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또 부동산대책 예고한 靑, '풍차'와 싸우겠다는 건가
[한경 사설 깊이 읽기] 부동산 투기 잡겠다고 수요만 억제해서야…수급원리 따라야
‘6·17 부동산 대책’의 파장이 가라앉기도 전에 청와대가 22번째 대책을 예고했다. 전세 끼고 집 사는 것을 모두 시장 교란의 ‘주범’으로 간주해 틀어막는 규제 방향을 고수하겠다는 것이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21일 브리핑에서 “전세자금을 기초로 한 주택 마련이라는 갭투자는 한국에서 나타나는 굉장히 특이한 현상”이라며 “갭투자가 시장 안정성을 위협하는 것에는 단호히 대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6·17 대책으로 모든 정책 수단을 소진한 것은 아니다”는 경고도 빼놓지 않았다.

6·17 대책이 전세자금대출 문턱을 크게 높인 바람에 실수요자들 사이에선 “무주택자는 영원히 월세나 전세로만 살라는 것이냐”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중략)….

우선 시장 불안의 원인 진단과 처방이 잘못됐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올 들어 전셋값이 뛰어 매매수요를 일부 자극한 것은 사실이다. 부동산 정보업체 직방에 따르면 입주 1년이 안 된 서울 신축 아파트의 분양가 대비 전셋값 비율은 86.3%에 달했다. 그러나 이는 현 정부 들어 주택 공급이 쪼그라들고 시중에 부동자금은 넘쳐나는 상황에서 전셋값이 51주째 상승해 벌어진 일이다. 공급을 확대해도 모자랄 판에 ‘재건축 아파트 2년 거주 의무화’ 같은 고강도 규제를 내놓는 바람에 시장에서는 벌써부터 “세놨던 재건축 아파트 주인들이 입주하면서 전세매물의 씨가 마를 것”이라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내 집 마련을 꿈꾸던 무주택 서민의 불만이 폭발하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추가 부동산 대책을 예고한 것도 심각한 방향 착오다. 서울 아파트의 97%가 3억원을 초과하는데, 시가 3억원(종전 9억원) 이상 주택의 전세대출 제한 조치를 내놨으니 전세 끼고 집을 살 엄두도 내지 말라는 얘기나 다름없다. 서민들이 어떻게 집을 마련하는지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인해 선의의 피해자만 양산한 꼴이다.

정부가 21번의 대책을 내놓는 내내 “근절하겠다”고 공언한 ‘투기수요’도 실체가 모호하다. 법인을 세워 갭투자로 자본차익을 노리는 세력도 있겠지만, 당장 돈이 모자라 전세를 끼고 미리 집을 산 뒤 열심히 저축해 입주하려는 실수요자가 훨씬 많을 것이다. 6·17 대책은 투기수요라는 ‘허수아비’를 때려잡겠다고 서민들의 내 집 마련과 더 나은 집으로의 이주 꿈을 꺾어놨다는 점에서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정부는 언제까지 환상 속 거인을 잡겠다고 풍차를 향해 달려가는 돈키호테 같은 무모함을 거듭할 셈인가. 《한국경제신문 6월 23일자》
사설 읽기 포인트
21차례 반복된 부동산대책, 공급은 외면
주택시장 특성 이해 못한 정책은 백전백패
'생활여건 좋은 아파트' 수요·공급 동시에 봐야


[한경 사설 깊이 읽기] 부동산 투기 잡겠다고 수요만 억제해서야…수급원리 따라야
재화와 서비스의 가격은 변하는 게 기본이다. 수요-공급의 원리가 작용한다. 시장경제보다 국가가 통제하는 사회주의 경제에서 오히려 변동성이 더 큰 것은 수요와 공급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통상 계획경제에는 암시장이 있고, 이중 가격도 보편화된다.

가격 변동이 자유로운 시장경제에서도 급등과 급락은 경계의 대상이다. 인플레이션도, 디플레이션도 그래서 무섭다. 일반적 상품보다 생필품이나 기본적 자산에 이르면 얘기가 복잡해진다. 의식주와 에너지·통신·교육 비용이 안정적이도록 정부가 노력하지만,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의 가격 변동에서는 고려할 게 더 많아진다.

부동산, 특히 주택은 복합적 상품이다. 생활에 가장 원초적 필수품이면서 고도의 투자자산이기도 하다. 모자란다고 일반 공산품처럼 쉽게 생산할 수도 없거니와 공급량이 조금 과해지면 가격이 급락해버린다. 대다수가 관심 갖는 투자 상품이면서 공공성 논리도 많이 작용하는 영역이다. 먼저 사용하면서 후불(後拂)하는 상품이며, 구입자가 은행과 함께 사들이는 것이며, 가격의 10%만 있어도 일단 구입이 가능한 재화다. 지불은 30년, 50년에 걸쳐 이뤄지기도 하고, 거래방식 또한 매우 다양하다. 그래서 정부가 정책이라며 개입할 여지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거래상품으로서 주택이 갖는 이런 특성과 다양한 매매특성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면 정책은 백전백패다. 더구나 한국인의 주택 소유에 대한 바람은 매우 강한 데다, 지금은 유례없는 초저금리 시대다. 넘치는 시중의 돈이 자산 가격을 강하게 밀어 올린다. 전반적인 소득증가로 새집, 보다 편리한 집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주택보급률 100% 이상’이라는 통계 자체가 아예 의미가 없을 수 있다. 더 나은 주택에 대한 수요를 보면 좋은 집은 언제나 부족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가격 결정의 원리다. 가격이 오르는 것은 수요가 넘치거나 공급이 부족하다는 의미다. 물론 가격 급락은 그 반대다. 주택이나 증시를 자산시장 측면에서 본다면 큰 변화는 없는 게 좋다. 물가상승률 수준에서 안정적으로 움직이는 게 근로의욕 고취, 저축률 제고 등에 좋다.

어떻든 집값이 오르는 게 문제이고, 정부가 가격을 안정적으로 잡아보겠다면 수요와 공급 양면을 지혜롭게 볼 필요가 있다. 그런데 3년간 무려 21차례나 반복된 주택시장 대책이라는 게 온통 수요 억제다. 대출을 막고, 세금을 올리고, 앞서 발표한 정책을 갑자기 뒤바꾸다가 결국 거래허가제까지 꺼냈다. 반시장적이고 위헌적 발상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공급이라는 게 없지는 않았지만 소비자, 구매 희망자가 원하는 곳이 아니다. 서울 시내 생활여건이 좋은 곳의 아파트를 원하는데 낡은 아파트의 재건축·재개발은 막은 채 엉뚱한 곳에 신도시를 만들겠다고 한다. 공급은 외면한 채 집을 못 사게 하는 수요 억제만 쏟아내니 수요자들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다.

주택이라는 게 일생에 한두 번 매매하는 것인데, 2년 뒤 이사계획도 못 세우게 한다. 구입했으면 바로 이사해 들어가고, 그렇지 않으면 투기로 규정해 대출제한, 세금 과부과로 응징하는 식이다. 3년 뒤 자녀 진학에 맞춘 이사계획을 투기로 규정해 버렸다.

‘부동산은 정치’라는 말도 있다. 이 말은 정치적 이해타산으로 활용하라는 게 아닐 것이다. 정책이 포퓰리즘에 빠지지 말고, 표계산에서도 벗어나 시장원리에 따르라는 경고로 받아들여야 마땅하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