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재정준칙’을 마련해 국회에 법제화해 달라고 요청할 예정이다. ‘코로나 쇼크’ 등으로 인한 위기극복용 예산에다 선심성 재정지출까지 급증하면서 나라 빚이 급증하고 있다는 우려와 비판이 커지자 그에 대응한 전략이다. 한 마디로 건전재정을 위한 노력이다. 세계의 많은 나라가 정부의 수입(세입), 정부의 지출(세출) 등의 원칙을 담은 비슷한 재정준칙을 운용하고 있다. 헌법이나 법률로 명문화한 국가도 있고, 정당 간 합의 혹은 정치적 협약으로 하는 나라나 지방자치단체도 있다. 그만큼 건전재정은 경제발전에서 뿐 아니라 국가 유지에 중요한 요소다. 일정 수준 이상의 국가, 특히 선진국 그룹에서 없는 나라는 한국과 터키 정도 뿐이다. 문제는 정부안의 내용이 너무 느슨한데다, 지금 제정은 해두지만 시행은 5년 뒤에나 한다는 것이다. 이런 느슨한 재정준칙이라도 만들어야 할까.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한국형 재정준칙’ 도입 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한국형 재정준칙’ 도입 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찬성] 건전재정을 위한 노력의 가시화…일단 제도 도입부터코로나 위기 대응 과정에서 재정의 건전성이 악화된 것은 사실이다. 가뜩이나 1인당 국내총생산(GDP) 3만달러 시대에 들어서면서 성장세가 장기간 둔화되고, 국내외 경제여건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닥친 코로나 쇼크로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은 과거 어느 때보다 커졌다.

‘관제 일자리’라는 비판 속에서도 고용을 창출하고 경제적 약자들을 위한 사회안전망 구축에 막대한 예산이 투입됐다. 구조조정을 진행해야 하는 한계산업에 혈세를 투입해야하는 형편에서도 미래 먹거리를 위한 첨단 산업 투자까지 하려면 정부 예산은 부족하기만 하다. 그런 과정에서 국가채무가 늘어나게 됐다. 공기업과 공공기관 등 공공부문이 전반적으로 ‘사회적 가치’에 주력하면서 효율성과 경제성이 떨어진 것도 있다. 이런 기조에서 당분간 정부지출은 더 확대될 상황이지만, 그래도 건전재정을 지향하고 노력한다는 차원에서 준칙을 마련한 것이다. 다만 당장은 코로나 상황이 지속되고 있고, 그에 따른 불황이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만큼 곧바로 이상적인 수준으로 재정지출을 줄이기는 어렵다.

그래서 선진국 등의 기준을 준용하는 원칙을 세우되, 시행은 5년 뒤인 2025회계연도부터 하자는 ‘현실적 대안’이 마련된 것이다. ‘국가채무 비율을 GDP의 60% 이내로, 통합재정수지 적자를 GDP의 3% 이내로 한다’는 규정도 의미가 크다. 이 두 가지 규정을 함께 고려한 한도에서 벗어나면 정부는 ‘재정건전화 대책’을 수립해야만 한다. 아울러 2025년부터도 재정환경 변화를 감안해 5년마다 이 비율 등을 재검토하도록 규정함으로써 실효성을 높인 것에도 의미를 둘 수 있다. 경제 악화로 세원(稅源)이 줄어들고 실제 세금도 덜 걷히는 데다 인구감소 등으로 재정여건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이 정도 준칙도 쉽지 않은 결정이다. [반대] 규정도 느슨한데다 다음 정권이나 지키라는 건 곤란재정준칙 마련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준칙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지금까지 재정준칙을 수립해서 시행하라는 국민적 요구가 왜 나왔나. 장기 저성장에 국가채무는 급증하는데도 건전재정을 위한 실질적 노력이 많이 부족했던 것이다. 정부부터 그러했지만, 건전 재정을 위한 노력을 외면하기는 여야 간의 정쟁에 매몰돼온 국회도 마찬가지였다. 지속가능한 재정의 중요성을 잔뜩 강조하고, 법에 명문화하는 준칙을 만들면서 5년 뒤에나 시행하겠다니, 정부 의지가 의심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번에도 또 ‘코로나 위기’를 유예의 이유로 내세웠지만, 정부 의도는 한 마디로 느슨한 규정을 만드는 노력은 했으니 지키는 것은 다음 정권에서나 하라는 식 아닌가. 더구나 현 정부 행태를 보면 그동안 선심성 재정지출을 거침없이 해왔고, 2021년도를 비롯해 당장은 계속 ‘초팽창예산’을 이어가겠다고 하면서, 다음 정부에서나 건전 재정 노력을 기울이라고 하면 ‘면피·면책’정책일 뿐이다. 시행시기뿐 아니라 각론에서도 실효성에 의심이 가는 조항이 없지 않다. 가령 GDP의 3% 이내로 하겠다는 연간 재정적자 한도도 통합재정의 상황을 감안할 때 당장 몇 년 간은 ‘재정안전 지킴이’로서의 의미있는 규정이 되기는 어렵다.

긴축 예산, 지출 삭감과 구조조정 같은 일은 늘 인기가 없어 어느 정부나 기피하고 싶고 미루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국가가 유지되고 장기 발전을 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업무다. 기업이나 개인들도 번거롭고 힘들지만 군살을 빼고, 불요불급한 지출은 줄이고, 저축을 해야 또 다른 위기에 대응하면서 성장 발전을 할 수 있는 것과 같다. 그래서 많은 나라가 준칙을 만들면서 바로 시행하고 있다. 경제의 악순환을 부채질 하는 ‘부채공화국’의 고리를 정부가 앞서 끊어야 한다.
√ 생각하기 - 구속력 없이 실효성 낼수 있을까
[시사이슈 찬반토론] 5년뒤 시행하자며 '재정준칙' 도입한다는데…
건전재정을 위한 준칙이라면 구속력도 있어야 하고 실효성도 있어야 한다. 선언만 하고, 미이행 시 제재나 정상화를 위한 강제조치가 없다면 굳이 만드는 이유가 뭔가. 위기 등에 대한 재정집행에서의 예외를 인정하는 ‘보완성’까지 고려하자면 어려운 과제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보다 심각한 근본 문제가 무엇이며, 왜 이 준칙을 만들게 됐느냐는 상황과 연결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다만 지금 정부는 역대 최고로 예산을 많이 쓰면서 다음 정부더러 허리띠를 죄라고 한다면 일종의 도덕적 해이가 될 수 있다. 헌법이나 법률로 집행을 강제하는 재정준칙을 운용중인 나라가 117개국(국회 조사)이라는 대목도 참고할 만하다. 2019년 기준으로 공식 국가채무는 729조원이지만 공공기관부채, 연금채무를 포함하면 2198조원으로 이미 GDP의 115%에 달했다. 저투자와 저성장, 비활력 침체경제의 큰 원인이면서 결과이기도 하다. 기획재정부는 대한민국의 기획과 재정을 담당하는 수석 경제부처다. 그래서 부총리가 수장이다. 지속 성장과 국가의 장기발전에 부합하는 정책을 펼 책무가 있다. 재정 문제만이 아니다. 이런 문제를 국회가 보완해주는 게 이상적이지만, 한국의 정치 현실에서는 기대 난망이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