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디지털경제와 시장지배력

기업의 시장지배력 강화는 노동자 자본가의 삶과 밀접.
[디지털 이코노미] 세계 2대 맥주기업이 합치니 일자리가 줄어드네
칼도어가 찾아낸 규칙성은 오랜 기간 유지됐다. 헝가리 태생이면서 영국 런던경제대 교수였던 니콜라스 칼도어는 전체 국내총생산(GDP)에서 노동과 자본이 차지하는 몫은 언제나 각각 3분의 2와 3분의 1 수준이라는 점을 밝혀냈다. 경제구조가 농업에서 제조업 중심으로 변할 때도 이 규칙은 변하지 않았다. 경제학에서는 이 놀라운 규칙성을 ‘정형화된 사실’이라고 표현해왔다. 낮아지는 노동의 몫하지만 1980년대를 지나며 다른 양상이 전개되기 시작했다. 1970년대 65% 수준이었던 노동의 몫은 2017년 59%로 크게 떨어졌다. 이는 특정 국가를 넘어 다른 많은 국가에서 관찰되는 현상이었다. 1980년대 이전까지는 칼도어의 정형화된 사실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경제학자들은 당황했다. 많은 경제학자가 이를 설명하려 했지만, 설득력 높은 근거를 찾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시장지배력이 노동과 자본에 돌아가는 몫을 줄이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판매상품에 대해 시장지배력을 지닌 기업은 더 적게 생산해 더 높은 가격에 판매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를 통해 기업은 임금을 낮추고, 채용노동자 수를 줄일 수 있다. 맥주시장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세계 맥주산업의 두 거인인 앤하이저부시와 인베브는 합병을 통해 시장지배력을 높인 뒤 더 비싼 가격에 더 적은 수량의 맥주를 판매한다. 합병 전 앤하이저부시는 ‘버드와이저’를, 인베브는 ‘스텔라 아르투아’를 판매했다. 합병 전 맥주 한 병을 2달러에 판매할 때 버드와이저 수요는 2000병이었고, 스텔라 아르투아 수요는 3000병이었다. 합병 후에는 맥주 가격을 3달러로 올렸다. 그러자 수요는 각각 1500병과 2500병으로 감소했다. 가격 인상으로 전체 수요는 5000병에서 4000병으로 감소했지만, 합병 후 수입이 1만달러에서 1만2000달러로 늘었다. 맥주 가격 상승은 소비 감소를 의미하고, 이에 따라 생산도 감소한다. 맥주회사는 생산을 위해 더 적은 자본을 투자하며, 더 적은 수의 노동자를 채용한다. 이에 따라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몫도 하락한다. 만약 업종마다 이런 지배기업이 존재한다면 경제 전체의 임금이 낮아져 노동분배율이 감소하는 것이다. 낮아지는 자본의 몫낮아지는 것은 노동의 몫만이 아니다. 자본의 몫도 낮아질 수 있다. 시장지배력을 바탕으로 더 높은 가격을 책정하고 더 적게 생산할 수 있게 된다면, 이전보다 더 적은 수의 노동자가 필요하고 더 적은 자본투자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본은 다시 생산자본과 비생산자본으로 구분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같은 자본이라도 시장지배력을 바탕으로 한 변화는 미치는 영향이 다르다. 집을 구입해 재임대하고자 할 때 집을 구입할 때 사용한 2억원과 더 높은 임대료를 받기 위해 인테리어에 사용한 2000만원 모두 자본으로 표현된다. 인테리어 없이 받을 수 있는 월세가 50만원이고, 인테리어 후에 80만원을 받을 수 있다면 이 수익이 2000만원의 비용을 넘어선다고 판단될 때 투자를 결정할 것이다. 그리고 이 투자금액을 넘어서는 수익은 이윤이 된다. 여기서 집을 구입할 때 들인 2억원은 단순히 소유권만 변경하는 용도이며 원칙적으로 집에 가치를 추가하지 않았다. 하지만 두 종류 모두를 투자라 부르며, 이때 지급한 돈을 모두 자본이라 부른다. 높아진 시장지배력은 생산자본의 투입을 줄임으로써 이에 돌아가는 몫은 줄이는 반면 비생산자본에 돌아가는 몫은 높인다. 1970년대 GDP의 3%에 불과했던 이윤이 오늘날 12%로 높아진 이유다. 시장지배력과 수요독점
김동영
KDI 전문연구원
김동영 KDI 전문연구원
한편 기업의 높은 지배력은 노동시장에서의 수요독점을 형성한다. 이 같은 노동의 수요독점은 저임금 현상으로 이어진다. 노동을 공급하는 근로자 입장에서 나의 노동력을 판매할 기업이 단 하나밖에 없는 상황이 되면 노동자 간 노동공급 경쟁은 과열되고, 기업은 더 낮은 대가(임금)를 지급할 것이다. 이처럼 특정 기업 중심의 높은 시장지배력은 나의 삶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분명 기업친화적 정책과 시장친화적 정책은 다르다. 많은 분야에서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이전에 없던 시장지배 형태가 나타나는 오늘날, 경쟁이 보장된 자본주의 체제가 유지될 수 있는 정책적, 제도적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