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임시국회에도 많은 법안이 쌓여 있다. ‘슈퍼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임시국회에서 50여 개 법안을 중점 처리한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대한민국 국회처럼 법을 많이 만들어내는 의회도 많지 않다. 국회의원을 평가하겠다는 사회단체나 학계도 발의된 법안 수를 기준으로 삼고 있으니 법을 양산한다고 국회만 나무라기도 어렵다. 문제는 뚝딱뚝딱 쉽게 법이 만들어지면서 ‘법만능주의’가 만연해 있다는 사실이다. 쉽게 만들어지는 법안 가운데 상당수가 규제입법이어서 ‘폭주 입법’이라는 비판이 커진다. 심지어 각종 ‘육성법’ ‘지원법’ ‘기본법’ ‘발전법’이라는 이름의 정부 지원 법안에도 드러나지 않는 규제와 감독, 감시와 감독 행정이 도사리고 있다. 이 바람에 민간 산업계에서는 “지원·육성 다 필요없고, 제발 내버려두라”고 호소할 정도다. 6월 임시국회에는 새로운 감시 감독이 될 규제 법안이 적지 않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큰 ‘포털 알고리즘 공개법’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함께 상정된 의료법 개정안도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병원 수술실에 폐쇄회로TV(CCTV)를 설치하라는 내용이다. 환자 보호를 내세운 수술실 녹화 감시로 병원과 의사 반발이 작지 않다. 수술실 CCTV설치법을 어떻게 봐야 하나.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찬성] 의료분쟁 발생 시 환자에 도움…의료사고 예방 효과도경제성장과 더불어 한국 의료계는 눈부실 만큼 변화와 진보를 이뤄냈다.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병원은 아무나 갈 수 있는 곳이 결코 아니었다. 다수 국민이 생의 마지막 단계에서 ‘한풀이’라도 해보자는 차원에서 겨우 갈 수 있는 곳이 종합병원이었다. 의사들 만나기 자체가 어려웠다. 의료서비스라는 말이 나온 게 얼마나 되나.

이런 양적 변화와 발전에 맞춰 최고급 서비스로서의 진료와 치료도 함께 발전했는가. 현대식 병원과 늘어난 의료진을 보면 외형적 성장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서비스에 대한 이용자 만족도는 여전히 충분하다고 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의료사고와 의료분쟁이다. 의료사고는 줄어들지 않고, 이로 인한 의료분쟁 역시 증가하는 추세다. 치료와 진료행위가 워낙 보편화되면서 의료가 공공서비스처럼 된 요인도 없지 않지만, 기본적으로 병원·의료진과 환자 및 그 가족 사이에 불균형이 있다. 문제가 발생하고 분란이 일어날 때 일종의 ‘비대칭 정보관계’가 생기는 것이다. 의료사고가 날 경우 환자가 억울함과 답답함을 하소연할 곳이 현실적으로 어디에 있나. 변호사를 선임한다 해도 변호사도 병원에서는 활동에 한계가 있는 데다, 비용이 만만찮은 게 현실이다. 의료 약자가 기댈 곳은 병원뿐인 게 역설적인 현실이다.

수술실이 특히 문제다. 응급실과 입원실, 일반 치료실에는 의사 외에도 간호사와 보호자라도 있다. 하지만 수술실은 완전히 배타적인 공간이다. 최근에는 ‘대리 의사’에 의한 수술이나 시술 논란이 있고 수술실 내 성추행, 음주 진료로 인한 사건도 있다. 최소한 이런 행위는 걸러져야 한다.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하는 것만으로도 이런 일을 상당 부분 막을 수 있다. 명백히 의료진 실수로 인한 의료 사고도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사고 발생 시 원인 규명이나 책임 소재를 밝히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반대] '방어진료' 초래해 의료발전 저해…'사회적 빅브러더' 발상전국 병원에 수술실이 산재해 있다. 이 중 한두 군데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했다고 전체를 CCTV로 녹화하고 감시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민주 국가에서 어떻게 가능한가. 특정 식당 주방에서 성추행이 생기거나 대리 요리사가 한 명 나타나면 전국의 모든 주방에 CCTV를 설치할 텐가. 수업이 미덥지 못한 교사가 있다고 모든 교실에 CCTV를 설치해 일일이 감독할 수 있나. 먼저 관공서 등 모든 공공기관의 사업장부터 감시시스템을 만들어놓은 뒤에나 민간에 요구할 일이다.

의료진을 이런 식으로 과도하게 위축시키며 일종의 ‘위협’을 가하는 것은 민주사회가 아니다. 의사를 이렇게 차원 낮게 감시하고 몰아세우면 위험한 수술을 기피하는 ‘방어진료’를 하게 될 것이고, 이로 인한 피해는 모두 환자 즉 의료소비자에게 돌아간다. 대리 수술이 발생하면 의료법 등으로 얼마든지 처벌이 가능하다. 수술실 내 성추행이 얼마나 잦은지 알 수 없으나, 그런 일이 생기면 당사자나 목격자의 고소 고발에 따라 형사처벌이 충분히 가능하다.

가뜩이나 병원과 의사는 끊임없이 제기되는 의료사고 주장에 극도로 긴장하고 있다. 수사당국과 법원도 환자 쪽 손을 드는 경우가 많아진다. 병원도 무결점 기관이 아니고, 의사 역시 신이 아니다. 모든 수술이나 시술이 완벽하게 진행될 수는 없다는 것은 인간 사회의 다른 모든 영역에서와 마찬가지다. 모든 개인의 신체적 특성이나 질병 상태가 다 다르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는 과정에서도 환자가 회복을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러나 큰 병원일수록 치료와 진료과정의 희생이나 병세 악화를 의료진의 과실로만 여기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고의나 태만 차원의 중과실로 몰아세우는 때도 있다. 이렇게 사회적 풍조가 의료진을 궁지로 몰아세우는 판에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해 감시한다고 하면 누가 적극적으로 진료하겠나. 중장기적으로 우수인재가 의사를 지원할까. 병원 이전에 민주사회에 맞지 않는 ‘사회적 빅브러더’ 발상이다. √ 생각하기 - '의사 자기방어' 환자에 불리…다른 모든 사업장도 설치하자면?
[시사이슈 찬반토론] 수술실 CCTV, 강제설치 할 수 있나
의료사고를 방지하자는 노력은 중요하다. 의료분쟁이 생겼을 경우 병원·의사와 환자·가족 간 정보의 균형을 이루고 서로가 동등한 방어권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동시에 의료진이 자기 방어에나 신경 쓰면서 만일의 사고에 대비한 ‘자기 보호’부터 챙기는 풍토에서 의료발전은 연목구어(緣木求魚)라는 사실도 감안해야 한다. 소수의 이례적 사건을 일반화하면서 과도한 감시를 하는 게 정당한지도 생각해볼 일이다. 수술실 특성상 의사만의 배타적 공간인 것은 사실이지만, 청정관리와 오염 예방 같은 목적도 있다. 수술실 내부에 바로 CCTV를 설치하기보다 입구에 설치한다거나 사건 사고가 빈발한 병원에 페널티로 다는 방법은 대안이 될 수 있을까. 근본적인 문제는 수술실에 CCTV를 다는 순간 다른 모든 종류의 작업장, 교육장 등 사회활동의 공간에 이를 달자는 주장이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되면 진짜로 빅브러더 사회에 성큼 다가서 버리는 것은 아닐지…. ‘나는 상관없다’보다 ‘나도 언제든지 그런 감시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보는 게 민주 시민의 출발이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