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 식물은 봄이 온 것을 어떻게 알까?
낮이 길어지고 기온이 오르면서 여기저기서 봄을 알리는 꽃이 피어나고 있다. 산수유꽃, 진달래꽃, 개나리꽃, 목련꽃, 벚꽃은 봄이 온 것을 어떻게 알고 때맞춰 꽃을 피울까. 식물이 계절이나 특정 시간에 맞춰 꽃을 피우는 개화 메커니즘은 오래전부터 과학자들의 큰 관심거리였다. 식물이 어떻게 계절을 인지하는지에 대한 힌트는 돌연변이 변종 담배인 메릴랜드 매머드에서 나왔다.
[과학과 놀자] 아름다운 봄꽃들은 빛과 온도가 빚은 합작품
외부 빛을 차단한 식물의 생육 장치 안에서 조명으로 낮과 밤의 길이를 조절했더니 낮의 길이가 14시간보다 짧아졌을 때 이 식물이 꽃을 피웠다. 과학자들은 이 식물처럼 낮의 길이가 특정 시간보다 짧아야 개화되는 식물을 단일식물이라고 불렀다. 국화와 포인세티아, 일부 대두 변종이 단일식물에 속하며 일반적으로 늦은 여름이나 가을 혹은 겨울에 꽃을 피운다. 낮 길이가 특정 시간보다 길어야 꽃을 피우는 식물은 장일식물이라 부른다. 일반적으로 늦은 봄이나 초여름에 꽃을 피운다. 시금치는 낮 길이가 14시간 이상 돼야 꽃을 피우며 무와 상추, 붓꽃, 그 외 많은 곡물류가 장일식물이다. 낮의 길이가 개화 시기에 영향을 주지 않는 식물을 중일식물이라고 하는데, 이런 식물은 특정 생장 단계가 돼야 꽃을 피운다. 토마토와 벼, 민들레 따위가 중일식물에 속한다. 저온 노출 거쳐야 꽃 피우는 식물도1940년대에 과학자들은 개화 시기가 실제로는 낮의 길이가 아니라 밤의 길이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알아냈다. 단일식물의 경우 낮 기간 중 잠깐 동안 암 처리를 해도 개화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지만, 밤 기간 중 몇 분간만 희미한 빛을 비춰도 꽃을 피우지 않았다. 실제로 단일식물인 도꼬마리의 경우 최소 8시간 이상 계속적인 암 처리를 해야 꽃을 피웠다. 단일식물은 실제로 장야식물이지만 단일식물이라는 용어가 식물생리학 분야에서 너무 확고하게 자리 잡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장일식물 역시 실제로는 단야식물이다.

일부 식물은 저온처리 등 특정 환경요인에 미리 노출된 경우에만 밤과 낮의 상대적인 길이(광주기)에 반응한다. 예를 들어 겨울밀은 10도 이하의 온도에 여러 주 동안 노출된 뒤에야 비로소 꽃을 피운다. 개화를 유도하기 위해 미리 저온처리를 하는 것을 춘화처리라고 하는데 춘화처리된 겨울밀은 장일 조건(단야 조건)의 광주기를 조성해주면 개화가 유도된다. 봄꽃은 겨울밀처럼 오랜 기간 저온 환경을 겪어야 꽃을 피우고, 커피나무는 기온이 급속하게 떨어져야 꽃을 피운다. 그리고 온도에 따라 꽃잎의 안쪽과 바깥쪽의 생장 속도가 조절되기도 한다. 온도가 높으면 안쪽 꽃잎이 더 빨리 생장해 꽃이 피고, 온도가 낮으면 바깥쪽 꽃잎이 더 빨리 생장해 꽃이 진다.

식물체에서 일어나는 많은 작용은 하루 동안 주기적으로 변한다. 빛과 온도, 습도 같은 환경요인이 변화하지 않고 일정한 상태를 유지하도록 조절한 생육장치 안에서 식물을 키워도 기공의 개폐와 광합성 관련 효소의 합성 같은 식물체의 생리 작용은 24시간을 주기로 계속 변했다. 이처럼 외부 요인과 상관없이 약 24시간 주기를 갖고 반복되는 것을 일주기성 리듬(circadian rhythm)이라 한다. 생명체가 외부 환경 변화가 없는 일정한 환경에 놓이면 일주기성 리듬은 24시간 주기로부터 다소 벗어난다. 예를 들어 콩과식물의 잎은 저녁에는 아래로 처지고 아침에는 위로 들려지는데(이런 현상을 수면 운동이라고 한다), 이 식물을 어두운 장소에 계속 두면 수면 운동은 26시간의 주기를 갖게 된다. 빛이 생체시계 24시간 주기로 맞춰생체시계를 매일 정확하게 24시간 주기로 맞춰주는 것이 빛이다. 피토크롬과 청색광 수용체들은 모든 식물에서 일주기성 리듬을 조절할 수 있다. 식물은 자연 상태에서 피토크롬과 생체시계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밤과 낮의 상대적인 길이를 알 수 있다.

임혁
경기고 교사
임혁 경기고 교사
식물의 개화 시기가 광주기와 온도에 따라 결정된다는 점이 분명해진 뒤 개화 메커니즘의 구체적인 작동 기작에 대한 연구가 이어져 개화신호물질(FT단백질)과 그 유전자(FT유전자)가 발견됐고, 광합성 시간이나 개화 시기를 결정하는 유전자도 발견되었다. 또한 일주기성 리듬을 관장하는 특정 유전자군의 발현과 같은 분자 수준에서의 기작이 발표되기도 했다.

곳곳에서 피어난 봄꽃을 바라보면 움츠렸던 마음도 어느새 풀리고 여유를 갖게 된다. 봄꽃을 볼 때 겨우내 앙상했던 나무가 사실은 밤낮의 길이와 기온을 꾸준히 살피며 수많은 물질을 만들면서 꽃피울 시기를 준비했다는 생명 활동의 섬세함을 떠올려본다면 봄꽃을 감상하는 즐거움이 더욱 커질 것이다.
[과학과 놀자] 아름다운 봄꽃들은 빛과 온도가 빚은 합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