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 4차 산업혁명과 특허제도
![사진=연합뉴스](https://img.hankyung.com/photo/202012/AA.24646235.1.jpg)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 런던의 마리아나마추카토 교수는 《가치의 모든 것》을 통해 특허는 권리라기보다 정책적인 거래 혹은 협상에 가깝다고 설명한다. 혁신가는 일정 기간의 독점권의 대가로 발명의 세부사항을 공개해야 하고, 정책결정자는 혁신가의 사적인 이득과 공공의 이익을 비교해 의사결정을 내리기 때문이다. 특허는 혁신의 강력한 인센티브가 되어 장기적인 기술 진보의 속도를 높이지만, 한편으로는 특허권자의 시장권력을 증가시킨다. 가치착취의 수단으로서의 특허문제는 오늘날 특허 협상의 균형이 깨졌다는 점에 있다. 특허가 실질적인 발명의 결과물, 즉 제품만이 아니라 이를 가능하게 만든 지식에 대해서도 특허를 신청할 수 있게 된 점이 대표적인 요인이다. 특허가 진단방법, 분석방법, 응용 잠재력이 높은 과학적 원리 등에도 부여되면서 지식을 활용한 더 큰 혁신을 가로막는 수단이 되었다. 1980년 미국에서 통과된 베이·돌 법은 이러한 현상을 가속화시켰다. 베이·돌 법은 대학과 정부연구소들이 공적자금으로 수행한 연구 결과를 특허로 보유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상업화의 인센티브를 높여 산업과 대학 그리고 연구소 간 시너지를 높이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이는 혁신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과거에는 출판된 학술논문을 통해 해당 기술이나 지식을 바로 파악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해당 지식의 특허를 보유한 대학과 사용권을 협상하고, 로열티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1994년 통과된 해치·왁스먼 법도 특허가 혁신을 지연시키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이 법은 복제약이 이전보다 덜 쉽게 식품 의약군 승인을 받을 수 있게 함과 동시에 의약품의 특허 수명을 연장하도록 했다.
‘특허 트롤링’도 문제다. 거대기업이 경쟁자를 막기 위해 특정 영역에서 특허를 선점하는 전략적 특허의 한 방식으로, 제품을 개발해 상업화할 의도는 없이 전략적으로 특허만 확보해 다른 기업들로부터 로열티를 챙기거나 해당 지식을 무단으로 사용하는 기업들에 소송을 걸어 이득을 챙기는 것이다. 제품이나 서비스를 생산하지 않아도 특허 자체가 자본화되어 수익을 발생시킬 수 있는 것이다. 리스크의 사회화와 보상의 사유화디지털 전환으로 기술과 시장의 속도가 그 어느 때보다 빨라진 오늘날, 민간의 역할은 높이 평가하고, 정부의 역할은 낮게 여겨지는 암묵적인 동의가 널리 펴져 있다. 이는 특허의 범위가 더 넓어지고, 특허를 통한 보호가 보다 강화되도록 만든다. 특허는 기업가의 노력에 대한 보상일 때 정당성을 얻는다. 특허라는 인센티브는 혁신의 리스크를 감수할 용기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균형을 잃어버린 특허제도는 가치의 창조가 아닌 지대추구와 가치착취의 수단이 될 뿐이다. 영국과 미국, 독일 등 선진국의 산업화는 지식재산권 규칙이 훨씬 엄격하고, 확산에 유연한 시기에 이뤄졌다는 점을 잊지 않아야 한다. 재산권의 규칙은 유연하고, 확산에 엄격한 특허제도는 리스크는 사회화하고, 보상은 사유화되는 현상을 가속화시킬 것이다. 특허는 권리가 아닌 혁신을 위한 도구임을 기억해야 할 시점이다. ☞ 포인트
![김동영
KDI 전문연구원](https://img.hankyung.com/photo/202012/AA.21240535.1.jpg)
리스크의 사회화와 보상의 사유화
막기 위한 다양한 제도적 고민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