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 이야기
(8) 부를 유지하는 필수 수단 '상속'
태어나지도 않은 아들을 상속인 지정했는데…
(8) 부를 유지하는 필수 수단 '상속'
태어나지도 않은 아들을 상속인 지정했는데…

하지만 문제는 상속인으로 지정된 아들이 아예 출생하지 않으면서 복잡해졌다. 당시 로마법 처리 관례대로 유언자의 발언 자구 하나하나에 충실한 유언문구를 중시해야 한다는 입장과 유언자의 의사와 의도를 중시해야 한다는 견해가 팽팽하게 맞섰다. 유언장의 자구 하나하나에 충실한 입장에선 코페니우스가 남긴 유언에서 쿠리우스는 “미성숙한 자를 위한 보충상속인으로서만 지정됐다”며 아들이 아예 태어나지 않은 상태에선 보충상속인의 자격도 원천적으로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쿠리우스의 변호인들은 “지나치게 지엽적으로 자구에 얽매일 것이 아니라 피상속인이 의도한 바에 따라 효과를 부여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아들의 출생 여부와는 무관하게, 어쨌거나 아들이 상속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발생한 만큼 쿠리우스에게 상속시키는 것이 피상속인의 진정한 의사에 부합한다는 주장이었다.
결국 당대의 유명 인사와 거물들이 양측의 변호인으로 총동원돼 격돌한 이 사안은 로마공화정 후기의 상설 재판기관인 백인심판소까지 가게 됐다. 결국 백인심판소는 쿠리우스 변호인들의 감정적 호소에 마음이 기울었고 쿠리우스가 상속받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유언자의 의사를 존중하는 판결은 이후 수세기 동안 정착되지 못하는 등 진통을 겪었지만 법학자들은 쿠리우스 송사를 ‘의사(The spirit)주의’가 ‘문언(The letter)주의’에 승리한 사건으로 평가한다고 한다. 엄격한 형식을 갖춘 유언만 인정받아현소혜 성균관대 교수에 따르면 원래 초기 로마에선 유언이 문언 위주로 집행됐다고 한다. 그것도 엄격한 형식을 갖췄을 때만 인정되는 방식이었다. 초기 로마의 유언은 재산을 상속받을 사람을 정하는 것과 관련된 민회유언과 군인의 출정유언, 그리고 계속되는 재산균분상속으로 물려줄 재산이 쪼그라들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가족 중 상속인을 단 한 명만 정하고 나머지는 상속인의 지위를 박탈하는 동형유언으로 구성됐다.
모든 유언이 재산 상속과 이래저래 연관된 것이었다. 특히 동형유언은 유언자가 5명의 증인과 동으로 만든 저울을 가진 자 앞에서 유산을 신탁받은 사람에게 자신의 전 재산을 이전하고, 자신이 죽은 뒤 누구에게 재산을 귀속시킬지를 정하는 것 같은 복잡한 요식행위를 필요로 했다. 이 과정에서 상속인을 지정하는 것이 유언의 ‘머리이자 기초’가 됐다. 심지어 유언으로 “자유인이자 상속인이 되어라”라는 지정문언을 남기면 노예를 상속인으로 삼을 수도 있었고, 유언으로 자기 자식을 노예로 팔아 넘기는 것도 가능했다. 그리고 이 같은 여러 판례를 통해 상속인이 지정되지 않은 유언은 유언으로 효력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게 됐다.
![[김동욱 기자의 세계사 속 경제사] '거액 유산'을 둘러싼 로마의 유언장 대결](https://img.hankyung.com/photo/202107/AA.25650166.1.jpg)
김동욱 한국경제신문 기자 NIE 포인트① 고대 로마와 같이 현대에도 재산이 인간의 아름다움과 자연에 대한 인간의 우월성을 보장하는 수단일까.
② 우리나라 민법에서도 일정한 형식을 갖추지 못한 유언은 효력이 없다고 규정하는데, 유언에 엄격한 요건을 규정하는 이유는 뭘까.
③ 나라면 재산을 자녀에게 상속하는 것과 상속 대신 사회에 환원하는 것 가운데 어느 쪽을 택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