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시중은행을 향해 저소득 계층·중저등급 신용자를 대상으로 하는 상품 개발 확대를 압박하고 나섰다. 금융위원회가 전면에 나선, 이른바 ‘서민금융’ 강화다. 서민금융지원법도 국회에서 급진전되고 있다.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신용이 높은 사람은 낮은 이율을, 신용이 낮은 사람은 높은 이율을 적용받는 구조적 모순이 있었다”고 말한 것과 같은 궤도의 정책 행보다. 금융위는 카카오뱅크 등 인터넷전문은행에 중금리 대출시장을 열라는 압박도 하고 있다. ‘중금리 대출 상품 확대, 중저신용자 지원 확대’라는 것은 한마디로 소득·자산이 부족하고 신용도가 낮은 서민도 은행 대출을 제대로 받을 수 있게 하라는 것이다. 취지는 나쁘지 않을 수 있다. 문제는 신용도 계산과 리스크(위험) 관리가 업(業)의 기본인 금융업에 정부가 개입한다는 것이다. 신용도가 낮은 이용자에게 대출을 확대하면 부실, 즉 떼일 확률이 높아진다. 당장 두 가지 문제를 예상해야 한다. 하나는 은행 등 금융권의 이익이 줄어들면서 수익구조가 확 나빠질 것이라는 점이다. 또 다른 하나는 금융 이용자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길 수 있는 데다 예측 가능한 부실에 대한 예금자의 용인 여부다. 당장의 문제는 아니지만 은행이 부실해지면 공적자금 지원이 불가피해진다. 이는 결국 국민 혈세에 기대는 것이 된다. 금융과 금융업의 기본 원리인 신용도 관리와 어긋나는 정부의 서민금융 강화 정책은 필요한 것인가. 효과가 날까.
[찬성] 취약층도 은행 수익 누리게 해야인터넷은행, 중금리 대출에 관심을코로나 쇼크를 겪으면서 금융시장에서도 양극화가 심해졌다. 자산이 부족하고 소득이 적은 취약층은 금융시장에서도 소외돼 어려움이 적지 않다. 이들을 금융 측면에서 지원할 필요가 있다. 낮은 신용도가 걸림돌이 돼 은행 문턱을 밟기 어려운 소외계층이 자립·자활할 수 있도록 상대적으로 형편이 나은 은행들이 나서 도와줘야 할 상황이다.시장금리가 자연스럽게 낮아지는 와중에도 서민은 여전히 높은 금리 부담을 안은 채 대출시장 이곳저곳을 드나들고 있다. 법정 최고금리를 계속 낮췄지만, 지원 효과에는 한계가 있다. 정부는 이자제한법 개정을 통해 3년 전 연 27.9%였던 최고금리를 연 24%로 내린 데 이어 2021년 7월부터는 연 20%로 더 낮춘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법정 최고금리를 낮추는 정도에서 그칠 게 아니라, 이들이 은행 등에서 실제로 돈을 빌릴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중요하다.
여러 분야에서 정부가 나서 다양한 복지제도를 운영 중인 판에 금융에서도 복지를 못할 이유는 무엇인가. 은행이 내는 적지 않은 수익을 금융 약자에게 나눠주는 효과를 내보자는 것이다. 은행이 출연한 자금으로 신용 취약계층을 상대로 운영하는 ‘햇살론뱅크’ 등을 활성화하는 것도 좋은 대안이 될 것이다. 햇살론뱅크 같은 서민지원 금융에 정부가 재정을 동원해 보증을 서면 금융권과 정부 공동으로 지원에 나서는 결과가 된다.
카카오뱅크 같은 인터넷전문은행도 기존의 관행을 깨뜨린다는 차원에서 이런 방향으로 적극 나서면 좋을 것이다. 금융위가 압박하는 이른바 ‘중금리 대출 계획’ 요구가 그런 방향이다. 이런 금융 지원을 통해 좀 더 많은 서민이 자립 기반을 마련한다면 경제가 건실해지는 효과도 나올 수 있다. [반대] 정부가 할 일을 민간에 떠넘기는 것금융 왜곡하면 더 큰 피해 생겨고신용자가 양보해서 신용도 이상의 고금리를 부담하고, 그렇게 생기는 여유자금을 재원으로 취약층 저신용자를 도와주자는 것은 금융의 본질을 모르는 논리다. 알면서 그런다면 금융을 왜곡하는 주장이다. 그런 식은 금융이 아니라 복지사업이거나 공익 지향의 사회사업일 뿐이다. 서민에게 금융을 지원하려면 재정으로 해야 한다. 세금, 국유자산 매각이나 효율화로 조성한 공적자금으로 해야 할 일을 민간 은행에 압박하는 것은 정부가 할 일을 민간에 떠넘기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서민에게 금융지원을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할 일이나 재정으로 할 수 있는 것과 은행 등 금융시장에서 할 일을 명확하게 구분하자는 것이다.
금융은 동서고금을 통해 리스크 관리가 기본이다. 국내에서만 통하는 원리 원칙이 아니라 자본이 수시로 이동하는 국제금융시장에서도 기본이다. 정부가 나서 한국의 금융시장을 왜곡하고 비정상적으로 만들어버리면 국제금융시장은 한국을 외면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무서운 결과가 뒤따르고, 더 큰 대가를 치른다.
금융은 ‘신뢰사업’이다. 신뢰는 어느 날 갑자기 구축되는 게 아니다. 개인도 기업도 정부도 나아가 사회 전체가 신용을 쌓고 신뢰를 구축하는 데는 시일이 걸린다. 숱한 난관을 거치며 이루는 사회적 자본이다. 그런데 은행 대출 등 금융의 본질을 모르거나 외면한 채 신뢰시스템을 훼손하면 소탐대실의 우를 범하게 된다. 금융에 대한 몰이해 차원의 걱정이 아니다. 금융 문맹을 의심하게 하는 정책 행보의 바탕에 금융을 왜곡시키려는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들 정도다. 인터넷은행도 업무 방식에서 혁신을 도모하게끔 유도하는 게 중요하다. 아무에게나 대출에 나섰다가 부실해지면 어떻게 대처하겠나. 정부는 도덕적 해이를 예방해야 할 책무도 있다. √ 생각하기 - 은행 수익에 정부가 간섭할 수 있나…금융산업 경쟁력도 중요 은행이 자체 영업활동을 해서 낸 수익에 대해 금융감독 당국이 “여기 써라” “저기 지원하라”고 할 수 있을까. 지금 수익이 지속될 수 있는 것인지도 봐야 한다. 현재 영업이익에 대해 간섭하는 것이 용인된다면, 경제 금융 여건이 나빠져 은행이 적자를 낼 경우 정부가 이를 보전해줘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은행이 영업을 잘못해 적자를 낸다면 직원 임금을 줄이고, 점포 숫자를 조정하고, 잘못된 상품 운용을 개선하는 등의 구조조정을 하도록 하는 게 감독당국이다. 독립 경영의 기반을 흔들면 금융회사들은 치열한 영업활동 대신 정부 지원에 기대려는 ‘도덕적 해이’에 빠지지 않을까. 이런 식의 관치는 금융산업 발전과 거꾸로 가는 것이다. 국제적 흐름과도 역행한다. 정부가 서민금융 지원을 강요하면서 취약층 대출에 대해 70%만 보증하겠다는 것도 이상하다. 나머지 30% 보증은 결국 은행의 우량 고객이 책임지라는 압박인 것이다. 인터넷은행을 향한 이른바 ‘중금리 대출 계획 수립’ 압박도 핀테크 발전이라는 큰 목표에 부합하는 것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서민금융 지원 자체가 문제 아니라 정부가 할 일을 은행에 미루는 것, 고신용 고객 돈을 쓰면서 생색은 정부가 내는 게 문제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