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관의 인문 논술 강의노트
지난 시간에 이어 오늘은 실전 비판문제를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래와 같은 비판 물음은 연세대학교를 포함해 최상위권 대학 논술 및 면접고사의 주요 유형입니다. 따라서 여러 번 반복하여 다뤄보면서 사고구조와 비판논리의 전개방법을 습득하는 것은 매우 유용합니다. 문제를 보고 제시문을 분석한 후 답을 먼저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이후에 답을 확인해 보세요. 문제 : (가)의 입장에서 (나)를 평가하시오. (500자 이내)
(가) 아아, 개화하는 일은 남의 장기를 취하는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훌륭하고 아름다운 것을 보전하는 데에도 있다. 남의 장기를 취하려는 생각도 결국은 자신의 훌륭하고 아름다운 것을 돕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남의 재주를 취하더라도 실용적으로 이용하기만 하면 자기의 재주가 되는 것이다. 시세와 처지를 잘 헤아려서 이해와 경중을 판단한 뒤에, 앞뒤를 가려서 차례로 시행하야 한다.

그러나 지나친 자는 아무런 분별도 없이 외국의 것이라면 모두 다 좋다고 생각하고, 자기나라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심지어는 외국 모습을 칭찬하는 나머지 자기 나라를 업신여기는 폐단까지도 있다. 이들을 개화당(開化黨)이라고 하지만, 이들이 어찌 개화당이랴. 사실은 개화의 죄인이다.

한편 모자라는 자는 완고한 성품으로 사물을 분별치 못하여, 외국 사람이면 모두 오랑캐라 하고 외국 물건이면 모두 쓸데없는 물건이라 하며, 외국 문자는 천주학이라고 하여 가까이하지도 않는다. 자기 자신만이 천하 제일이라고 여기며, 심지어는 피해 사는 자까지도 있다. 이들을 수구당(守舊黨)이라고 하지만, 이들이 어찌 수구당이랴. 사실은 개화의 원수다.

성인 말씀에 “지나침과 모자람은 같다”라고 하셨지만, 개화하는 데에 있어서는 지나친 자의 폐해가 모자라는 자보다 더 심하다. 그 까닭은 다름이 아니다. 지나친 자는 자기 나라를 빨리 위태롭게 하고, 모자라는 자는 자기 나라를 더디게 위태롭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중용을 지키는 자가 있어서 지나친 자를 조절하고 모자라는 자를 권면하여, 남의 장기를 취하고 자기의 훌륭한 것을 지켜서, 처지와 시세에 순응한 뒤에 나라를 보전하여 개화의 커다란 공을 거둬야 한다. 입에는 외국 담배를 물고, 가슴에는 외국 시계를 차며, 의자에 걸터앉아서 외국 풍속을 이야기하거나 외국말을 얼마쯤 지껄이는 자가 어찌 개화인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는 개화의 죄인도 아니고, 개화의 원수도 아니다. 개화라는 헛바람에 날려서 마음속에 주견도 없는 한낱 개화의 병신이다.


(나) 그네는 과연 아무 힘이 없다. 자연(自然)의 폭력(暴力)에 대하여서야 누구라서 능히 저항(抵抗)하리요마는 그네는 너무도 힘이 없다. 일생에 뼈가 휘도록 애써서 쌓아 놓은 생활의 근거를 하룻밤 비에 다 씻겨 내려 보내고 말리만큼 그네는 힘이 없다. 그네의 생활의 근거는 마치 모래로 쌓아 놓은 것 같다. 이제 비가 그치고 물이 나가면 그네는 흩어진 모래를 긁어 모아서 새 생활의 근거를 쌓는다. 마치 개미가 그 가늘고 연약한 발로 땅을 파서 둥지를 만드는 것과 같다. 하룻밤 비에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발발 떠는 그네들이 어찌 보면 가련하기도 하지마는 또 어찌 보면 너무 약하고 어리석어 보인다.

그네의 얼굴을 보건대 무슨 지혜가 있을 것 같지 아니하다. 모두 다 미련해 보이고 무감각(無感覺)해 보인다. 그네는 몇 푼 어치 아니 되는 농사한 지식을 가지고 그저 땅을 팔 뿐이다. 이리하여서 몇 해 동안 하느님이 가만히 두면 썩은 볏섬이나 모아 두었다가는 한번 물이 나면 다 씻겨 보내고 만다. 그래서 그네는 영원히 더 부(富)하여짐 없이 점점 더 가난하여진다. 그래서 (몸은 점점 더 약하여지고 머리는 점점 더) 미련하여진다. 저대로 내어버려 두면 마침내 북해도의 ‘아이누’나 다름없는 종자가 되고 말 것 같다.

저들에게 힘을 주어야 하겠다. 지식을 주어야 하겠다. 그리해서 생활의 근거를 안전하게 하여 주어야 하겠다.

“과학(科學)! 과학!” 하고 형식은 여관에 돌아와 앉아서 혼자 부르짖었다. 세 처녀는 형식을 본다.

“조선 사람에게 무엇보다 먼저 과학(科學)을 주어야겠어요. 지식을 주어야겠어요” 하고 주먹을 불끈 쥐며 자리에서 일어나 방 안으로 거닌다. “여러분은 오늘 그 광경을 보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말에 세 사람은 어떻게 대답할 줄을 몰랐다. 한참 있다가 병욱이가,

“불쌍하게 생각했지요” 하고 웃으며, “그렇지 않아요?” 한다. 오늘 같이 활동하는 동안에 훨씬 친하여졌다.

“그렇지요, 불쌍하지요! 그러면 그 원인이 어디 있을까요?”

“무론 문명이 없는 데 있겠지요―--- 생활하여 갈 힘이 없는 데 있겠지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저들을…… 저들이 아니라 우리들이외다…… 저들을 구제할까요?” 하고 형식은 병욱을 본다. 영채와 선형은 형식과 병욱의 얼굴을 번갈아 본다. 병욱은 자신 있는 듯이,

“힘을 주어야지요? 문명을 주어야지요?”

“그리하려면?”

“가르쳐야지요? 인도해야지요!”

“어떻게요?”

“교육으로, 실행으로.”

영채와 선형은 이 문답의 뜻을 자세히는 모른다. 무론 자기네(가) 아는 줄 믿지마는 형식이와 병욱이가 아는 이만큼 절실(切實)하게, 단단하게 알지는 못한다. 그러나 방금 눈에 보는 사실이 그네에게 산 교육을 주었다. 그것은 학교에서도 배우지 못할 것이요, 대 웅변에서도 배우지 못할 것이었다. 답안 작성하기먼저 (가)의 입장을 잘 정리해둘 수 있어야 합니다. 기준이 되는 제시문의 입장을 잘 정리한 이후에 상대방에 대한 평가를 한 마디로 말끔히 정리하고, 이후 논리적으로 부연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가장 전달력 높은 답안을 만드는 정석적 방법입니다. 이와 같이 생각하여 답안을 쓴다면 아래와 같이 전개해 볼 수 있겠군요. 답안(가)는 문물의 수용과 전통 수호의 조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사회적 변화에 적응하고 대응하며 실리를 확보하기 위해 외적 수용이 필요하다면, 전통은 주체성과 가치의 바탕을 이루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쪽만으로 편중되는 것은 진정한 진보가 아니다. 이러한 절충적 관점은 서구중심의 수용만을 강조한 (나)의 비판 준거가 된다.

(가)의 입장에서 (나)를 한마디로 평가하자면 맹목적으로 서구적인 것을 좋다고 판단하고 스스로를 부정하는 무분별함이다. (나)는 과학적 지식의 장점을 취하여 개선시킬 것에만 급급하고, 자기의 훌륭한 것이 무엇인지 판단하려 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주변 사람들에 대해 연민하고 공감하며 연대적 발전을 하려는 가치관은 과학적 지식이 아니라 전통의 공동체적 가치관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지식과 효율에만 연연한다. 외적인 체제와 지식으로 모든 것을 변모시키겠다는 시도는 결국 자기 자신의 부정이다. ‘껍데기’만 발전하고 주체성을 잃는 근본적 위기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인지 분별하지 못하는 것이다. ☞ 포인트비판적 사고는 연세대학교를 포함해 최상위권 대학 논술 및 면접고사의 주요 유형입니다. 따라서 여러 번 반복하여 다뤄보면서 사고구조와 비판논리의 전개방법을 습득하는 것은 매우 유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