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 농부의 역설
뉴스를 보면 땀 흘려 키운 농작물을 폐기하는 농민들의 모습을 가끔 볼 수 있습니다. 이유를 물어보면 시장가격은 하락하는데 출하를 위해 농작물을 다듬고 포장하는 비용을 포함하면 출하를 할수록 손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시장에 내놓느니 밭을 갈아엎는 게 낫다는 것이 농민들의 주장입니다. 하지만 이후 해당 농산물의 공급이 줄어들어 다음 해에는 가격이 폭등하기도 합니다. 농산물 시장이 시장의 수요·공급 원리에 따라 생산량과 가격이 즉각적으로 변동하지 않고 이런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수요와 공급의 가격탄력성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배고픔을 느끼기 때문에 쌀, 과일, 채소 등의 곡류 및 농산물에 대한 지출은 소비의 일정한 부분을 차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농산물은 수확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어떤 농산물의 수요가 상승하여 적절한 공급이 필요하지만, 즉각적인 공급이 불가능한 것이 농산물 시장의 특징입니다.

이를 경제학에서는 ‘탄력성’의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탄력성이란 독립변수가 변화했을 때 종속변수가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알고자 할 때 사용하는 지표입니다. 경제학에서는 수요와 공급의 가격탄력성이 주로 언급됩니다. 농산물 시장의 수요와 공급의 가격탄력성은 비탄력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격이 폭락하거나 폭등한다고 해서 농산물과 관련한 먹거리 소비를 확 늘리거나 줄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때 가격탄력성은 0과 무한대(∞) 사이의 값을 가지며, 수요의 가격탄력성은 1을 기준으로 1보다 크면 탄력적, 1보다 작으면 비탄력적입니다. 1이면 단위 탄력적이라고 합니다. 공급곡선도 우상향하는 방향이 수요곡선과 다를 뿐 0과 무한대(∞) 사이의 값을 가집니다. 농산물의 수요와 공급의 가격탄력성이 모두 비탄력적이기 때문에 기울기가 매우 가파릅니다. 농부의 역설
[테셋 공부합시다] 비탄력적인 농산물 시장…소비자 물가에도 영향
농산물 시장의 이런 특성 때문에 작황이 좋아 공급곡선이 우측으로 이동하면 가격 하락폭이 커지지만 하락한 가격만큼 수요량 증가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시장 거래량은 가격이 하락한 만큼 증가하지 못합니다. 즉, 가격 하락폭이 시장 거래량 증가분보다 크기 때문에 농가의 총수입은 이전보다 오히려 감소하게 됩니다. 반대로 작황이 부진해 공급곡선이 좌측으로 이동하면 가격 상승폭이 커지고, 가격 상승폭이 시장 거래량 감소분보다 크기 때문에 농가의 총수입이 증가하게 됩니다. 풍년이 들면 농가 소득이 감소하고, 흉년이 들면 농가 소득이 오히려 증가하는 현상을 ‘농부의 역설’ 혹은 ‘풍년의 역설’이라고 합니다. 그림은 이러한 상황을 나타낸 것입니다. 농산물 가격 상승은 소비자물가 상승으로
[테셋 공부합시다] 비탄력적인 농산물 시장…소비자 물가에도 영향
여름철 폭염이 지속되면 농산물 품질이 저하되고 출하량이 줄어듭니다. 또한, 장마가 지속돼 수해와 같은 자연재해의 발생도 농산물 가격을 크게 올리는 요인입니다. 하지만 제철 과일을 사고, 먹기 위한 농산물 수요는 지속할 수밖에 없어서 공급이 줄어들면 가격이 크게 상승합니다. 그래서 농산물 가격 상승은 소비자 물가에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실제로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7월 소비자물가동향을 살펴보면 전년 동월 대비 농축수산 물가는 9.6% 상승했습니다. 같은 기간 2.6% 상승을 기록한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에 큰 영향을 미친 것입니다.

또한, 농산물 가격 상승은 이를 원재료로 하여 제품을 생산해 판매하는 기업의 판매 가격 인상을 이끕니다. 특히 가공식품은 가격을 한번 올리면 다시 내리는 일은 거의 없으므로 소비자인 가계의 주머니 사정에 부정적인 요소가 됩니다. 농산물과 관련한 물가지표는 가계의 소비 지출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정책 당국은 이와 관련한 물가 변동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영동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