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산업의 진화
조선초 숭례문 주변 시전행랑
우리나라 최초의 상설시장
1931년 종로에 첫 백화점
할인마트는 1993년 문 열어
우리는 고려시대까지도 화폐가 제대로 쓰이지 않을 정도로 유통산업의 발전이 더뎠다. 조선시대에도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 해서 상업을 낮게 평가했다. 국내 유통산업이 2019년 기준 134조1132억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7.9%를 차지하며 전체 취업자의 14%를 고용할 정도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짧은 기간 선진 제도의 도입과 혁신을 거듭한 덕분이다. 상설시장에서 복합쇼핑몰까지
우리나라에 상설시장이 생긴 것은 조선 개국 때로 태조 이성계가 도읍을 한양으로 정하고 숭례문(남대문) 주변에 ‘시전행랑(市廛行廊)’을 설치하면서부터다. ‘팔지 않는 물건이 없다’는 남대문시장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조선은 육의전으로 대표되는 시전상인에게만 물건을 팔 수 있는 권리(금난전권)를 부여하는 등 유통을 억제하는 정책을 썼다. 18세기 후반 정조 때 육의전을 제외한 모든 시전상인의 금난전권을 폐지하면서 자유로운 상업 활동이 허용되고 1897년 남대문시장이 최초의 근대적 상설시장으로 거듭났지만, 여전히 5일장과 보부상이 전국의 유통을 담당했다.조선초 숭례문 주변 시전행랑
우리나라 최초의 상설시장
1931년 종로에 첫 백화점
할인마트는 1993년 문 열어
쌀장사와 종이 수입으로 큰돈을 번 박흥식이 1931년 서울 공평동에 세운 화신백화점은 한국 첫 백화점으로 일제시대 일본 상인들이 장악한 국내 유통산업에서 한국인의 자존심을 지켰다. 박흥식은 화신연쇄점을 모집해 전국에 350개의 가맹점을 두는 등 프랜차이즈 사업을 도입한 인물로도 평가된다. 연쇄점은 같은 종류의 상품을 파는 점포를 여러 지역에 개설해 유통비용을 낮춘 사업모델이다.
슈퍼마켓은 1970년대 초 서울 한남동에 개점한 한남슈퍼가 첫 출발이다. 옷 식품 잡화 등 한 품목만 취급하는 동네 가게와 달리 다양한 상품을 값싸게 공급하면서 유통산업의 변화를 가져왔고 점차 기업화해서 슈퍼마켓 체인으로 대형화하기도 했다.
편의점은 1989년 서울 방이동에 개점한 세븐일레븐 올림픽점이 1호점이다. 산뜻한 인테리어에 24시간 운영체제를 갖추면서 편의점은 사실상 동네 가게를 몰아낼 정도로 인기를 누렸다. 편의점은 지금도 간편식뿐 아니라 택배, 금융, 세탁 서비스까지 제공하는 사실상 종합 생활 플랫폼으로 거듭나고 있다.
대형 할인마트는 1993년 11월 문을 연 이마트가 국내 최초다. 생활양식 변화에 따라 넓은 주차장과 영역별로 구분된 널찍한 매장을 갖춰 소비자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물품을 싼값에 구입할 수 있게 했다. 대형마트는 나아가 영화관, 식당, 백화점 등을 한곳에 모아 쇼핑 외에 문화 레저 등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복합쇼핑몰로 거듭나는 등 ‘유통 공룡’으로 위상을 확고히 했다. 온라인으로 진화하는 유통매장에 직접 가지 않고 전화나 PC로 물건을 살 수 있는 온라인 쇼핑은 국내에선 1995년 한국홈쇼핑(현 GS홈쇼핑)과 39쇼핑(CJ오쇼핑)이 첫 방송을 시작한 TV홈쇼핑이 최초다. 매장을 꾸릴 필요가 없어 가격이 저렴하고 연예인이 나와 친절하게 상품을 설명하며 집에서도 전화로 쇼핑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었다.
컴퓨터로 하는 온라인 쇼핑은 1996년 인터파크와 롯데닷컴이 효시다. 2000년대 중반에는 판매자들이 홈쇼핑 사이트에 입점하는 형태의 ‘오픈마켓’이 등장하면서 급성장했고 2010년부터는 스마트폰 보급과 함께 티몬, 쿠팡, 위메프 등으로 대표되는 모바일 커머스 경쟁이 시작됐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비대면(언택트) 문화가 널리 퍼지면서 온라인 쇼핑은 오프라인 매장을 더욱 위협하고 있다. 언제든 세계 어느 곳의 상품도 잠깐의 휴대폰 작동으로 구입할 수 있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해외 사이트에 주문하는 ‘해외 직구’도 크게 확산하고 있다. 최근에는 인터넷 방송을 통해 실시간으로 물건을 판매하는 라이브 커머스가 주목받고 있다. 라이브 스트리밍(live streaming)과 전자상거래(e커머스)에서 따온 합성어로 일방적으로 상품 정보를 전달하는 TV홈쇼핑과 달리 판매자와 구매자가 실시간 소통하며 거래한다는 점이 젊은 층 취향을 겨냥하고 있다. 유통의 미래는유통산업 발전은 단선적으로 이뤄진 게 아니다. 지금도 여전히 지방에서는 5일장이 열리고 편의점 백화점 대형마트 모바일 쇼핑 등 다양한 유통모델이 공존하며 치열한 경쟁을 거듭하고 있다. 대형마트는 전국 각지의 점포를 빠른 배송을 위한 거점으로 활용하고 새벽배송에 나서는 등 온·오프라인 통합 ‘옴니 채널’을 구축하고 있다. 정보기술(IT)업체 네이버와 카카오가 온라인 쇼핑에 뛰어들며 기존 유통업체를 위협하고 있다. 미국 아마존은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를 활용해 고객의 주문을 예측해 가장 가까운 창고로 물건을 보내는 ‘예측 배송’을 하고 있다. 쿠팡은 차량을 소유한 일반인을 배송기사로 활용하는 쿠팡플렉스를 도입했다. 드론과 로봇을 통한 물품 배송도 이른 시일 안에 보편화될 전망이다. 결국 싼값과 빠른 전달 등 소비자 편익을 극대화하는 사업모델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얘기다.
정태웅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redael@hankyung.com NIE 포인트① 가격 경쟁과 편의성에서 뒤처지는 전통시장이 살아남을 방안은 무엇일까.
② 오프라인 매장과 온라인 쇼핑의 장단점은 무엇이고, 각각 계속 성장하기 위한 혁신 방안엔 무엇이 있을까.
③ 유통시장 경쟁이 극대화하면서 물건을 납품하는 생산자에 단가 인하 압력, 배송기사들에게 장시간 근로 강요 논란이 빚어지는데 이들과 소비자 편익 간 이해충돌을 해결하는 방안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