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김서정 < 캐릭터는 살아 있다 >
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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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는 ‘소설이나 연극 따위에 등장하는 인물’을 뜻한다. ‘작품 내용 속에서 드러나는 인물의 개성과 이미지’라는 의미도 있다. 소설의 3요소인 ‘인물, 사건, 배경’이 다 중요하지만 인물 설정이 확실하지 않으면 사건을 진척시킬 수 없다. <캐릭터는 살아 있다>에서 분석하는 인물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동화 작품 속의 주인공들이다. 그런 만큼 잘 아는 스토리와 친숙한 인물을 통해 캐릭터의 개념을 확실하게 익힐 수 있다.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캐릭터를 알면 작품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동화작가이자 평론가인 김서정 저자는 ‘학문적 체계보다 상상과 공감을 가지고 캐릭터의 내면을 들여다보고자 했다’고 서문에 밝혔다. 또한 각각의 작품을 쓴 세계적 작가들의 작가론도 함께 실어 작품을 쓴 배경도 엿볼 수 있게 했다.

저자는 동화를 ‘캐릭터의 장르’로 규정하며 동화 속 캐릭터의 세 가지 특징을 제시했다. 첫째 특징은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과 사물을 포함한다는 점이다. 동물과 사물은 의인화되면서 인간적인 성품이나 능력, 특성을 보여준다. 동화 캐릭터의 둘째 특징은 어떤 전형으로 쓰인다는 점이다. 곰돌이 푸우는 태평하고 호기심 많은 아이, 빨강머리 앤은 상상력과 언어의 힘으로 무장한 채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자기 인생을 개척하는 여자아이의 상징이 되는 식이다. 셋째 특징은 사건을 이끌어가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그 힘을 찾아내면 작가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백설공주는 성장형 캐릭터피노키오는 아빠가 하나밖에 없는 외투를 팔아 사준 책을 서커스 입장권과 바꾸고, 학교에 가는 대신 장난감 나라로 도망가고, 거짓말하다가 코가 늘어나는 등 온갖 나쁜 짓과 바보짓을 도맡아 한다. 피노키오의 캐릭터를 제대로 파악한다면 그 말썽이 ‘어린이다운 자기 중심성’으로 이해된다. 피노키오는 바로 눈앞의 일, 자신의 일에만 온통 관심이 쏠려 있을 뿐 결과를 예측하거나 다른 사람을 배려할 만한 능력이 아직 없는 캐릭터인 것이다.

백설공주는 의붓엄마에게 대항하지 못하고, 난쟁이의 도움을 받고, 왕자를 따라가는 수동적인 인물로 보인다. 저자는 이야기 속에 ‘깊은 심리적 의미를 가진 상징을 담은 이야기’라는 의도를 숨겨놨다. 의붓엄마와 사이가 나쁜 것은 아빠 품보다 엄마 품을 떠나기가 더 어렵고, 같은 여자이기 때문에 갈등도 더 많이 생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왕자와의 결혼을 ‘왕족을 동경하는 허황된 행동’으로만 보면 안 된다. 왕자와 공주는 자신의 존재를 가장 빛나고 가치있게 만드는 상태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백설공주는 도움을 받으면서 성장하는 캐릭터인 셈이다.

<오즈의 마법사> 속 도로시는 마법을 전혀 쓸 줄 모르면서 뇌가 없는 허수아비, 양철 나무꾼, 겁쟁이 사자와 함께한다. 모자람을 아는 겸손, 그걸 채우기 위해 험한 길도 마다 않고 가는 의지, 서로서로 돕는 우정, 실망해 주저앉지 않는 낙천성이 바로 도로시의 캐릭터다. 덕분에 도로시는 온갖 신기한 존재들이 사는 놀라운 나라 오즈에서 주인공이 된다. 새 캐릭터 발견, 작품으로 이어져<삐삐 롱스타킹>이 1945년 처음 발표됐을 때 ‘이런 버르장머리 없는 애가 어디 있느냐’며 스웨덴이 시끄러웠다. 큰 집에 혼자 살면서 학교도 안 가고, 돈을 펑펑 쓰고, 사탕을 실컷 먹고, 경찰을 내동댕이치는 아이가 등장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한편으로는 약한 아이를 괴롭힌 심술쟁이, 돈을 훔치러 온 도둑을 물리치는 멋진 일도 한다. 환상 속 아이 삐삐는 ‘권위에 도전’하는 인물인 셈이다. 삐삐는 자기도 모르게 발동하는 아이들의 공격성을 환상 속 놀이를 통해 해롭지 않게 풀 수 있는 캐릭터를 강렬하게 보여줬다.

저자는 좋은 캐릭터를 ‘어떤 보편성과 일관성을 가지고 설명할 수 있는 근거가 있지만, 그런 설명의 범주를 뛰어넘는 개성과 참신함도 있어야 한다’고 정리한다. 한마디로 납득할 수 있으면서 다른 작품과 구별되는 인물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근미 작가
이근미 작가
동화나 소설을 읽으면 그 캐릭터 위로 자신이 아는 주변 사람들이 떠오른다. 어떤 친구는 너무나 또렷하게 하나의 캐릭터와 일치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여러 개의 캐릭터가 겹쳐진다. 캐릭터를 명확히 파악하면 삶 속에서 멋진 캐릭터를 발견할 기회가 오고 거기서 동화와 소설이 시작될 가능성이 있다. 많은 작가들이 주변의 독특한 캐릭터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