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사전에서는 '씨'를 '그 사람을 높이거나 대접해 부르거나 이르는 말'로 풀이한다. 하지만 '높이거나 대접'하되 동료나 아랫사람에게 쓸 때 해당한다. 윗사람에게는 쓰지 못한다는 얘기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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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말 치러진 제15대 대선은 ‘김대중 대통령-김종필 국무총리’ 체제의 공동정부를 탄생시켰다. 대선을 앞두고 성사된 이른바 ‘DJP연합’에 따른 것이었다. 이듬해 8월 국회 본회의장. 대정부질문에 김종필 국무총리가 답변에 나섰다. 총리로서 23년 만이었다.

“공작정치의 장본인인 김종필 씨는 용퇴해야 한다.”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 S의원이 김 총리를 ‘씨’라고 부르며 공세를 펼쳤다. 여당 의원석에서 곧바로 “그만해” “당장 나가”라는 고성이 터져 나오면서 분위기가 순식간에 험해졌다. 이어 나온 여당의 Y의원은 “일국의 국무총리를 어떻게 ‘씨’라고 호칭할 수 있느냐”며 “용어 선택에 주의해 달라”고 질타했다. ‘씨’는 특별한 직함 없을 때 붙이는 말이 일화는 우리말 ‘씨’의 미묘한 쓰임새를 잘 보여준다. 누구나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의외로 용법이 까다롭다. 문법적으로도 명사, 의존명사, 대명사, 접미사 등 여러 가지로 쓰여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그중에서 늘 논란이 되는 것은, 주된 용법인 의존명사로서의 쓰임새다.

이 말은 호칭어와 지칭어 양쪽으로 쓰이는데, 상대가 특별한 직함이 없을 때 무난하게 붙일 수 있어 일상에서 널리 쓰인다. 너무 흔하다 보니 ‘씨(氏)’가 한자어라는 의식도 희박해진 것 같다. 우리말 되살리기에 평생을 바친 한글학자 외솔 최현배 선생은 일찍이 한자어로 된 “김 공(公), 최 형(兄), 박 씨…” 등의 호칭을 순우리말인 ‘-님’으로 대체해 부르기도 했다. 일본 유학 시절인 1920년대 일이다. 100년 가까이 지난 뒤 은행 등 공공장소를 비롯해 인터넷 등에서 ‘-님’의 사용이 활성화된 것을 두고 외솔의 공(功)이라고 하면 지나친 평가일까.

국어사전에서는 ‘씨’를 ‘그 사람을 높이거나 대접해 부르거나 이르는 말’로 풀이한다. 이로 인해 성이나 이름 뒤에 ‘-씨’를 붙이면 그것으로 상대를 높이는 줄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이것은 반만 맞는 설명이다. ‘높이거나 대접’하되 동료나 아랫사람에게 쓸 때 해당하기 때문이다. ‘김종필 씨’ 사건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윗사람에게는 쓰지 못한다는 얘기다.

허다한 ‘OO 씨’에 관한 논란은 사실 윗사람/아랫사람을 어떻게 구분할지에서 발생한다. 주관적인 판단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객관성 시비를 피하려면 국어사전의 풀이를 가져오는 게 나을 것 같다. 《표준국어대사전》은 두 가지 경우를 제시한다. 첫째 나이나 항렬 따위가 자기보다 위이거나 높은 사람, 둘째 자기보다 지위나 신분이 높은 사람이다. 둘 중 어느 하나를 충족해도 우리 문화에서는 ‘-씨’를 쓰지 못한다. 오랫동안 써온 ‘여사’ 사용 무난해특별한 직함이나 직책이 없는 사람에게는 ‘씨’를 붙임으로써 우리말의 적격성을 갖춘다. 하지만 거기에 상대에 대한 권위나 존귀함의 의미까지 담기지는 않는다. 우리말의 호칭에는 상하 계급이 지어져 있다. 우리 언어 의식상 ‘김종필 씨’가 예의 없는 말로 받아들여지는 까닭이기도 하다.

불특정 다수의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글, 대표적으로 신문에서 ‘씨’를 붙일 때도 ‘높이거나 대접’하는 의미가 담긴다. 하지만 이 역시 공식 직함이 없을 때 붙이는 방식이다. 직함이 있을 때는 직함을 쓰는 게 원칙이다. 여성이면서 마땅한 직함이 없는 경우 ‘여사(女史)’를 오래전부터 높임말로 써왔다. 결혼한 여자 또는 사회적으로 이름 있는 여자를 높여 이르는 말이다.

 저자·前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저자·前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영부인(令夫人)은 현대의 특정 시점에서 우리말의 수난사와도 궤를 같이해 온 말이다. 권위주의로 왜곡의 덧칠이 입혀진 대표적 말이다. 요즘은 무거운 한자어를 피하는 세태라 자연스레 ‘부인’이나 ‘여사’로 바뀌어간다. 다만, 간혹 ‘언어민주화’를 앞세워 ‘영부인’이니 ‘여사’니 하는 말을 버리고 ‘씨’를 쓰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주장도 있으나 아직은 이른 감이 있다. 우리 문화가 ‘호칭의 평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는지는 나중에 다른 차원에서 검토해야 할 문제다. 그런 점에서 자연스러움을 거스르는 말은 어법에서든 글쓰기에서든 피하는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