드는 구시대 유물
[시사이슈 찬반토론] 특권 중의 특권 '국회의원 면책·불체포특권', 계속 둬야 하나
법과 제도도 생성·발전 과정을 거치며, 효용가치를 다하기도 한다. 면책·불체포특권이라는 국회의원 양대 특권도 서구에서 처음 생기고 제도로 굳어져올 때는 명백한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시대 환경이 변했다. 안 그래도 논란이 큰 제도를 당사자들이 잘 활용해오지 못한 것도 큰 문제다. 툭하면 ‘방탄 국회’ 시비로 명백한 범죄혐의자까지 감싸면서 ‘특권의 카르텔’을 형성한 측면이 있다. 마구잡이식 의혹 제기, 심지어 가짜뉴스의 확대재생산으로 면책특권을 악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법과 제도가 후진적 정치를 더 뒷걸음치게 만든 것이다. 선거철마다 이 특권을 스스로 없애겠다는 개혁 약속도 한두 차례가 아니었다. 하지만 다급한 국면이 지나면 늘 유야무야 된 게 한국 현대 정치사다. 국민 권리를 내세워 시작된 의회 특권이 국민 권한을 침해하고 스트레스를 주기에 이르렀다. 특권의 조정·폐지로 정치개혁에 나설 때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