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디지털경제와 경쟁

무한게임 시각의 디지털전환 전략 필요.
장기적이고 옳은 가치가 단기적인 경제 성과 창출.
베트남 전쟁 당시의 모습을 찍은 사진. 한경DB
베트남 전쟁 당시의 모습을 찍은 사진. 한경DB
미국은 베트남전쟁에서 패배했다고 평가받는다. 객관적인 결과에 비춰보면 다소 의아한 결과다. 사망한 군인의 규모가 대표적이다. 베트남에 주둔했던 10년간 미국은 5만8000명을 잃었다. 반면 북베트남의 인명 피해는 300만 명이 넘었다. 이를 총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로 환산하면 1968년 당시 미국인 2700만 명이 사망한 것과 비슷한 수준이다. 유한게임과 무한게임베트남전에 미국이 패배했다는 표현은 옳지 않다. 그보다 전쟁을 지속할 의지와 자원을 모두 소진해 전쟁을 그만뒀다는 평가가 정확하다. 《인피니트 게임》의 저자 사이먼 시넥은 베트남전을 이해하려면 유한게임과 무한게임의 시각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유한게임은 참여자 전부가 공개되고, 규칙도 정해진 게임이다. 게임의 목적은 상호합의로 정해져 있으며, 어느 한쪽이 그 목적을 먼저 달성하면 게임이 종료된다. 운동경기가 대표적이다. 선수들은 유니폼을 입고 있어 참여자가 식별되고, 명확한 규칙과 심판이 존재해 규칙을 어겼을 때 발생하는 페널티를 받아들인다. 그리고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게임은 끝난다. 반면 무한게임에서는 참여자 전부가 공개되지 않는다. 명문화되거나 상호합의된 규칙도 없다. 참여자 행동을 통제하는 관습이나 법은 있겠지만, 그 범위 내에서라면 얼마든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다. 무한게임은 시간도 무제한이다. 명확한 종료 시점이 없어 사실상 ‘이긴다’는 개념이 성립되지 않는다. 무한게임의 주목적은 게임을 계속하면서 오랫동안 유지해나가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일상생활은 온통 무한게임이다. 학교는 유한하지만 교육 자체에는 승패가 없다. 취직이나 승진 과정에선 경쟁자를 제치고 승리할 수 있지만 전체 커리어에서의 승자는 없다. 국가도 서로 경쟁하며 이득을 따지지만, 국제정치를 이긴다는 개념은 없다. 죽으면서 인생에서 이겼다는 평가를 받는 사람도 없다. 비즈니스와 무한게임무한게임 시각에서 보면 비즈니스에도 승리가 없다. 다들 게임을 하지만 참여자 전원을 알기 어렵고, 새로운 참가자가 언제든 등장할 수 있다. 참여자들은 어떤 전략을 쓸지 스스로 정하며, 게임 규칙도 없다. 끝도 없다. 물론 회계연도 같은 임의의 시간 기준에 따라 경쟁자와 비교하고 평가하지만 정해진 결승선은 없다. 그럼에도 비즈니스를 이길 수 있는 게임으로 인식하는 리더들이 많다. 자신이 최고이며 1등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최고나 업계 1등의 기준도 모호하다. 어떤 회사에서 1등은 가장 많은 고객을 의미하고, 어떤 회사에서는 가장 뛰어난 수익이나 주가를 뜻한다. 최다 직원 수나 전 세계 지점 수가 기준이 되기도 한다. 문제는 경쟁자들도 이런 기준을 인정하느냐다. 축구에는 승리에 대한 기준이 있다. 골 득점 수다. 하지만 무한게임에서는 기준이 여러 개다. 절대적인 승자를 가려낼 수 없다는 의미다. 유한게임은 시간이 지나면 종료되고, 다른 날 시작될 게임을 기다리면 된다. 무한게임은 반대다. 게임은 지속되고, 참여자들의 시간이 다한다. 무한게임에서는 이기고 지는 게 없으므로 게임을 지속할 의지를 잃거나 자원을 다 쓴 참가자가 게임에서 빠질 뿐이다. 혁신과 무한게임유한게임과 무한게임의 사고방식 차이는 변화를 맞이하는 태도다. 유한게임식 사고방식에서 예기치 못한 변수는 환영받지 못한다. 계획에 차질이 생겨 게임에서 질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한게임식 사고에서는 돌발 상황의 가능성을 충분히 이해한다. 예상치 못한 일에서 배울 준비가 돼 있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했을 때 기존 사업모델에 미칠 악영향을 걱정하기보다 기술을 어떻게 적용할지 계획한다. 다른 회사의 행보에 집착하거나 외부의 영향에 휘둘리지 않고 더 큰 목표에 집중한다.

김동영
KDI 전문연구원
김동영 KDI 전문연구원
미국이 베트남에서 철수한 이유도 무한게임을 유한게임으로 접근했기 때문이다. 전쟁의 의지와 자원을 소진하고 게임에서 빠진 것이다. 디지털 전환 시대에 혁신 의지를 불태우는 기업들도 다르지 않다. 먼 미래를 위한 혁신이 아니라 최종 결산 작업에 도움될 만한 혁신만을 시도한다. 장기적으로 옳은 가치를 추구할 때 성공하는 단기적 성과도 많아진다. 정부도, 기업도, 개인도 무한게임을 유한게임의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