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 암흑 물질 찾을 수 있을까
은하단 두 개가 정면 충돌하고 있는 총알 은하단(Bullet Cluster). 엑스레이로 관측한 핫가스(핑크색)는 은하단 하나가 다른 은하단을 총알처럼 관통하는 모양새인데, 중력 렌즈를 통해 추정한 질량 덩어리(파란색)는 완전히 따로 놀고 있다. 이를 통해 은하단의 질량 대부분은 가스가 아니라 다른 물질로 이루어져 있으며, 가스와 완전히 다른 속성을 가지고 있음을 추측할 수 있다.  NASA 제공
은하단 두 개가 정면 충돌하고 있는 총알 은하단(Bullet Cluster). 엑스레이로 관측한 핫가스(핑크색)는 은하단 하나가 다른 은하단을 총알처럼 관통하는 모양새인데, 중력 렌즈를 통해 추정한 질량 덩어리(파란색)는 완전히 따로 놀고 있다. 이를 통해 은하단의 질량 대부분은 가스가 아니라 다른 물질로 이루어져 있으며, 가스와 완전히 다른 속성을 가지고 있음을 추측할 수 있다. NASA 제공
1963년 천문학자 베라 루빈은 나선은하 가장자리에 있는 별들이 아주 빨리 돌면서도 은하 밖으로 튕겨 나가지 않는다는 걸 관측했다. 탈수기에 넣고 돌린 빨래에서 물이 떨어져나가지 않는 것처럼 이상한 일이지만, 은하에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질량이 숨어 있다고 가정하면 설명이 가능하다. 질량의 역할을 할 것으로 유추 가능한 것은 암흑 물질(dark matter)이다.

암흑물질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은하에 존재하며 중력을 통해 별들의 궤도에 영향을 미친다. 암흑 물질은 이름처럼 어둡기보다 투명하다. 예를 들어 태양 내부에는 암흑 물질이 잔뜩 모여 있을 가능성이 높지만, 주황색으로 빛난다. 은하에 고요히 존재하는 암흑 물질은 태양이 지구를 달고 220㎞/s의 속력으로 지나칠 때 우연히 우리의 몸을 통과하기도 할 것이다.

과학자들은 암흑물질에 의해 시공간이 휘는 중력 렌즈 효과, 두 개의 암흑물질 덩어리가 서로를 본체만체 스쳐 지나가는 총알 은하단(Bullet Cluster) 등 다양한 현상을 관측해 암흑물질의 존재를 재차 검증했다. 암흑물질이 우주 에너지 지분의 27%를 가지고 있다는 구체적인 정보까지 손에 넣었는데, 이는 우주배경복사(CMB·Cosmic Microwave Background) 데이터를 분석해 얻은 결과다. 또 시뮬레이션을 통해 초기 우주에 무거운 암흑물질이 충분히 존재해야 시간이 흐르며 큼직큼직한 중력의 구심점들이 만들어지고, 그로부터 은하와 별이 탄생할 수 있음을 추론해 냈다.

오늘날 대부분의 과학자가 암흑물질의 존재를 인정하기에 이르렀음에도 암흑물질을 ‘찾는 것’은 큰 숙제로 남아 있다. 1980년대에 들어서며 천문학의 영역이던 암흑물질이 입자물리학자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암흑물질이 표준 모형의 기본 입자 카탈로그에 속하지 않는 새로운 입자로 이루어져 있을 것이라는 예측 때문이다. 암흑물질이 입자라면 미시 세계에서 어떤 식으로 다른 입자들과 상호 작용하는지를 알아내는 것이 암흑물질에 대해 아는 셈, 암흑물질을 ‘찾는’ 셈이 된다.

우주에 우리가 아는 힘은 중력, 전자기력, 약력, 강력 등 네 가지다. 암흑물질이 이들 중 하나로 상호 작용하지 않는다면 보거나 만질 방법이 아예 없을 수 있다. 상호 작용을 하는 암흑물질은 다른 입자들처럼 빅뱅 직후 우주를 채웠던 뜨거운 입자 수프에서 시작해 점점 식으며 현재의 우주에 이르기까지 족적을 남겼을 수 있다. 이 족적을 계산한 결과는 많은 물리학자에게 전율을 일으켰다. 윔프(WIMP·Weakly Interacting Massive Particle)라는 입자가 있다면 현재 암흑물질의 에너지 지분에 들어맞을 뿐 아니라 표준 모형의 다른 문제점(첫 번째 문제점은 암흑물질 후보가 그 안에 없다는 거다)의 해결책으로 제안된 초대칭 이론도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초대칭 이론은 현재 지구상에서 제일 큰 입자가속기LHC(Large Hadron Collider)를 지은 원동력이다. 게다가 WIMP 입자와 핵자의 상호 작용을 관측하기 위해 필요한 검출기의 사이즈를 따져 보니 대략 1t 내외. 물리학자들이 힘을 합치면 수년 내에 충분히 지을 수 있는 규모다. 1980년대부터 지구의 열 군데가 넘는 터널 또는 광산에 암흑물질 검출기가 들어서며 ‘WIMP 먼저 찾기’ 경쟁이 시작됐다.

과학자들에 대한 오해를 간혹 접한다. 예를 들어 과학적으로 밝혀진 사실이 아니면 말도 못 꺼내게 한다거나 (실은 과학자들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걸 말하는 데 훨씬 공을 들이는 사람들이다), 과학의 힘으로 뭐든지 할 수 있다는 확신에 차 있을 거라는 오해들이다. 2022년 2월 현재 세계 어느 땅굴에서도 암흑물질을 찾았다고 전해오지 않고 있고, LHC에서 그런 입자를 봤다는 소식도 없다. 만약 암흑물질이 WIMP가 아니라면 지금까지 찾던 방식으로는 찾지 못할 수 있다. 과학자들은 더 큰 땅굴을 파는 경쟁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아직 안 찾아본 다양한 후보를 탐색할 방법을 궁리 중이다. 이는 WIMP 찾기보다는 더 막막해 보인다. “우주가 친절하다면 알아낼 수 있을 거야.” 과학자들이 종종 하는 말이다. 우주의 속성이 지구상 과학자들이 끌어다 쓸 수 있는 자원의 한계 내에 있어야 알아낼 수 있다는 뜻이다. 모든 걸 알아낼 수 있을 거라고 자만하지 않는다는 겸손의 말이기도 하다. √ 기억해주세요
최고운 
기초과학연구원(IBS)·지하실험연구단 차세대연구리더
최고운 기초과학연구원(IBS)·지하실험연구단 차세대연구리더
암흑 물질이 우주 에너지 지분의 27%를 가지고 있다는 구체적인 정보까지 손에 넣었는데, 이는 우주배경복사(CMB·Cosmic Microwave Background) 데이터를 분석해 얻은 결과다. 또 시뮬레이션을 통해 초기 우주에 무거운 암흑 물질이 충분히 존재해야 시간이 흐르며 큼직큼직한 중력의 구심점들이 만들어지고, 그로부터 은하와 별이 탄생할 수 있음을 추론해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