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 4차 산업혁명과 체험형 몰입기술

체험형 몰입기술이 발달하면서
실제와 비슷한 '가상경험'이 가능
VR은 다양한 영역에서 부가가치 창출
[4차 산업혁명 이야기] VR·AR·MR 기술 발달로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모호해져
2015년 11월 13일 열린 프랑스 축구 대표님과 독일의 26번째 맞대결은 7만2000명의 관중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프랑스의 주도권이 이어지던 경기는 스타디움 앞 식당에서 발생한 두 차례 폭발로 중단됐다. 같은 시간 파리 곳곳에서는 무차별 총격이 발생했다. IS의 소행으로 밝혀진 파리 테러로 인해 160명 이상이 사망하고, 300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프랑스는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국경을 봉쇄했다. 한편 세계인들은 그 어느 때보다 프랑스의 슬픔에 공감할 수 있었다. 유럽의 심장부인 파리에서 발생한 테러였다는 점 외에도 뉴욕타임스가 VR 기술을 뉴스에 접목해 프랑스의 슬픔을 생생하게 전달했다는 점에도 기인했다.

VR 기술의 개념과 특징

VR이란 ‘Virtual Reality’의 약자이다. ‘가상현실’이라는 표현으로 번역되지만 VR기술을 담아내기에 충분하지 않다. ‘가상(假想)’의 사전적 정의는 ‘사실이 아니거나 사실 여부가 분명하지 않은 것을 사실이라고 가정하는 것’이다. 영영 사전에서의 ‘virtual’은 ‘대부분 실질적인 것’ 혹은 ‘현실 세계라기보다는 인터넷이나 컴퓨터에 의해 만들어지고 행해지고, 보이는 것’을 의미한다. 즉, VR 기술은 가상현실이라기보다 ‘인공현실’로 표현하는 것이 보다 정확하다. 결국 VR 기술이란 현실 세계와 실질적으로 같은 공간을 인간 주변에 만들어내는 기술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한편 몰입감과 현존감은 VR기술의 핵심이다. 이로 인해 사용자는 디지털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진정한 ‘경험’을 할 수 있다. 기존 통념에서 경험이란 ‘실제 세계’에서 벌어지는 무언가였다. 물론 과거의 미디어로도 간접적인 경험이 가능했다. 하지만 실제 경험이 주는 영향력에는 비할 바가 되지 못했다. 설령 8K TV가 등장하더라도 TV에 의해 이뤄지는 밀도가 낮은 추상화는 물리적 세계를 대신하지 못한다. 영화나 비디오게임과 같은 다중감각 미디어일지라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VR기술이 등장하면서 실제 경험과 간접 경험의 격차가 줄어들고 있다. 현실 세계와 완전히 같지 않지만 기존 어떤 매체보다 강력한 경험을 제공한다. 버튼 하나만 클릭하면 앉은 자리에서 스카이다이빙을 경험할 수도 있고, 일제 강점기 시절 철거돼 지금은 볼 수 없는 돈의문을 체험할 수도 있다.

AR, MR, CR로 확장되는 VR기술

VR로 시작된 실제 경험과 간접 경험의 격차는 AR, MR기술로 확장되면서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VR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이들 세 가지 기술은 VR기술을 보완하며 새로운 경험을 제공한다. AR은 ‘증강현실’이라고 표현된다. 이는 현실공간에 가상의 영상정보를 합성해 제공하는 기술이다. VR을 실현하는 헤드마운트디스플레이는 현실 세계를 차단하고 완전히 다른 세계로 사용자를 데려가는 기술이라면 AR은 현실 세계에 겹쳐서 나타내는 기술이다. 아큐베인의 AR의료장비 ‘AV500’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장비를 이용하면 환자의 열 신호가 실제 피부 위에 이미지로 구현돼 정맥의 위치를 쉽게 찾을 수 있다. ‘MR’은 ‘복합현실’이라고 한다. 현실세계에 대한 삼차원 정보를 감지해 사용자의 위치와 자세에 따라 가상물체를 현실세계 속 실제 물체와 함께 존재하는 것처럼 생성해 사용자 입장에서 가상물체와 실제물체가 현실처럼 서로 인터렉션함으로써 모두 실제인 것처럼 느끼게 해주는 기술이다.

인간의 본래 역량을 강화하도록 도와주는 기술

디지털 혁명을 구현하는 IoT, 빅데이터, AI 기술은 모두 ‘데이터를 활용한 생산성의 증진’이라는 목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오늘날의 경쟁력은 데이터의 확보보다 넘쳐나는 데이터와 지식을 어떻게 이해하고 적용할 것인가에서 창출된다. 즉, 인간과의 인터페이스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현존감 높은 VR·AR은 해결책이 될 수 있다. 한편 기술의 발달은 언제나 인간 역할의 위축이라는 두려움을 만들어냈다. 기술 발전 단계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문제임과 동시에 단 한 번도 현실화된 적 없는 두려움이기도 하다. 지난 수백 년간 기술은 인간을 대체해왔으며, 이를 통해 생산성과 생활수준을 극적으로 개선해왔다. 하지만 일자리는 언제나 증가했다. 새로운 유형의 노동자들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중요한 점은 기술의 발전에 맞춰 인간의 역할을 새롭게 규정하는 일이다. 인간은 기계가 흉내낼 수 없는 정교한 운동기능을 갖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뛰어난 인지능력으로 정보를 해석하고 판단해 새로운 상황에 적용하는 방법을 손쉽게 수행한다. 유연성과 상상력, 직관, 창의력은 결코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능력이다. 기술의 진보는 인간을 위협하는 대신 인간 고유의 능력이 배가 되도록 도와줄 것이다. 즉, 기술의 힘과 인간 고유의 능력이 합쳐져 더 큰 생산성과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체험형 몰입 기술이라는 인터페이스에 의해 구현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