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세·규제완화 레이건 경제정책 기초된 '래퍼 곡선'

세율 높으면 기업 투자활동 위축
자연히 세수도 감소한다는 논리
"번 돈 다 세금내면 누가 일하나"

韓 법인 최고세율 22%→25%
2020년 세수 10조원 이상 줄어
증세효과 없고 기업 해외 내몰아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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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가구기업 이케아, 전설적인 록밴드 U2,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 이들에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자신들의 본거지를 떠나 회사를 세우거나 국적 변경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한 목적도 같았다. 세금을 덜 내기 위해서였다.

이들 외에 대기업과 부자들이 고율의 세금을 피해 세율이 낮은 곳을 찾아간 사례는 많다. 이들의 사례는 세율을 높인다고 해서 반드시 정부의 세금 수입이 많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낮은 세율이 오히려 세수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마침 윤석열 정부는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를 추진하고 있다. 야당은 ‘부자 감세’라며 제동을 걸고 나섰다. 새 정부의 감세 정책은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할까. 냅킨에 그린 세율과 세수의 관계만약 세율이 0%라면 세금 수입은 당연히 0이 된다. 세율을 1%로 높인다면 얼마간의 세수가 생길 것이다. 세율을 조금씩 높이면 세수도 따라서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세율이 100%가 되면 세수는 다시 0이 될 수 있다. 개인과 기업이 벌어들이는 돈을 몽땅 세금으로 거둬 간다면 아무도 일하려 하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거둬 갈 세금도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세금의 역설…법인세율 낮춰도 세수는 늘 수 있다
세율과 세수의 이 같은 관계를 나타낸 것이 래퍼곡선이다. 미국 경제학자 아서 래퍼가 제안한 것이다. 래퍼는 1974년 어느 날 워싱턴DC의 한 식당에서 지인들과 식사했다. 훗날 미국 국방장관과 부통령을 지낸 딕 체니, 두 차례 국방장관을 한 도널드 럼즈펠드 등이 멤버였다.

래퍼는 식탁 위에 냅킨을 펴 놓고 종처럼 생긴 ‘역 U’자 모양의 그림을 그렸다. 미국의 세율이 너무 높아 기업 투자 등 경제활동이 위축되고, 그 때문에 세수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 래퍼의 논리였다. 래퍼는 세율을 낮추면 경제가 활성화돼 세수를 늘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가 출범하자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에 들어갔다. 그의 아이디어는 감세와 규제 완화를 핵심으로 하는 레이거노믹스의 기초가 됐다. 한국과 미국의 사례래퍼곡선이 현실에선 어떻게 나타났을까. 래퍼 본인이 분석한 자료가 있다. 그는 미국의 소득세 최고세율이 91%에서 70%로 낮아진 1965년 무렵의 세수를 분석했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미국의 연방 소득세 수입은 세율 인하 전 4년간 연평균 2.1% 증가했다. 세율 인하 후 4년간은 연평균 8.6% 늘었다. 세율 인하 후 세수가 더 큰 폭으로 증가한 것이다. 래퍼는 레이건 전 대통령의 감세 정책도 세수를 더 늘리는 결과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미국은 2018년 최고 35%인 법인세율을 21% 단일 세율로 개편했다. 지난해 미국 법인세 수입은 3720억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사설에서 “세율 인하가 경제활동의 인센티브를 높여 세수가 늘었다”며 “세율을 높이면 기업들은 세율이 낮은 곳을 찾아 떠날 것”이라고 했다.

한국은 법인세율을 꾸준히 낮추다가 2018년 과세표준 3000억원 초과 구간을 신설해 세율을 22%에서 25%로 높였다. 하지만 증세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2019년 법인세 수입은 72조2000억원으로 전년보다 1.8% 증가하는 데 그쳤고 2020년엔 55조5000억원으로 급감했다. 소득보다 크게 증가한 稅 부담래퍼곡선은 세율과 세수의 관계를 설명하는 유용한 모형이지만 비판도 많이 받는다. 세율이 높아짐에 따라 세수가 증가하다가 적정 수준을 넘어서면 세수가 오히려 감소한다는 것이 래퍼곡선의 핵심인데, ‘적정 수준’의 세율이 얼마인지를 알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세율 변화에 경제주체들이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적정 세율은 나라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세율이 같더라도 전반적인 경제 여건에 따라 세수는 달라진다. 세수를 극대화하는 것이 과연 최적의 경제정책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그러나 지나친 세금 부담이 투자와 소비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탈세 등 조세 저항을 불러올 수도 있다. 통계청 가계동향에 따르면 지난 1분기 가계 소득은 평균 10.1% 늘었는데, 세금은 28.3% 증가했다. 1분기 해외 직접투자는 254억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23.9% 늘어난 사상 최대였다. 적정 세율을 추정하기는 어렵지만 과도한 세금이 가계를 짓누르고 기업을 외국으로 내몰고 있지 않은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