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정부 최대 싱크탱크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노인 기준연령을 높이자는 정책제안을 내놨다. 노인연령은 1981년 제정된 노인복지법을 기준으로 보면 40년 넘게 만 65세 그대로다. 2010년께 노인들의 지하철 무임승차 찬반 논란이 크게 빚어졌고, 2015년에는 대한노인회가 70세로 올리자는 전향적 제안을 한 적도 있다. 그사이에도 늘어난 수명과 고령인구로 인한 정부 부담 등을 감안해 크고 작은 사회적 공론과 논란이 반복됐다. 하지만 늘 논의뿐이었다. 생각과 관점도 제각기 다른 까닭이다. KDI는 경제·사회에 미치는 파장을 감안해 2025년부터 10년에 한 살씩 올리자는 점진적 상향조정론을 내놨다. 반면 이 나이가 고령인구의 복지 수혜 기준이 된다는 점에서 시기상조론도 있다. 노인들 사이에도 찬반논란이 분분한 노인연령, 올릴 때가 된 것인가.[찬성] 고령사회에 40년 넘은 65세 기준…재정·청년세대 부담 줄도록 높여야무엇보다 평균 수명이 급격히 늘어났다. 노인복지법 제정 당시 66.1세였던 한국인의 평균 수명이 83.5세(2020년 기준)로 무려 17세 이상 늘어났다. 한국 사회가 고령화사회(65세 이상 고령자가 전체 인구의 7% 이상)를 넘어 2017년 이미 고령사회(14% 이상)에 접어든 상태다. 2026년에는 초고령사회(20% 이상)에 접어든다는 무서운 예측이 대한민국 정부(통계청) 명의로 나와 있다. 경제가 활력을 잃고 복지 부담이 국정의 블랙홀이 되는 초고령사회의 문제점은 수없이 제기돼 있다. 눈앞에 다가선 초고령사회의 치명적 부작용도 문제점이지만, 이행 속도가 과도하게 빠르다는 게 더 큰 문제다.

이런 상황에 노인들의 건강 상태는 전반적으로 좋아졌다. 60대는 스스로도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늙었다는 인식을 잘 갖지 않는다. 정년이 60세로 연장되면서 사회 전반에서 퇴직 연령도 높아져 현직 때의 업무능력을 그대로 유지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60대여도 대개 홀로서기를 충분히 할 수 있는 나이인 것이다. 이런 ‘젊은 노인’들을 상대로 여력도 없는 정부 예산을 동원하는 지원 프로그램이 너무 많다. 지하철 무료 승차만이 아니다. 노인 대상의 여러 복지제도가 65세를 기준으로 시행된다. 나랏빚이 단기 급등하면서 직접 정부 채무만 1000조원을 넘어섰다. 어려운 정부 살림에 경제적으로 여력이 있는 노인들까지 복지 혜택을 줄 이유가 무엇인가.

이 문제는 초저출산율과 함께 봐야 한다. 한국은 합계출산율이 이제 0.75명으로 떨어져 결코 자랑스럽지 못한 세계 1위가 될 정도로 출산율이 낮다. 자연히 경제를 떠받치는 생산가능인구(16~64세)도 크게 줄어드는 판이다. 지금은 생산가능인구 4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고 있지만, 이대로 가면 50년 뒤에는 1명이 1명을 부양하게 된다는 전망까지 나와 있다. 노인 지원도 여건에 따라 달리해야 하겠지만, 당장은 노인의 기준을 올리는 게 먼저다. 그래야 지속 가능한 사회가 된다.[반대] 한국 노인빈곤율 OECD 최상위권…정부 보살핌 필요 계층 많아노인 문제는 종합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한국의 고령층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빈곤이다. 우리 사회가 축적해온 경제적 성취에 비해 노인 개개인에게 축적된 돈이 많지 않다. 노인들이 예금을 많이 갖고 있는 일본과 상당히 대조적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로 봐도 한국의 노인 빈곤 문제는 심각하다.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43.4%(2021년)로 OECD 국가 중에서도 상당히 높은 편에 속한다. 15.3%인 OECD 평균의 세 배에 달한다. 한국에 일하는 노인이 많은 현실적 이유다. 최근의 일자리 통계를 보면 일하는 노인이 줄지 않고 때로는 상당히 늘어나기도 하는데, 경제적 애로가 주된 이유라는 분석이 많다.

이렇다 보니 노인 자살률도 상당히 높다. 노인의 자살이 모두 경제적 이유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경제적 고충과 무관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정부에서 노인을 향한 각종 지원 프로그램과 복지제도를 계속 확충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제 정부와 여야 정당들이 노인복지를 강화하자고 하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노인계층 간 격차가 크고 양극화 현상이 심해진다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가족의 직접 지원을 받을 수 있거나 본인 자산이나 소득 등으로 경제적 여유가 있는 노인도 적지 않지만 아직은 많은 노인이 빈곤층에 머무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노인의 기준을 올리면 노인에서 빠지는 고령자는 홀로 내버려지게 된다. 기초연금과 장기요양보험의 수급 대상에서 제외되고, 지하철 등의 요금도 모두 부담해야 한다면 노인 빈곤율이나 자살률은 올라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노인 기준연령 올리기는 노인의 생명과 생활을 담보로 젊은이들을 살리자는 것”이라는 일부 노인단체 주장에 사회가 좀 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 당장 노인 일자리 사업만 없어져도 타격을 받는 가난한 노인이 도시지역에는 상당히 많다. 지원 대상에서 배제된 취약한 노인은 어떻게든 사회 부담이 된다.√ 생각하기 - 지하철 무임승차 비용만 매년 수천억…한 살씩 점진 상향, 세대 공존 지혜를
[시사이슈 찬반토론] KDI도 가세한 '노인 연령' 높이기, 이번엔 조정해야 하나
노인연령 조정은 고령층 복지 외에 수많은 국가 사회적 문제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매년 조(兆) 단위 적자에 허덕이는 전국 6개 지하철만 해도 65세 이상을 대상으로 하는 무임승차제로 인한 손실이 해마다 2000억~5000억원씩 누적돼간다. ‘소득 하위 70%’가 대상인 기초연금도 이 나이와 연계된다. 2022년 20조원이 필요한 기초연금은 2030년 필요 예산이 50조원에 달할 전망이어서 국가 재정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최근 한 여론조사를 보면 70세 이상을 노인으로 봐야 한다는 응답이 70%에 달했다. 정부와 정치권도 늘 조정의 필요성을 말하지만 선거를 치를 때면 쑥 들어가버린다. 일거에 올리기보다 경과 시간을 두고 한 살씩 올리자는 KDI 주장이 건설적으로 들리는 이유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결정이 더 어려운 과제이기는 하다. 세대 공존의 지혜가 절실해졌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