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플레이션
부산항 신선대부두에서 하역 작업이 이뤄지는 모습. 내수와 투자가 부진한 가운데 수출이 한국 경제를 떠받치고 있다. /연합뉴스
부산항 신선대부두에서 하역 작업이 이뤄지는 모습. 내수와 투자가 부진한 가운데 수출이 한국 경제를 떠받치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나라 1분기 경제성장률이 0.7%에 그쳤다. 우크라이나 사태 등의 충격이 한국 경제를 제대로 강타하기도 전에 0%대로 둔해진 것이다. 반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0년 만에 4%대로 올라서면서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 경제가 슬로플레이션(slowflation)에 빠져들고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내수·투자 부진한 가운데 불안한 성장슬로플레이션이란 경기 회복 속도가 느려지는 가운데 물가만 치솟는 현상을 가리킨다.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과 비슷해 보이지만 경기 하강의 강도가 그보단 약하다는 게 차이점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속보치·전 분기 대비)은 0.7%로 집계됐다. 내수와 투자 모두 부진한 상황에서 수출이 가까스로 경제를 떠받치는 ‘불안한 성장’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분기별 성장률은 일곱 분기 연속 플러스(+)를 기록하긴 했지만 바로 전 분기(1.2%)와 비교하면 0.5%포인트 떨어졌다. 오미크론 대유행과 공급 병목현상 등의 영향으로 민간소비(-0.5%)와 설비투자(-4.0%), 건설투자(-2.4%)가 뒷걸음질한 영향이 컸다. 반도체와 화학제품 등을 중심으로 수출이 4.1% 늘면서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10월을 기점으로 3%를 돌파한 데 이어 최근 4%대로 올라섰다. 통계청에 따르면 3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기 대비 4.1% 올랐다. 2011년 12월(4.2%) 후 10년3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국제 유가와 외식비 등이 물가 오름세를 이끌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의 소비자물가가 올해 내내 4% 안팎의 상승률을 지속할 것으로 내다봤다. 스태그플레이션보다는 약하다지만…한은은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3.0%로 예상한 바 있다. 남은 분기마다 0.7% 수준의 성장률을 유지하면 연간 3.0% 달성이 가능하지만 쉽지 않다는 전망이 나온다. 2분기부터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 중국 봉쇄령 등이 수출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치솟는 물가는 성장률을 더 갉아먹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물가가 뜀박질하면 소비자들의 실질적인 구매력이 줄고, 그만큼 민간소비가 감소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스태그플레이션만큼 심각한 상황은 아니지만 슬로플레이션은 확실시된다”고 말했다. 한은도 이달 내놓을 새 경제 전망에서 올해 성장률 예상치를 기존 3.0%에서 2%대로 낮출 가능성이 거론된다.

[임현우 기자의 키워드 시사경제] 경기 회복 느려지는데…소비자물가는 뜀박질
슬로플레이션은 한국만의 고민거리는 아니다. 코로나19 사태 대응 과정에서 막대한 유동성이 풀린 가운데 각국은 물가 상승을 통제하기 위해 금리 인상 속도를 끌어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경제 여건이 탄탄하지 않은 상황에서 금리를 올리면 결국 경기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를 낼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