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크본드
서울의 한 은행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시장 지표를 확인하고 있다.  한경DB
서울의 한 은행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시장 지표를 확인하고 있다. 한경DB
투자부적격 등급 채권을 뜻하는 ‘정크본드(junk bond)’ 시장이 세계적으로 급속히 위축되고 있다. 재무구조가 취약한 기업들은 자금을 조달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는 뜻이다. 미국 금융정보회사 딜로직에 따르면 올 1~11월 세계 채권시장에서 발행된 투자부적격 등급의 채권은 1375억달러(약 178조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0% 감소했다. 정크푸드처럼 자극적이고 맛있다?인스턴트 음식을 흔히 정크푸드(junk food)라고 부른다. 정크는 쓰레기라는 뜻이다. 몸에 해롭다는 건 알지만 맛있어서 먹는다. 채권시장에서는 신용등급 ‘BB+’ 이하인 채권을 정크본드라고 한다. 위험한 건 알지만 수익률이 짭짤해 그 맛에 투자하는 것이다.

정크본드는 높은 수익률(high yield)을 제시한다는 뜻에서 ‘하이일드 채권’으로 부르기도 한다. 신용이 나쁘면 더 많은 이자를 약속해야 채권을 팔 수 있다. 정크본드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펀드 상품으로 ‘하이일드 펀드’라는 것도 있다. 최근에는 신용도는 낮지만 기술력과 성장성이 뛰어난 중소·벤처기업이 발행한 채권 등으로도 의미가 넓어졌다.

정크본드를 유명하게 만든 사람은 미국 증권맨 출신 마이클 밀컨이다. 1980년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투자부적격 등급 채권에 투자해 ‘정크본드의 황제’라는 수식어를 얻은 인물이다. 당시 밀컨은 재무제표 분석을 통해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에서 우량채권들을 골라내 큰 성공을 거뒀다.

신용도가 낮은 기업이 찍어낸 고위험·고수익 채권인 정크본드는 금융시장의 ‘거품’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잣대가 되기도 한다. 정크본드는 투자자들이 리스크(risk)를 적극적으로 감수하는 활황기에는 매력적인 투자처로 떠오르곤 한다. 하지만 경기가 나쁠 땐 디폴트(채무불이행)라는 최악의 상황도 각오해야 한다. 2010년대 초 재정위기에 빠진 그리스와 헝가리는 국채가 정크본드 등급으로 추락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신용도 낮은 채권, 시장서 외면”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올해는 경기침체와 기업 실적 악화 우려가 높아져 투자자들이 신용도가 낮은 기업의 채권을 꺼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세계 경제가 코로나19 충격으로부터 빠르게 회복한 지난해에는 정크본드 발행 규모가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달 들어 신용등급 ‘CCC’ 이하 기업은 채권 발행이 아예 불가능해졌다는 설명이다.

한국경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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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도 정크본드에 투자한 투자자들이 30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을 것이라는 경고가 나왔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긴축적 통화정책을 이어가면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미국 정크본드 금리가 1980년대 이후로 가장 빠르게 상승했다”고 지적했다. 이미 신용등급이 낮은 미국의 일부 소매기업은 디폴트 직전 단계에 들어선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