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이야기

과학과 놀자 (1) 유전자
사람 유전자 2만 개…482개짜리 생물도 있어요
생물학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인이라고 해도 살아가면서 유전자라는 말을 많이 듣고 쓴다. 원래 유전자라는 용어는 말 그대로 유전되는 요소라는 의미로, 유전자는 부모로부터 자손으로 전달돼 자손이 부모를 닮게 만든다. 유명한 유전학자인 그레고어 멘델(Gregor Mendel·1822~1884)은 완두를 여러 가지 방식으로 교배시켜 유전자가 부모로부터 자손으로 어떻게 전달되는지 최초로 밝혀냈다.

20세기 들어 많은 과학자가 유전자의 실체를 연구한 결과 유전자는 생명체의 특성에 관한 정보를 담고 있으며 DNA와 같은 핵산의 형태로 세포 안에 저장돼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즉 유전자는 생명체로 하여금 생존하며 자신과 닮은 자손을 남기는 생명체 고유의 특성을 갖게 해준다.
생명체가 스스로 살아갈 수 있으려면 얼마나 많은 유전자가 필요할까?
사람의 32억쌍 뉴클레오타이드 가운데 유전자는 2만개

게놈(Genome) 또는 유전체라는 용어를 들어본 사람도 많다. 유전체는 생명체의 특성을 나타내는 유전자의 염기서열과 유전자로 기능하지 않는 핵산 염기서열의 총합이다. 어떤 생명체의 특성을 알기 위해서는 당연히 유전자에 담긴 서열 정보를 알아야 하므로 여러 생물을 대상으로 유전체 서열이 연구돼 왔다. 사람의 유전체를 구성하는 핵산의 염기서열은 미국과 유럽, 일본을 포함하는 국제 컨소시엄의 13년에 걸친 노력 끝에 2003년 완전히 밝혀졌다. 사람의 유전체는 약 32억 개의 뉴클레오타이드(핵산의 구성 단위)로 구성돼 있으며, 추가적인 분석을 통해 약 2만 개의 유전자가 있다는 것이 알려졌다. 사람 외에도 많은 생물의 유전체 서열이 밝혀졌는데 초파리(약 1억4000만 뉴클레오타이드), 벼(약 4억2000만 뉴클레오타이드), 효모(약 1220만 뉴클레오타이드), 대장균(약 460만 뉴클레오타이드) 등의 유전체 서열이 알려졌다.

당연한 얘기로 유전체 염기서열이 밝혀진 후 암호화된 뉴클레오타이드 염기서열 속에 어떤 유전자가 들어 있는지를 밝히는 연구가 뒤따랐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사람의 유전체에는 약 2만 개의 유전자가 포함돼 있고, 초파리, 벼, 효모, 대장균의 유전체에는 각각 약 1만4000개, 약 4만 개, 약 6300개, 약 4300개의 유전자가 각각 포함돼 있다.

각 생물의 유전체 속에 포함된 유전자 수와 그 정보는 오랜 시간에 걸쳐 그 생물이 적응과 진화해온 결과이므로 생물 사이에서 매우 다양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생명체가 스스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유전자는 몇 개일까? 다시 말해 모든 생명체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유전자는 몇 개일까? 모든 생명체는 핵막의 유무에 따라 원핵생물(핵막 없음)과 진핵생물(핵막 있음)로 구분된다. 앞서 얘기한 생물 중 대장균을 비롯한 세균은 원핵생물이며 효모, 벼, 사람은 진핵생물에 속한다. 과학자들은 생명체가 존재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유전자를 알아보기 위해 먼저 원핵생물을 대상으로 연구했는데 원핵생물은 진핵생물에 비해 세포 크기가 작고 유전자 수가 적어 다루기가 쉽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유전체 염기서열이 알려진 생물 중 가장 작은 유전체와 가장 적은 수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생물은 ‘생식기에 있는 마이코플라스마 세균’이라는 뜻을 가진 ‘마이코플라스마 제니탈리움’이라는 원핵생물이다. 이 세균은 482개의 유전자만을 가지고 있어서 생명체가 스스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유전자를 조사하기에 매우 적합했다. 과학자들은 이 세균의 유전자에 하나씩 돌연변이를 일으켜 생존과 번식에 불필요한 유전자를 제거했다. 그 결과 382개의 유전자만 있으면 세균이 스스로 살아가며 번식할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인공유전체로 ‘맞춤형 생물’ 만들 수도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최소 유전자를 밝히는 일은 단순한 과학적 호기심을 떠나서 인류가 처한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이용할 수 있다. 유명한 생명공학자이자 사업가인 크레이그 벤터(Craig Venter·1946~)는 이와 같은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인공유전체를 만들고 이것을 염색체가 제거된 세균 세포에 넣어서 ‘실험실에서 만든 마이코플라스마 세균’이라는 뜻을 가진 ‘마이코플라스마 래보라토리움’을 창조했다. 이와 같은 기술을 이용해 우리가 원하는 유전자를 넣어서 특정 목적을 위한 맞춤형 생물을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석유 분해 유전자를 포함하는 세균을 이용해 석유 누출로 오염된 곳을 정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외에도 인류가 처한 자원 고갈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바이오연료 생산 인공생명체, 질병 치료 신약 생산용 인공생명체 등 무궁무진한 목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특정 목적으로 만들어질 인공생명체는 인류의 삶을 윤택하고 편리하게 바꿔놓는다는 장점도 갖지만, 여러 가지 위험성 역시 내포하고 있다. 생명체는 불변의 존재가 아니다. 삽입된 유전자에 끊임없이 돌연변이가 발생해 유전자가 변형되기도 하며, 어떤 인공생명체의 유전자가 다른 생물로 전달돼 기존의 생명체에 예기치 못한 특성을 부여할 수도 있다. 때때로 이것은 인류에게 재앙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이와 같은 문제점을 최소화하면서 인류가 당면한 여러 핵심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연구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 기억해주세요

유전체(Genome)는 생명체의 특성을 나타내는 유전자의 염기서열과 유전자로 기능하지 않는 핵산 염기서열의 총합이다. 사람의 유전체는 약 32억 개의 뉴클레오타이드(핵산의 구성단위)로 구성돼 있으며, 추가적인 분석을 통해 약 2만 개의 유전자가 있다는 것이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