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이슈만큼 금세기 들어 전 세계적으로 깊은 관심사가 된 아젠다도 거의 없다. 요지는 ‘급격한 기후변화로 인해 기후위기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그 논란의 한가운데에 과도한 탄소(이산화탄소) 배출 문제가 있다. 한때는 ‘탄소 배출 감축’ ‘저탄소 경제’ ‘탄소 감축 산업’ 같은 표현이 유행처럼 퍼졌는데, 이제는 아예 ‘탄소중립’이라는 말이 대세다. 탄소와의 싸움, 탄소 감축을 위한 노력이 그만큼 진행된 것이다. 한국에는 ‘탄소중립위원회’까지 정부 기구로 생겨났다. 대통령 직속의 이 특별위원회가 말해주듯 한국은 탄소 감축을 위한 국제적 노력에 앞서나가고 있다. 문제는 속도다. 한국이 탄소중립 모범 국가가 되기로 작정이라도 한 듯 무리한 실행계획을 내놓으면서 기업과 산업계에서 부담을 크게 느끼고 있다. 현안으로 부각된 탄소 감축 노력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나치다는 불만이다. 탄소중립을 내세운 관련 법안이나 행정이 기업과 산업 실상과 괴리되면서 현실감이 없다는 지적이다. 이상에 치우쳐 경제 성장과 발전을 가로막는 탄소중립 시나리오와 관련 프로젝트는 전면 재검토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국제 공조가 필요한 사안에 한국만 중뿔나게 나서봤자 그다지 효과도 없는데, 비용만 지나치게 커지고 지키기도 어려운 목표치를 정부가 내놨다는 것이다. 2050년을 목표로 삼은 정부의 탄소중립 시나리오는 현실성 있나.
[찬성] 기후위기 피할 수 없어…'경제발전 비용' 이제라도 치러야탄소중립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기후위기에 처해 있다고 여기는 한국인도 적지 않다. 정부가 선정한 2050년보다 탄소중립을 더 일찍 달성해야 한다는 국민이 55%로 과반수라는 설문조사도 나와 있다. 기후변화는 더 이상 막연한 위험이 아니다. 위기 상황이라고 응답한 국민의 89%가 ‘기후변화의 원인을 알고 있다’고 답했을 정도다.
탄소중립을 달성해야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기후위기 징후로 인한 지구의 생태계 변화를 눈여겨봐야 한다. 곡물과 과일, 채소 등의 자생 한계지역이 바뀌면서 삼림과 녹지에도 큰 변화가 있다. 바닷물은 연간 평균 1~2도 정도의 수온 변화로도 서식하는 어종이 달라질 정도다. 사라지는 종이 생기는가 하면 기형적인 변형 종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렇게 동식물 생태계가 단기간에 급격히 바뀌면 인류의 건강한 생존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이를 막을 의무가 우리 시대 모든 인류에게 있다. 한국도 산업 발전, 경제 성장으로 큰 성과를 이룬 만큼 그런 국제적 노력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 더구나 한국은 그간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중후장대(重厚長大) 제조업 발전에 힘입어 나라경제를 성장시켜오지 않았나.
유럽 등지에서의 탄소중립 계획을 보면 한국이 뒤로 빠지기도 어렵다. 오스트리아가 2022년 t당 30유로씩 탄소세 부과를 시작해 2025년에는 이를 55유로로 올리겠다는 방침을 확정 발표하는 등 많은 나라가 탄소저감 경제로 적극 이행하고 있다. 내연기관 자동차 생산과 판매 금지 일정이 국가별로 잇달아 발표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2025년께부터 시작해 늦어도 2040년부터는 휘발유나 디젤 같은 연료를 쓰는 내연기관차가 거리에서 사라지게 된다. 플라스틱 사용도 제한된다. 탄소 배출을 줄이라는 이런 중요한 문제를 기업 의사만 물으면 결론내기가 어렵게 된다. [반대] 정부 '2050 시나리오'는 모순…친환경 생산은 과제기후변화에 대한 위기감을 갖는 것은 좋다. 탄소를 줄이는 쪽으로 산업기술을 개발하고, 제조업 등의 생산 방식에서도 친환경적으로 이행해나가는 것은 인류의 숙제이자 과제다. 개인의 일상생활과 취미 오락 등 여가활동에서도 이는 중요하다. 아름다운 지구를 오래 보존하고 쾌적한 환경을 자손에게 전해주자는 주장에 누가 반대하겠나. 기술혁신을 꾀하고, 비용이 더 수반되더라도 노력을 더 기울여야 한다.
문제는 속도이고, 실현 가능성 여부다. 아무리 좋은 취지라도 이상만 앞세운다고 실천이 담보되지는 않는다. 한국 정부가 수립한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는 지나치게 이상에 치우쳐 있다. 원자력 발전 비중을 2050년까지 6~7%로 줄이고 석탄 발전 비중은 0~1.7%로 낮추면서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최고 71%로 끌어올린다는 내용 자체도 모순덩어리다. 신재생 발전 비중을 높이는 데 드는 천문학적 비용은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또 이에 따른 환경 파괴 논란과 전력 블랙아웃(대규모 정전 사태) 위험 증가는 어떻게 대처하나. 전기요금 등 급증할 게 뻔한 에너지 비용 부담을 국민은 기꺼이 받아들일까.
탄소중립에 대해 국제적으로 호기를 부리더니 석탄 발전을 풀가동하는 모순을 보이며, 29년 뒤의 일이라고 미사여구를 나열해선 곤란하다. 탄소중립위원회가 내놓은 탄소저감 시나리오는 과학기술 비전문가들이 만든 것이다. 공상과학 소설에서도 어려운 방법을 대안이라고 내놓았는데, 그런 기술을 과연 어떻게 구현할 텐가. 더구나 한국은 탈원전 한다며 탄소 배출이 가장 적은 에너지인 원자력을 스스로 포기했다. 국제사회에 그럴듯한 말로 ‘좋은 것’을 내세우며 현실성 없는 계획을 자랑할 게 아니라, 단계단계 밟아나가야 한다. 기업의 적극 동참 유도도 필수다. √ 생각하기 - 공론화 거치고 현실 가능한 시나리오여야 기업도 적극 동참 가능 ‘탄소중립’을 지향한다는 정책 목표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수단 방법과 속도, 현실성 있는 계획 등이 문제다. 가령 제철 과정에서 ‘수소환원 제철’이라는 새로운 공법이 제시됐는데, 어느 나라에서도 상용화하지 못한 이론적 기술이다. 대안으로 제시된 ‘암모니아 발전’에도 엄청난 전기가 필요하다고 한다. 이런 모순적인 실천 프로그램이 적지 않은 게 문제다. 탄소중립 시나리오가 탈원전 정책을 유지하기 위한 ‘대못박기’가 아니냐는 의심이 그래서 나온다. 수십 년짜리 국가정책이라면 제대로 된 공론과 여론수렴을 거칠 필요가 있다. 다른 정책과의 정합성이나 일관성이 유지돼야 하고, 정책에 따른 파장이나 부작용도 치밀하게 볼 수 있어야 한다. ‘관변 학자’나 ‘관제 여론’을 동원한 강행이나 밀어붙이기도 경계 대상이다. 탄소중립이 중요하고 국제적 과제라 해도 5년 정부 차원의 이해관계에서 큰 방향이 정해지거나 각론이 왔다 갔다 해서는 안 된다. 국제 사회에서 한국이 과도하게 앞서나가기보다는 전체적인 기류와 흐름을 보면서 속도를 적절하게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탄소중립을 달성해야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기후위기 징후로 인한 지구의 생태계 변화를 눈여겨봐야 한다. 곡물과 과일, 채소 등의 자생 한계지역이 바뀌면서 삼림과 녹지에도 큰 변화가 있다. 바닷물은 연간 평균 1~2도 정도의 수온 변화로도 서식하는 어종이 달라질 정도다. 사라지는 종이 생기는가 하면 기형적인 변형 종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렇게 동식물 생태계가 단기간에 급격히 바뀌면 인류의 건강한 생존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이를 막을 의무가 우리 시대 모든 인류에게 있다. 한국도 산업 발전, 경제 성장으로 큰 성과를 이룬 만큼 그런 국제적 노력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 더구나 한국은 그간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중후장대(重厚長大) 제조업 발전에 힘입어 나라경제를 성장시켜오지 않았나.
유럽 등지에서의 탄소중립 계획을 보면 한국이 뒤로 빠지기도 어렵다. 오스트리아가 2022년 t당 30유로씩 탄소세 부과를 시작해 2025년에는 이를 55유로로 올리겠다는 방침을 확정 발표하는 등 많은 나라가 탄소저감 경제로 적극 이행하고 있다. 내연기관 자동차 생산과 판매 금지 일정이 국가별로 잇달아 발표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2025년께부터 시작해 늦어도 2040년부터는 휘발유나 디젤 같은 연료를 쓰는 내연기관차가 거리에서 사라지게 된다. 플라스틱 사용도 제한된다. 탄소 배출을 줄이라는 이런 중요한 문제를 기업 의사만 물으면 결론내기가 어렵게 된다. [반대] 정부 '2050 시나리오'는 모순…친환경 생산은 과제기후변화에 대한 위기감을 갖는 것은 좋다. 탄소를 줄이는 쪽으로 산업기술을 개발하고, 제조업 등의 생산 방식에서도 친환경적으로 이행해나가는 것은 인류의 숙제이자 과제다. 개인의 일상생활과 취미 오락 등 여가활동에서도 이는 중요하다. 아름다운 지구를 오래 보존하고 쾌적한 환경을 자손에게 전해주자는 주장에 누가 반대하겠나. 기술혁신을 꾀하고, 비용이 더 수반되더라도 노력을 더 기울여야 한다.
문제는 속도이고, 실현 가능성 여부다. 아무리 좋은 취지라도 이상만 앞세운다고 실천이 담보되지는 않는다. 한국 정부가 수립한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는 지나치게 이상에 치우쳐 있다. 원자력 발전 비중을 2050년까지 6~7%로 줄이고 석탄 발전 비중은 0~1.7%로 낮추면서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최고 71%로 끌어올린다는 내용 자체도 모순덩어리다. 신재생 발전 비중을 높이는 데 드는 천문학적 비용은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또 이에 따른 환경 파괴 논란과 전력 블랙아웃(대규모 정전 사태) 위험 증가는 어떻게 대처하나. 전기요금 등 급증할 게 뻔한 에너지 비용 부담을 국민은 기꺼이 받아들일까.
탄소중립에 대해 국제적으로 호기를 부리더니 석탄 발전을 풀가동하는 모순을 보이며, 29년 뒤의 일이라고 미사여구를 나열해선 곤란하다. 탄소중립위원회가 내놓은 탄소저감 시나리오는 과학기술 비전문가들이 만든 것이다. 공상과학 소설에서도 어려운 방법을 대안이라고 내놓았는데, 그런 기술을 과연 어떻게 구현할 텐가. 더구나 한국은 탈원전 한다며 탄소 배출이 가장 적은 에너지인 원자력을 스스로 포기했다. 국제사회에 그럴듯한 말로 ‘좋은 것’을 내세우며 현실성 없는 계획을 자랑할 게 아니라, 단계단계 밟아나가야 한다. 기업의 적극 동참 유도도 필수다. √ 생각하기 - 공론화 거치고 현실 가능한 시나리오여야 기업도 적극 동참 가능 ‘탄소중립’을 지향한다는 정책 목표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수단 방법과 속도, 현실성 있는 계획 등이 문제다. 가령 제철 과정에서 ‘수소환원 제철’이라는 새로운 공법이 제시됐는데, 어느 나라에서도 상용화하지 못한 이론적 기술이다. 대안으로 제시된 ‘암모니아 발전’에도 엄청난 전기가 필요하다고 한다. 이런 모순적인 실천 프로그램이 적지 않은 게 문제다. 탄소중립 시나리오가 탈원전 정책을 유지하기 위한 ‘대못박기’가 아니냐는 의심이 그래서 나온다. 수십 년짜리 국가정책이라면 제대로 된 공론과 여론수렴을 거칠 필요가 있다. 다른 정책과의 정합성이나 일관성이 유지돼야 하고, 정책에 따른 파장이나 부작용도 치밀하게 볼 수 있어야 한다. ‘관변 학자’나 ‘관제 여론’을 동원한 강행이나 밀어붙이기도 경계 대상이다. 탄소중립이 중요하고 국제적 과제라 해도 5년 정부 차원의 이해관계에서 큰 방향이 정해지거나 각론이 왔다 갔다 해서는 안 된다. 국제 사회에서 한국이 과도하게 앞서나가기보다는 전체적인 기류와 흐름을 보면서 속도를 적절하게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