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립토 윈터
코로나19 사태 이후 후끈 달아올랐던 암호화폐 시장이 무너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8000만원을 돌파했던 비트코인 가격은 반년 만에 반토막 났다. 테라와 루나의 폭락 사건으로 투자심리도 크게 악화됐다. 암호화폐업계에서는 “호황이 끝나고 크립토 윈터(crypto winter)가 찾아왔다”는 비관론이 퍼지고 있다. 크립토 윈터는 ‘암호화폐’와 ‘겨울’을 합친 말이다. 암호화폐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장기 약세장에 빠지면서 블록체인산업 전체가 위축되는 시기를 뜻한다. 주가·이익 뚝 … 허리띠 졸라맨 거래소국내외 암호화폐거래소들은 일제히 ‘긴축 경영’에 나서는 분위기다. 미국 최대 거래소 코인베이스는 올해 안에 인력을 세 배로 늘리겠다던 계획을 백지화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코인베이스 직원 4948명 중 약 1700명이 최근 1년 새 뽑혔다. 이 회사는 지난달 “시장 환경 변화를 반영해 채용 속도를 늦추고 사업 우선순위를 조정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의 또 다른 암호화폐거래소 제미니는 직원의 10%를 감원하기로 했고, 중동의 레인파이낸셜은 이미 수십 명을 해고했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푼 유동성을 거둬들이기 시작하면서 주식, 부동산, 암호화폐 등의 자산 거래가 위축되고 있다. 매출의 사실상 전부를 거래 수수료에 의존하는 이들 업체가 직격탄을 맞고 있는 이유다. 코인베이스의 올 1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7% 급감했고, 주가는 역대 최저가로 떨어졌다. 국내 1위 업체 업비트도 1분기 매출이 28.6%, 영업이익은 46.9% 줄었다.

크립토 윈터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비트코인 시세가 한 차례 폭등했다가 주저앉은 4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거품이 붕괴된 2018년 초부터 2년여 동안 관련 회사들의 폐업과 인재 이탈이 이어졌다. 경제매체 CNBC는 최근 암호화폐 거래량 하락이 시장 위축으로 가는 신호 중 하나라고 분석했다. 제미니의 공동창업자인 타일러 윙클보스·캐머런 윙클보스 형제는 “암호화폐산업이 겨울과 같은 위축기에 있다”며 “거시경제 여건과 지정학적 혼란으로 상황이 더 나빠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옥석 가려지는 계기 될 수도”
한국경제신문 기자
한국경제신문 기자
암호화폐업계에 크립토 윈터를 반길 사람은 없겠지만, “무조건 나쁜 일만은 아니다”는 시각도 있다. 이더리움을 만든 비탈릭 부테린은 올초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크립토 윈터는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프로젝트를 확인할 수 있는 시기”라고 했다.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코인들 사이에서 옥석이 가려지는 계기가 된다는 의미다. 베르트랑 페레스 웹3파운데이션 최고경영자(CEO)는 “수많은 닷컴 기업이 있었고 그중 다수는 아무 가치도 창출하지 못하는 사기였던 인터넷 초창기와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

현존하는 암호화폐는 1만9000종을 넘는다. 브래드 갈링하우스 리플 CEO는 “명목화폐는 180개 정도에 불과한데 1만9000개의 새로운 화폐가 필요한가”라며 살아남을 코인은 수십 개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