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삼성동은 국내 최고의 도심 핵심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요지에 ‘임대주택’을 건설하는 문제로 서울시와 강남구가 대립하고 있다. 외형은 서울시와 산하 자치구 간 대립처럼 됐지만, 중앙정부(국토교통부)도 이 문제에 관한 한 서울시 입장과 비슷하다. ‘서민 주거 확대’ 차원으로, 전임 서울시장 때 사업 시작의 단초가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는 서울시 산하 공영병원인 서울의료원 옛 땅이 있다. 부속부지까지 이곳의 시소유지에 서울시는 임대주택 3000가구를 지으려 한다. 부지는 시 소유 그대로 공공용지로 두고 건물만 분양하는 변형된 임대주택 단지인데, 이른바 ‘반값 아파트’ 또는 ‘반의 반값 아파트’ 공급 차원이다. 이에 맞서는 강남구는 이 지역을 앞서 서울시가 발표한 대로 ‘국제교류복합지구 마이스(MICE: 회의·관광·컨벤션·전시) 단지’로 조성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미래형 산업인 마이스 용도로 개발하면 해당 용지를 더 경제적으로 활용할 수 있고, 그에 따른 개발이익으로 임대주택을 더 많이 지을 수도 있지 않냐는 것이다. 강남구는 필요하면 관내에 임대주택 건설 용지를 찾아 제공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서민 주거를 내세운 서울시의 도심 핵심지 임대아파트 건설 추진은 합리적이고 타당한가. [찬성] 인기지역에도 서민주택 늘려야…상징성도 무시 못해서민주택이라고 해서 비인기 지역에나 지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서민도 땅값이 비싼 지역에 살 수 있다. 하지만 시장에만 맡겨두면 이런 일은 사실상 어렵다. 대표적 서민주택인 임대주택도 도심 인기지역 ‘상급지’에 지을 수 있어야 한다. 서민주택이라는 말 자체가 막연한 개념인 만큼 실질적으로 임대주택을 그런 곳에 지어야 한다.
임대주택은 누가 짓는가. 민간에도 없지는 않지만, 현실적으로 정부 산하 공기업인 LH(한국토지주택공사)나 서울시 산하 주택 공기업인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가 그런 업무를 주로 수행하는 것 아닌가. 주거복지 차원으로, 공공이 나서서 임대주택의 격을 끌어올린다는 관점에서 추진할 필요가 있다. 물론 3000가구를 현안이 된 지역의 서울시 부지에 짓는다고 해서 서민 주택 수요를 다 해결할 수도, 임대주택 문제를 일거에 다 해결할 수도 없다. 그러나 이렇게 한 발짝씩 나아가는 게 중요하다. 임대주택 수요자에게 희망을 줄 필요도 있다. 홍콩 등지의 주거 양식을 보면 교통이 몰리는 밀집도심지역에서는 어차피 모두가 좁게 사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서울의료원 부지가 넓지 않지만 고층화를 꾀하고 주거 용적률을 높이면 작은 규모의 서민 아파트를 꽤 많이 지을 수 있다. 그래도 임대주택 수요에는 부족하겠지만 이런 식으로 시작해 확대해나간다는 데 상징성도 있지 않겠나.
과거 정부 때도 자주 추진됐던 ‘소셜믹스(social mix)’ 차원에서 볼 만도 하다. 소셜믹스의 취지는 좋지만, 영세한 임대주택을 무리하게 엮어 넣다 보니 같은 아파트 단지 안에서 임대 동(棟)과 자가 동을 억지로 나누고 격리하는 일까지 빚어졌다. 옆 단지에 임대아파트가 들어서며 민간 개별 소유 아파트와의 사이에 차단 울타리까지 생기는 것보다는 단일 임대단지 확대가 나을 수 있다. 반값아파트 등으로 집값을 낮추려는 노력도 중요하다. 토지는 서울시가 그대로 소유하면서 건물만 분양하는, 토지임대부라는 새로운 방식도 그래서 의미 있다. [반대] 값비싼 땅 처분해 더 많이 지어야…도시 진화·발전도 중요임대주택 확충을 위한 공공의 노력은 필요하다. 서민 주거 안정 차원의 저소득 우대 주택 건설도 외면해선 안 된다. 문제는 실효성이다. 서민 주거난에 실제로 도움이 돼야 한다. 구호만 요란하고, 실제 나오는 물량이 없으면 무슨 소용인가. 임대 물량이 적으면 주택을 배정받는 이는 ‘로또 당첨’이고, 나머지 다수는 ‘희망고문’에 그친다.
옛 서울의료원 부지를 ‘홍콩식’으로 개발하면 3000가구의 밀집 주택을 건설하는 데 기술적 어려움이 없을 수 있다. 하지만 서울에서 제일 비싼 이 땅의 용도를 바꿔 개발하고, 그 재원으로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면 몇 배나 많은 깔끔한 집을 지을 수 있다. 더구나 강남구는 “제3의 임대주택 부지를 제안하겠다”며 대안도 내놨다. 어느 쪽이 경제적 약자에게 도움이 되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임대주택 입주 대기자는 6만9715명(2021년 6월 말)에 달한다. 대도시 집값이 급등하면서 잠재 수요자는 이보다 몇십 배 많을 것이다. LH와 계약하고도 원하는 집이 없어 13년5개월을 기다린 대기자까지 있다는 게 국정감사 자료로 확인됐다. 그렇다면 도심에서 소수의 ‘로또 당첨자’를 내기보다 역세권이나 그 인근에 우량 주택을 최대한 많이 건설하는 게 현실적이다. 그렇게 물량을 순차적으로 안정적으로 확대한다면 도시 전 지역에 걸쳐 ‘소셜믹스’도 자연스레 이뤄지면서 임대 동을 억지 분리하는 울타리도 사라질 것이다.
도시의 발전과 진화라는 측면에서 볼 필요도 있다. 땅은 소중하고 유한한 자원이다. 경제적 이용가치를 극대화하면서 그에 따른 개발이익을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수준에서 환수해 잘 쓰면 ‘서민 주거 확충’과 ‘미래형 도시 개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도시 개발은 100년을 내다봐야 하는 중요한 행정이다. 그런 개발 행정이 명분만 내세운 채 실속도 없는 ‘배아파리즘’ 해소용으로 전락하면 그 손실은 누구에게 집중될까. 자칫 도시 경쟁력도, 서민 주거 확충도 다 놓칠 수 있다. √ 생각하기 - 대도시의 경쟁력은 곧 국가 경쟁력…명분 집착 말고 실리 볼 때 서민 주거 확충 차원에서 임대주택 건설도 중요하고, 한국 최대 도시인 수도 서울의 개발과 발전도 중요하다. 임대주택이라고 비인기 지역에만 지으란 법은 더욱 없다. 대통령이 현장을 방문해 많이 칭찬했던 임대주택이 9개월째 미분양된 사실을 돌아본다면, 아무 데나 서둘러 짓는다고 다 집이 되는 것도 아니다. 임대주택 대기자들의 긴 행렬을 볼 때 ‘적당한 지역’에서 ‘적절한 비용’으로 ‘최대한 많은’ 주택을 건설하는 게 경제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이 될 수 있다. 그러자면 상징성, 명분, 구호 등에 매몰되지 않아야 한다. 도시 경쟁력도 중요하다. 대도시의 경쟁은 곧 국가 경쟁력이고, 서울의 경쟁력은 대한민국의 국제 경쟁력이다. 땅값이 비싼 데는 경제적으로 잘 활용하고, 그에 따른 개발비용을 최대한 적절히 임대주택 건설에 잘 쓴다면 더 많은 무주택자에게 도움이 된다. 그런 개발을 확대하면 좋은 임대주택 물량도 자연스럽게 늘어난다. 옛 성동구치소 자리의 토지임대부 주택 건설에 대한 주민과 서울 송파구의 문제 제기도 같은 맥락에서 보면 답이 나온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임대주택은 누가 짓는가. 민간에도 없지는 않지만, 현실적으로 정부 산하 공기업인 LH(한국토지주택공사)나 서울시 산하 주택 공기업인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가 그런 업무를 주로 수행하는 것 아닌가. 주거복지 차원으로, 공공이 나서서 임대주택의 격을 끌어올린다는 관점에서 추진할 필요가 있다. 물론 3000가구를 현안이 된 지역의 서울시 부지에 짓는다고 해서 서민 주택 수요를 다 해결할 수도, 임대주택 문제를 일거에 다 해결할 수도 없다. 그러나 이렇게 한 발짝씩 나아가는 게 중요하다. 임대주택 수요자에게 희망을 줄 필요도 있다. 홍콩 등지의 주거 양식을 보면 교통이 몰리는 밀집도심지역에서는 어차피 모두가 좁게 사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서울의료원 부지가 넓지 않지만 고층화를 꾀하고 주거 용적률을 높이면 작은 규모의 서민 아파트를 꽤 많이 지을 수 있다. 그래도 임대주택 수요에는 부족하겠지만 이런 식으로 시작해 확대해나간다는 데 상징성도 있지 않겠나.
과거 정부 때도 자주 추진됐던 ‘소셜믹스(social mix)’ 차원에서 볼 만도 하다. 소셜믹스의 취지는 좋지만, 영세한 임대주택을 무리하게 엮어 넣다 보니 같은 아파트 단지 안에서 임대 동(棟)과 자가 동을 억지로 나누고 격리하는 일까지 빚어졌다. 옆 단지에 임대아파트가 들어서며 민간 개별 소유 아파트와의 사이에 차단 울타리까지 생기는 것보다는 단일 임대단지 확대가 나을 수 있다. 반값아파트 등으로 집값을 낮추려는 노력도 중요하다. 토지는 서울시가 그대로 소유하면서 건물만 분양하는, 토지임대부라는 새로운 방식도 그래서 의미 있다. [반대] 값비싼 땅 처분해 더 많이 지어야…도시 진화·발전도 중요임대주택 확충을 위한 공공의 노력은 필요하다. 서민 주거 안정 차원의 저소득 우대 주택 건설도 외면해선 안 된다. 문제는 실효성이다. 서민 주거난에 실제로 도움이 돼야 한다. 구호만 요란하고, 실제 나오는 물량이 없으면 무슨 소용인가. 임대 물량이 적으면 주택을 배정받는 이는 ‘로또 당첨’이고, 나머지 다수는 ‘희망고문’에 그친다.
옛 서울의료원 부지를 ‘홍콩식’으로 개발하면 3000가구의 밀집 주택을 건설하는 데 기술적 어려움이 없을 수 있다. 하지만 서울에서 제일 비싼 이 땅의 용도를 바꿔 개발하고, 그 재원으로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면 몇 배나 많은 깔끔한 집을 지을 수 있다. 더구나 강남구는 “제3의 임대주택 부지를 제안하겠다”며 대안도 내놨다. 어느 쪽이 경제적 약자에게 도움이 되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임대주택 입주 대기자는 6만9715명(2021년 6월 말)에 달한다. 대도시 집값이 급등하면서 잠재 수요자는 이보다 몇십 배 많을 것이다. LH와 계약하고도 원하는 집이 없어 13년5개월을 기다린 대기자까지 있다는 게 국정감사 자료로 확인됐다. 그렇다면 도심에서 소수의 ‘로또 당첨자’를 내기보다 역세권이나 그 인근에 우량 주택을 최대한 많이 건설하는 게 현실적이다. 그렇게 물량을 순차적으로 안정적으로 확대한다면 도시 전 지역에 걸쳐 ‘소셜믹스’도 자연스레 이뤄지면서 임대 동을 억지 분리하는 울타리도 사라질 것이다.
도시의 발전과 진화라는 측면에서 볼 필요도 있다. 땅은 소중하고 유한한 자원이다. 경제적 이용가치를 극대화하면서 그에 따른 개발이익을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수준에서 환수해 잘 쓰면 ‘서민 주거 확충’과 ‘미래형 도시 개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도시 개발은 100년을 내다봐야 하는 중요한 행정이다. 그런 개발 행정이 명분만 내세운 채 실속도 없는 ‘배아파리즘’ 해소용으로 전락하면 그 손실은 누구에게 집중될까. 자칫 도시 경쟁력도, 서민 주거 확충도 다 놓칠 수 있다. √ 생각하기 - 대도시의 경쟁력은 곧 국가 경쟁력…명분 집착 말고 실리 볼 때 서민 주거 확충 차원에서 임대주택 건설도 중요하고, 한국 최대 도시인 수도 서울의 개발과 발전도 중요하다. 임대주택이라고 비인기 지역에만 지으란 법은 더욱 없다. 대통령이 현장을 방문해 많이 칭찬했던 임대주택이 9개월째 미분양된 사실을 돌아본다면, 아무 데나 서둘러 짓는다고 다 집이 되는 것도 아니다. 임대주택 대기자들의 긴 행렬을 볼 때 ‘적당한 지역’에서 ‘적절한 비용’으로 ‘최대한 많은’ 주택을 건설하는 게 경제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이 될 수 있다. 그러자면 상징성, 명분, 구호 등에 매몰되지 않아야 한다. 도시 경쟁력도 중요하다. 대도시의 경쟁은 곧 국가 경쟁력이고, 서울의 경쟁력은 대한민국의 국제 경쟁력이다. 땅값이 비싼 데는 경제적으로 잘 활용하고, 그에 따른 개발비용을 최대한 적절히 임대주택 건설에 잘 쓴다면 더 많은 무주택자에게 도움이 된다. 그런 개발을 확대하면 좋은 임대주택 물량도 자연스럽게 늘어난다. 옛 성동구치소 자리의 토지임대부 주택 건설에 대한 주민과 서울 송파구의 문제 제기도 같은 맥락에서 보면 답이 나온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