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지
“농담을 할 땐 :-)라는 문자를 적을 것을 제안합니다.”1982년 9월 19일 미국 카네기멜런대 컴퓨터사이언스학과 교수이던 스콧 팔먼이 학교 온라인 게시판에 올린 글이다. 상대방 표정을 보지 못하고 소통하는 공간인 만큼 특수문자를 활용해 불필요한 오해를 막아보자는 것이었다. 웃는 얼굴을 떠올리게 하는 콜론, 하이픈, 괄호의 이 조합은 ‘세계 최초의 디지털 이모티콘(emoticon)’으로 기네스북에 올라 있다. 문자, 그 이상을 표현하는 언어디지털 소통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이모티콘이 탄생 40주년을 맞았다. 이모티콘은 감정을 의미하는 이모션(emotion)과 기호를 뜻하는 아이콘(icon)을 합친 말이다. 이후 입체적인 그림 형태의 이모지(emoji)로 진화하면서 현대인의 일상 대화에서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팔먼은 최근 CNN 인터뷰에서 “텍스트만 쓸 수 있는 인터넷을 사용하던 시절에는 몸짓이나 표정을 알 수 없어 농담인지 아닌지를 가려낼 수 없었다”며 “누군가 농담을 이해하지 못하고 분노와 적대감으로 반응하면 원래 토론 분위기는 사라지고 다툼만 남게 될 수 있다”고 했다.
1990년대 일본에서는 소프트뱅크, 도코모 등 통신사들이 휴대폰에서 쓰는 이모티콘을 선보였다. 스마트폰과 SNS의 대중화는 이모지의 세계적 확산에 날개를 달아줬다. 친근한 캐릭터가 다양한 콘텐츠와 결합하며 하나의 거대 산업으로 발전했다. 카카오톡에서는 이모티콘이 출시된 2011년 이후 10년 동안 누적 발신량이 2200억 건을 넘어섰다. ‘이모티콘 작가’라는 신종 직업도 등장했는데, 이들의 창작물은 7000억원 이상 수익을 올린 것으로 집계됐다.
세계 여러 언어를 컴퓨터 코드로 표준화하는 업무를 맡고 있는 비영리단체 유니코드컨소시엄에 등록된 이모지 수는 1995년 76개에서 해마다 늘어 2023년 3500개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 애플, 구글 등은 이 단체가 만든 표준을 참조해 이모티콘을 추가하고 있다. 제니퍼 대니얼 유니코드컨소시엄 이모지소위원회 위원장은 “이모지는 언어가 말하지 않는 것을 제공하고, 말의 의미를 명확하게 해준다”고 했다. “인종·장애 차별 안 돼” 피부색 다양해지기도유니코드컨소시엄은 한때 이모지 선정에서 인종, 성별, 성적 지향, 장애 여부 등을 배려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런 지적을 받아들여 2015년 다섯 가지 피부색으로 세분화한 이모지를, 2019년에는 장애인 관련 이모지를 발표했다. CNN은 “이모티콘은 40년 동안 온라인에서, 때론 오프라인에서 대화의 중심이 됐다”며 “디지털 표현 방식을 확장하려는 노력은 작은 대학 게시판에서 출발했지만 글로벌 기술 기업과 이용자들이 동참해 여전히 진행 중”이라고 했다.
팔먼은 이젠 명예교수로 현역에서 한발 물러났지만 인공지능(AI)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그는 “내가 AI 분야에서 어떤 성과를 내더라도 나의 부고(訃告) 첫 문장은 이모티콘 얘기로 시작할 것 같다”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