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의 속을 들여다보면 '고유어 같은 한자어'가
꽤 많다. '기어이, 기어코, 도대체, 어차피, 심지어,
무려, 하필, 점점, 우선' 같은 부사가 그런 예다.
꽤 많다. '기어이, 기어코, 도대체, 어차피, 심지어,
무려, 하필, 점점, 우선' 같은 부사가 그런 예다.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진한 안개'와 '짙은 안개'](https://img.hankyung.com/photo/202006/AA.22865310.1.jpg)
‘진하다’는 한자어…고유어로는 ‘짙다’
이때 ‘진갈색’ ‘진보라’가 ‘밝은갈색’ ‘밝은보라’로 제시됐다. 색이름이 실제 색깔과 달라 문구류와 디자인업계, 교육계에 혼란을 초래했기 때문이었다. 가령 ‘진갈색’이라고 하면 갈색보다 짙은 색을 떠올리는 게 일반적인 인식이다. 그런데 색칠을 해보면 오히려 ‘밝은 갈색’을 띠었다. 그래서 이를 실제 색깔에 맞게 밝은갈색, 밝은보라로 바로잡았다.
고유어 같기도 하고 한자어 같기도 한 이 ‘진-’은 무엇일까? “국물이 참 진하네.” “안개가 진하게 끼었다.” 이런 말을 일상에서 흔히 쓴다. “진갈색, 진노랑, 진빨강” 같은 단어도 자주 듣는다. 이때 ‘진’은 얼핏 보면 토박이말 같다. 하지만 한자어다. ‘津’이 그 정체다. 이 한자는 통상 ‘나루 진’(서울시 노량진, 충남 당진 등에 쓰인 ‘진’이다)으로 알려져 있지만 여기서는 ‘진액 진’, 즉 엑기스란 뜻이다. 진물, 송진 같은 데 쓰인 ‘진’이 모두 이 의미다.
이런 데 쓰인 ‘진’은 의미상 순우리말로 ‘짙다’에 가깝다. 그러니 진갈색, 진보라는 곧 짙은 갈색, 짙은 보라다. 이를 그동안 밝은 갈색, 밝은 보라에 잘못 붙여 써온 것이다. 국물이나 안개가 ‘진하다’라고 해도 되지만, 이를 ‘짙다’라고 써보자. 그러면 말맛이 더 깊게 우러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우선하다’와 ‘우선시하다’ 구별해 써야
우리말의 속을 들여다보면 이런 ‘고유어 같은 한자어’가 꽤 많다. 한자가 우리말에 들어와 토착화한 방식에는 몇 가지가 있다. 그중 부사어는 한자의식이 흐려져 구별하기가 더 쉽지 않다. ‘기어이, 기어코, 도대체, 어차피, 심지어, 무려, 하필, 점점, 우선’ 같은 부사가 그런 예다. 이 가운데 ‘우선’은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어떤 일에 앞서서. 아쉬운 대로’란 뜻으로 쓰이는 이 말은 한자로 ‘于先’이다. 작고한 원로 언론인이자 한글학자이신 정재도 선생은 생전에 이 말을 순우리말이라고 주장했다. 사전에서 한자 ‘于先’을 말밑으로 해놓았지만, 이는 마치 우리말, ‘우리’를 ‘于理’ 식으로 취음해 억지로 한자말을 만드는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이런 논란은 국어학자들이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우리가 글쓰기에서 조심해야 할 점은 이 ‘우선’과 또 다른 한자어 ‘우선(優先)’을 구별하는 일이다. 앞의 ‘우선’이 부사(예: 우선 이만하면 떠날 준비는 다 됐다.)인데 비해 ‘우선(優先)’은 명사다. ‘딴 것에 앞서 특별하게 대우함’을 나타낸다. “이 집은 매사가 아들 우선이다”느니, “우선적으로 지원한다”느니 할 때 이 ‘우선’이 쓰였다. 여기에 접미사 ‘-하다’를 붙여 동사를 만드는데, 이때 통사적 용법에 주의해야 한다. ‘우선하다’는 자동사라 ‘A가 ~에 우선하다’ 꼴로 쓴다. “학벌보다 능력이 우선하는 사회”가 그 예다. 타동사를 써야 할 문맥이라면 ‘우선시하다’를 써야 한다.(“그는 학벌보다 능력을 우선시한다.”)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hymt4@hankyung.com](https://img.hankyung.com/photo/202006/AA.22490448.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