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 모방과 혁신의 관계
스티브 잡스
스티브 잡스
‘사업가’와 ‘기업가’는 다르다. 종종 동의어로 사용되지만, 사업가는 모방을, 기업가는 변화를 추구한다. 모방은 많은 경쟁자의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다듬어진 공식을 활용해 이른 시간 내에 경쟁자만큼의 수입을 올릴 수 있다. 하지만 모방만으로는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성장을 위해서는 변화가 필수적이다. 경제나 산업은 물론이거니와 종(種)으로서, 사회로서의 인류 역시 변화 없이는 조금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기업가와 사업가경제학자 슘페터는 기업가를 혁신가이자 ‘길들지 않은 정신’이라고 표현했다. 위험을 감수하고 혁신을 통해 산업을 바꾸고, 문명의 가장자리로 쫓겨나 지금껏 누구도 해본 적 없는 일을 시도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모든 여행자가 탐험가가 아니듯이 사업가와 기업가는 분명 다르다.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제도 사외이사이자 핀테크 기업 스퀘어의 공동창업자인 짐 매켈비는 그의 저서 《언카피어블》을 통해 기업가와 사업가를 각각 성벽 밖과 성벽 안에 머무르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성벽 안에 머무르는 사람들은 성공도, 존경도 받지만 노래만 부를 뿐 곡을 쓰지 않는 가수와 같다고 설명한다.

성벽 안에서 모방을 취하는 전략은 매우 이성적이고 안정적이다. 경쟁이 치열한 산업에도 통하며, 복잡하지 않고 단순명료하다. 환상적이라는 평가를 받지 못하면 경쟁에서 바로 도태되는 뉴욕의 레스토랑 사업도 마찬가지다. 뉴욕 대부분의 레스토랑은 같은 공급업체와 거래하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닮아간다. 동일한 인재풀에서 인력을 채용하는 탓에 경쟁 레스토랑의 셰프를 최고의 대우로 모셔오고, 주방이 망가지면 동일한 공급업체에 전화한다. 무엇하나 새로 발명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많은 사업이 이렇게 움직인다. 성숙한 시장을 찾아 모방하고, 약간 다듬어 좀 더 낫게 만드는 것이다. 혁신과 변화사실 모방은 본능이다. 인류의 시작은 논란거리지만,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는 명확하다. 부모의 복제를 통해서다. 인류와 동물, 벌레 모두 마찬가지다. 모든 생명체는 모방으로 태어난다. 하지만 동시에 자연은 모방만으로 완벽하지 않도록 설계됐다. 파트너 또는 화분 매개자를 찾아 종이 섞여야 진화되도록 만들어졌다. 즉 유성생식을 전제로 발전한다. 수학적으로 무성생식을 하면 유성생식의 경우보다 개체 수가 두 배 더 빨리 늘어날 수 있지만, 거의 모든 종은 유성생식을 한다. 완벽한 복제품이라고 하더라도 시간의 흐름을 이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무성종군은 진화가 느린 탓에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사라진다.

변화는 진보와 성장을 가져오고, 일반적으로 그 속도는 매우 느리다. 인류 역사 전반에 걸쳐 경제성장은 거의 끊임없이 이뤄졌지만 그 속도는 매우 점진적이었다. 하지만 가끔 폭발적인 성장을 가져오는 사건들이 등장한다. 휴대폰의 발전은 점진적이었지만, 스마트폰의 등장은 달랐던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폭발적인 변화를 ‘혁신’이라고 표현한다. 혁신을 위한 모방모방과 혁신은 반대말이 아니다. 폭발적인 변화와 성장을 목표로 노력한다고 해도 대부분의 일은 모방일 것이다. 다만 변화와 진보를 위해 모방은 혁신으로 이어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의 1997년 저서 《파괴적 혁신》 덕분에 혁신은 파괴를 동반하는 개념으로 이해돼 왔다. 하지만 많은 경우 혁신은 파괴가 아닌, 성장을 가져온다. 프랑스의 수학자 망델브로가 1967년 사이언스에 기고한 논문의 첫 문장은 ‘영국의 해안선은 얼마나 길까?’였다. ‘측정하는 방법에 따라 다르다’가 정답이다. 시장 역시 이와 같다. 혁신이 파괴를 동반한다는 생각은 기존 시장이 유한하다는 선입견 때문이다. 현재의 시각에서 시장은 유한해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 혁신과 기업가 정신의 결과물로서 시장을 살펴보면 시장의 경계는 한없이 광활한 지평선으로 변한다. 관련 사례는 많다. 미국의 혁신적 항공사 사우스웨스트가 댈러스~휴스턴 구간 운항을 시작했던 1971년 당시, 해당 구간은 미국의 34위 시장이었지만 1년 뒤 4위로 급상승했다. 사우스웨스트의 혁신으로 항공기 승객이 많아지자 경쟁사의 고객도 늘어난 결과였다. 2015년 이케아가 한국에 진입했을 당시, 자국 브랜드의 도태를 전망한 것과 달리 한샘과 일룸의 매출은 7%가량 증가했다. 약 20년 가까이 정체됐던 한국의 가구시장이 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매켈비는 모방으로 해결책을 찾기 어렵다고 깨닫는 그 순간 사업가에서 기업가가 된다고 설명하면서, 이쯤 되면 새로운 뭔가를 창조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기존의 방법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풀어내려 노력하는 과정이 곧 혁신인 셈이다. 많은 위대한 기업은 혁신을 위한 혁신을 하지 않았다. 그저 한계에 봉착한 문제의 한 부분을 풀어내자 또 다른 문제가 등장하고, 이를 해결하자 다시 문제가 등장하는 과정을 인내와 배짱으로 반복했을 뿐이다. 사람들은 이를 혁신이라 불렀고, 혁신이 축적되자 모방으로 해결할 수 없던 문제들이 풀린 것이다. 혁신이 변화를, 그리고 변화가 성장을 가져오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디지털 전환으로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재창조가 가능해진 오늘날, 각 분야에서 많은 기업가의 출현을 기대해본다. ☞ 포인트
김동영 KDI
전문연구원
김동영 KDI 전문연구원
사업가는 모방, 기업가는 변화 추구
성장 위해서는 변화 불러올
기업가적 혁신 정신이 필수 요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