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 조선 건국은 정변인가, 혁명인가 (上)
경복궁 전경. 1395년 완공한 경복궁은 한양을 수도로 정한 정도전의 계획으로 건립됐다.
경복궁 전경. 1395년 완공한 경복궁은 한양을 수도로 정한 정도전의 계획으로 건립됐다.
조선의 건국에는 ‘역성혁명’이란 수식어구가 따라붙는다. 왕조의 개창은 혁명에 해당할 수 있는 대사건이다.

우리 역사에는 혁명에 해당하는 사건이 많지 않았으므로 정의와 개념, 평가에 대해 공감할 만한 기준이 없다. 혁명은 꼭 필요한 것일까? 어떤 상황에서, 어떤 방식으로 추진해야 하는 걸까. 성패의 기준은 무엇이며, 책임은 어느 단계까지 져야 하는 걸까.

고구려 건국은 정권 교체나 새 나라의 건국이라는 범주를 벗어나, 중국적인 질서와 구시대를 타파한 후 신체재와 원조선 문화의 회복을 실행한 혁명이다. 주몽이 선언한 ‘다물(옛 땅을 수복한다는 고구려말)’의 의미는 그것이다. 왕건의 고려 건국 또한 정변을 넘어 사회체제의 전면적인 변혁을 가져온 혁명이다. 그렇다면 ‘역성혁명’이 따라붙는 조선의 건국은 어떤 혁명이며, 성패와 공과는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3단계로 보는 조선의 건국 과정조선의 건국 과정은 3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1단계는 위화도 회군과 개혁파들의 등장이다. 고려 말은 원나라의 압박과 친원파의 발호, 그들과 결탁한 권문세족들의 부패로 인해 이미 붕괴가 많이 진행된 상황이었다. 체제 불안이 심각했고, 민란도 발생했다. 대다수가 개혁의 필요성을 공감했고, 명분도 충분했다. 이에 공민왕을 비롯한 신진 사대부를 중심으로 많은 이들이 참여했다.

문제는 외부상황이었다. 원나라와 명나라가 교체되는 과정에서 무력충돌이 일어났고, 북원의 침략과 명나라의 간섭은 고려에 직접 영향을 끼쳤다. 홍건적들이 대거 국경을 넘어 개경이 함락당하는 지경이었다. 13세기 말부터 시작된 왜구들의 침입은 전 해안 지역에서 창궐했다. 국가의 안위가 심각한 수준이었으므로 최영, 이성계 같은 신흥 무인들이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런데 국론과 국력, 자원의 통일이 절실한 상황 속에서 신진 사대부들은 조직적으로 개혁을 준비했다. 그런데 요동공격을 목표로 국경을 넘던 이성계의 5만 대병력이 ‘위화도 회군’이라는 군사정변을 일으켜 최영을 죽이고 우왕을 끌어내렸다. 이성계와 손잡은 개혁파들은 왕을 옹립해가면서 권문세족을 제거하고, 과전법을 추진해 토지의 재분배를 통해 자기 재산을 증식했다. 정변은 결과적으로 성공했지만, 안보 위기라는 상황 속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모험이었다.

2단계는 개혁파의 분열과 조선의 건국이다. 이성계, 정도전 등 급진 개혁파들은 고려의 멸망과 새 나라의 건국을 추진했다. 반면에 정몽주·길재 등을 비롯한 온건 개혁파들은 외부상황과 고려에 대한 충성을 고수하느라 다른 주장을 펴고, 적대적인 행동을 했다. 결국 이방원(훗날 태종) 등 급진파는 반대파를 피로 숙청한 후 조선 건국에 성공했다. 그런데 이들이 안보위기를 감수하면서 과감하고 신속하게 추진한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정변을 추진한 배경과 힘급진 개혁파의 정변 추진 배경으로는 자신감과 자기 확신을 들 수 있다.

정도전을 비롯한 이들은 정책 경험들이 있고, 외교관으로 국제정세를 파악하는 능력이 있었다. 정변의 과정과 건국 직후에 조선의 국호 선택과 왕의 즉위 허락 등 명나라와 벌인 외교와 왜구 처리 과정을 보면 자신감도 있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이성계는 요동 전투를 두 번 치른 명장으로 왜구와 명의 움직임을 전략적으로 판단할 능력이 있었다. 그렇다면 유사시 적을 방어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정변을 추진했을 가능성이 있다. 과정과 결과가 어떠하든, 정변은 백성들의 생존과 나라의 운명을 걸고 벌인 일들이었다. 만약 실패했다면 주도자의 다수를 차지하는 인재들도 대거 희생됐을 것이다. 또한 정변에 관심도 없고, 결과에 책임도 없을 뿐 아니라, 큰 혜택도 받지 못할 백성들이 희생당했을 가능성도 크다. 역사를 살펴보면 혁명을 계획하고 주도한 부류들이 실제로 다수의 백성을 고려한 흔적들은 별로 없다.

그렇다면 개혁과 정변을 주도한 신진사대부들은 어떤 사회적 성분과 사상적인 성격을 갖고 있었을까. √ 기억해주세요
윤명철 동국대 명예교수·사마르칸트대 교수
윤명철 동국대 명예교수·사마르칸트대 교수
고구려 건국은 정권 교체나 새 나라의 건국이라는 범주를 벗어나 중국적인 질서와 구시대를 타파한 후 신체재와 원조선 문화의 회복을 실행한 혁명이다. 주몽이 선언한 '다물(옛 땅을 수복한다는 고구려말)'의 의미는 그것이다. 왕건의 고려 건국 또한 정변을 넘어 사회체제의 전면적인 변혁을 가져온 혁명이다. 그렇다면 '역성혁명'이 따라붙는 조선의 건국은 어떤 혁명이며, 성패와 공과는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