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은 야채나 곡류를 심고, 논은 벼를 심어 가꾸는 땅이다. 밭에는 물꼬를 따로 트지 않고 논에는 물을 대 농사짓는다는 점도 큰 차이다. 밭과 논을 뜻하는 한자 '田'과 '畓'에 그 모든 게 담겨 있다.
새해 벽두에 불거진 정치권의 ‘전·답 해프닝’은 우리말 인식을 둘러싼 단면 하나를 보여준 것 같아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정치적 공방은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다. 사건 발단에서 엿볼 수 있는 우리말 현주소를 돌아보고, 함께 고민하는 계기로 삼는 데 의미가 있다. 이미 알려진 사실이지만 우리말 관련 부분을 중심으로 되짚어 보자. 한자어 ‘전·답’보다 고유어 ‘논·밭’이 쉽고 편해1월 초 한 정당에서 상대 당 대선후보 가족의 농지법 위반 의혹을 제기했다. 근거 자료로 농지 취득 당시 농업경영계획서 등에 지목을 ‘답’, 재배 예정 작물을 ‘벼’로 적은 사실을 지목했다. 그러면서 “‘답’인 해당 농지에 논 작물인 ‘벼’를 재배하겠다고 신고했다”며 “전과 답도 구분하지 못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밭에서 쌀농사를 짓겠다고 신고할 정도로 농사에 무지하다”고도 했다.하지만 정작 논과 밭을 구분하지 못한 것은 문제를 제기한 당이었음이 곧 드러났다. ‘밭 전(田), 논 답(畓)’인데, 이를 뒤바꿔 말했기 때문이다. 밭은 야채나 곡류를 심고, 논은 벼를 심어 가꾸는 땅이다. 밭에는 물꼬를 따로 트지 않고 논에는 물을 대 농사짓는다는 점도 큰 차이다.
밭과 논을 뜻하는 한자 ‘田’과 ‘畓’에 그 모든 게 담겨 있다. 田은 경작지의 모양을 본떠 만든 글자다. 밭의 경계와 이랑을 그린 것이다. 畓은 ‘물 수(水)’와 ‘밭 전(田)’ 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물을 대어 농사지을 수 있는 농경지, 즉 ‘논’을 나타낸다. 그러니 “‘답’에서 벼를 재배하겠다고 했다”고 비난한 데서 이미 이들이 ‘답(논)’을 밭으로 착각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한자어 ‘전’과 ‘답’은 실생활에서 단독으로 잘 쓰이진 않는다. 한자 의식이 점차 흐려져 가는 요즘 그 뜻을 잘 모르는 이도 있을 것이다. 전답(田畓) 문전옥답(門前沃畓) 천수답(天水畓) 상전벽해(桑田碧海) 아전인수(我田引水) 이전투구(泥田鬪狗) 과전불납리(瓜田不納履) 등의 한자말에 스며들어 있다. 이 정도 단어는 우리말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어휘이므로 알아두는 게 좋다. 이에 비해 ‘논’과 ‘밭’은 일상에서도 활발히 쓰인다. 순우리말로, 각각에 해당하는 한자어 ‘답’과 ‘전’의 쓰임새를 압도한다. ‘논, 밭’이란 글자 형태는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15세기에서부터 나타나니 무려 600년 가까이 우리 민족의 삶과 함께한 말이다. 그만큼 친근하고 살가운, 누구나 아는 우리말이다. 단어 구성 원리 알아야 비로소 말도 정교해져글쓰기는 단어의 선택에서 시작한다. 이때 단어는 전달하려는 의미에 가장 적합하고 정확한 것을 골라야 한다. ‘어휘력’이 문장 구성의 토대가 된다는 뜻이다. 정치권의 ‘전·답 공방’은 단어의 의미와 용법을 제대로 알지 못해 빚어진 해프닝이었다. 우리말에 대한 인식이 많이 좋아지기는 했지만, 말을 정교하게 논리적으로 쓰는 데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그런 사례는 주변에서 넘쳐난다.
애경사는 살아가면서 늘 겪는 일이다. 그중 하나. 남의 부고를 접하곤 무심코 “영면하시길 빕니다”라고 말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이런 말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영면(永眠)’은 영원히 잠든다는 뜻으로, 사람의 죽음을 이르는 말이다. 그러니 이미 영면에 드셨는데 또다시 영면을 빈다고 하니, 성립하지 않는 표현이다. ‘영면에 들다’ ‘영면하셨다’처럼 쓰는 말이다.
“실향민들의 애환을 달래주는 고향의 맛.” 이런 말을 들으면 곧바로 잘못 썼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어야 한다. ‘슬플 애(哀), 기뻐할 환(歡)’, 애환은 슬픔과 기쁨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삶의 애환이 서려 있다’처럼 쓴다. 흔히 ‘애환을 달랜다’고 하는데, 슬픔은 달랠 수 있어도 기쁨을 어떻게 달래는 것인지 궁금하다. 십중팔구 말의 구성을 모르는 데서 오는 잘못된 용법이다. 단어 의미와 용법을 정확히 알고 써야 말에 논리가 생기고 우리말도 바로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