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심(從心)'은 공자가 '칠십이종심소욕불유구(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논어》 위정편)라고 한 데서 연유한다. "나이 일흔에 마음이 가는 대로 행하여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다"라고 했다. 인격적으로 완성된 상태에 이르렀음을 뜻하는 말이다

당나라 때 시인 두보는 <곡강시(曲江詩)>에서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 즉 사람이 70까지 사는 것은 예로부터 드물다고 했다. 여기서 칠순을 가리키는 말 ‘고희(古稀)’가 유래했다. 희수(稀壽)나 희년(稀年)도 ‘드문 나이’라는 뜻에서 생긴 말이다. ‘희대(稀代)의 사기극’ 같은 표현에 이 ‘희(稀)’ 자가 쓰였다. 모두 ‘드물 희(稀)’ 자를 안고 있음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 말이 어울려 쓰인 말 중에 ‘희한하다’는 표기를 주의해야 한다. ‘드물 희(稀), 드물 한(罕)’ 자인데, 둘 다 어려운 한자이므로 굳이 외울 필요는 없다. 다만 자칫 ‘희안하다’로 잘못 쓰기 십상이니 한글 표기를 외워둬야 한다.
수로(垂老)는 70에 이른 노인을 가리키는 말이다. ‘드리울 수(垂)’에 ‘늙을 로(老)’ 자다. 이때쯤 늙음의 장막이 드리운다는 뜻이다. 수백(垂白)이라고도 하는데, 이 역시 백발(白髮)이 드리워지는 나이라는 뜻에서 일흔 살 노인을 나타낸다. ‘종심’ 이르러야 비로소 인격적으로 완성돼토박이말 ‘드리우다’는 ‘한쪽이 위에 고정된 천이나 줄 따위가 아래로 늘어지다’란 뜻이다. 똑바로 드리운 것을 ‘수직(垂直)’이라 하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단어가 형성된 구조를 잘 들여다보면 말의 용법을 정확히 알 수가 있다.
현수막(懸垂幕)에도 이 ‘垂’ 자가 쓰였다. 懸은 ‘매달 현’이다. 현수막을 직역하면 ‘매달거나 드리울 수 있게 만든 막’이란 것을 알 수 있다. ‘매달다’라는 말은 잡아매어 달려 있게 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현수막은 원래 천 따위를 위에서 아래로 늘어뜨린 막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지금은 용법이 확장돼 양쪽으로 매어 가로로 걸어놓은 것(플래카드)도 현수막이라고 한다. 현판(懸板: 글자나 그림을 새겨 문 위나 벽에 다는 널조각) 역시 현수막처럼 가로 형태로 달 수도 있고, 세로로 걸어놓을 수도 있다. 이제 현판 또는 현판식이란 단어가 나타내는 의미를 새길 수 있을 것이다.
요즘은 사실 ‘고희’는 맞지 않는 말이다. ‘희수’나 ‘희년’ 또한 옛말이 됐다. 평균수명(2019년 통계청)이 83세가 넘는 한국 사회에서 일흔 살이 더 이상 ‘드문 나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의 활동상이 점점 늘고 있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