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이슈 찬반토론] 출근길 신호위반·무면허 사고까지 산업재해로 인정할 수 있나](https://img.hankyung.com/photo/202109/01.27397650.1.jpg)
고용노동부 산하 공공기관으로 이 업무를 담당하는 근로복지공단은 “무면허나 신호위반은 교통사고특례법 위반의 범죄적 행위이므로 업무상 재해라고 인정할 수 없다”며 유족의 산재보험 적용 요구를 거부했다. 하지만 법원이 이를 인정한 것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원래 법 제정 취지를 제대로 살렸다고 볼 수 있다. 더구나 법원(울산지방법원)은 교차로에서 생긴 사고에 대해 직진하던 트럭이 좀 더 운전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필요성이 있었고, 그런 이유로 트럭의 잘못도 20% 있다는 보험사의 과실분담 인정 결과를 받아들였다. 요컨대 무면허 운전이 사고의 ‘직접’ 원인이라고 볼 수 없으며, 신호위반 정도는 중대한 과실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무면허로 전동킥보드를 타고 출근하던 근로자가 횡단보도에서 당한 사고에 대한 판결(서울행정법원)도 같은 맥락이다. 비록 정상적으로 운전 중이던 차에 부딪혀 입은 중상이지만 신호위반 정도의 과실이 산재 적용이 되지 않을 만큼의 중대한 사유는 아니라는 취지다.
이런 판결은 결국 근로자 보호를 위한 법의 적극적 해석이다. 단순히 신호위반을 했느냐, 무면허 운전인가 등 표피적 현상을 보는 데 그치지 않고 산재제도를 도입했을 때 원래 취지에 주목한 것인 만큼 법원의 해석은 존중돼야 한다. 필요하면 산재보상법을 바꾸고, 근로복지공단도 산재 판정에서 좀 더 근로자 입장이 돼야 한다. 재해 용인 범위를 가급적 넓게 해서 근로자를 더 적극적으로 보살펴줄 필요가 있다. [반대] 보험의 원리, 국민 법감정도 봐야…국고 지원 아니면 근로자 부담 증가특례법을 통해 명시적으로 규정해둔 중과실은 일종의 범죄 행위다. 이런 경우에까지 산재 보상을 해준다는 것은 과잉이다. 일반 국민의 법감정부터 한번 생각해보자. 약자를 보호한다는 논리처럼, ‘명분만 그럴듯하면 법을 위반하고 법에 정해진 것과 달리 해석·집행해도 괜찮다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지 않겠나. 근로자들도 신호위반이나 무면허 운전 정도로는 아무런 손해를 입지 않는다는 인식이 팽배해지면 준법 정신을 무너뜨리고 법치주의와 그만큼 멀어질 수 있다. 엄한 단속과 경고는커녕 그런 사고가 많아지면 결국에는 근로자 스스로도 피해자가 된다.
현실적으로 산재보험 제도가 어떻게 운용되며, 어떤 식으로 지속 가능한 사회보장 모델이 되는지에 대해서도 냉정하게 볼 필요가 있다. 산재보험이 공공기관이 관리하는 공적 제도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하나의 보험이다. 즉 보험 가입자(근로자, 사업주)가 있고, 보험료(근로자 급여에서 떼는 보험료와 사업주가 내는 보험료)를 매월 정기적으로 내며, 이를 재원으로 사업장에서의 사고에 대한 보상(산재보험금)이 지급되는 구조다. 보험료를 내지 않는 비자격자가 보험금을 받을 수 없는 것처럼 본인의 명백하고 중차대한 과실, 즉 범죄적 행위에 대해서는 보험금이 지급되지 않는 게 보험의 기본이다. 그렇게 해야 장기적으로 지속될 수 있다. 사정이 어렵고 딱하다고 범죄적 행위에까지 산재보험을 적용해주면 건전하고 성실하게 보험료를 내며 법규를 정확히 지키는 ‘정상 근로자’의 보험금이 줄어드는 등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중대한 과실에도 선심 쓰듯 산재를 마구 적용해 나가면 산재 보험료율이 올라 근로자가 내는 납입 보험금이 인상될 수밖에 없다. 그게 아니라면 산재보험 기금에서 부족한 부분만큼 국고 지원을 더 해줘야 하는데, 일반 국민이 이를 쉽게 용인할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사회보험이 법규 위반 행위까지 다 용인하면 다른 어떤 좋은 제도도 정상적으로 굴러가기 어렵다. √ 생각하기 - 준법정신 훼손 우려…과도한 '언더도그마 현상'은 경계해야
![[시사이슈 찬반토론] 출근길 신호위반·무면허 사고까지 산업재해로 인정할 수 있나](https://img.hankyung.com/photo/202109/AA.18068503.1.jpg)
산재보험이 장기적으로 계속 제 기능을 하자면 재원 문제도 생각해야 한다. 그렇다고 매월 급여에서 떼는 산재보험료를 올리면 바로 근로자의 부담이 증가한다. 아울러 우리 사회에 과도하게 ‘언더도그마 현상’(사회적 약자는 선(善)하다는 인식, 반대는 오버도그마 현상)이 이런 데도 미치는 것은 아닌지도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