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4차 산업혁명과 신뢰 (2)

디지털 플랫폼 시대 진화할수록
책임소재·신뢰성 문제 불거져
'효율성'에 대한 비판적 시각 필요
[4차산업혁명 이야기] 디지털 플랫폼이 발달할수록 책임 소재는 불분명해져
오늘날 많은 사람은 낯선 사람의 차량에 오르고, 처음 보는 사람의 방에서 하루 밤을 보낸다. 우버 기사가 악랄한 전쟁범죄를 저지른 전쟁군인이라는 소식이 전해져도, 에어비앤비에서 몰카 범죄가 발생했다는 뉴스가 나와도 우버와 에어비앤비의 이용자 수는 날로 증가하고 있다. 우버의 활성이용자 수는 월 1억 명을 넘었으며, 에어비앤비는 하루 이용자 수 400만 명을 기록했다.

플랫폼 시대의 신뢰와 책임의 문제

시대를 막론하고 어느 분야든 위험한 사람들은 존재한다. 비단 우버와 에어비앤비뿐만이 아니다. 하지만 다른 점은 오늘날 발생하는 문제의 경우 책임소재가 불분명하다는 점에 있다. 이전의 세상에서는 문제가 발생할 경우 책임소재가 명확했다. 제조사가 혹은 서비스 제공 주체가 책임을 지고 원인을 규명했으며, 소비자에게 사과했다. 하지만 플랫폼 시대의 사업자들은 다르다. 이들은 직접 자산을 보유하거나 외부업체를 고용하지 않고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단지 수요자와 공급자를 중개하고 그 대가로 수수료를 받을 뿐이다. 우버의 경우 중개의 대가로 전체 요금의 최대 25%를 수수료로 가져간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책임의 소재가 플랫폼 기업에 있는지, 플랫폼 노동자에게 있는지, 아니면 이들을 고용하여 제공한 업체에 있는지 명확하지가 않다.

상향식 신뢰에서 하향식 신뢰로 변화

책임소재가 명확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점점 더 많은 사람이 플랫폼 서비스를 이용하는 이유를 <신뢰이동>의 저자 레이첼 보츠먼 교수는 신뢰하는 방식의 변화에서 찾는다. 기업이 중앙에서 신뢰를 통제하던 상향식 신뢰가 오늘날 플랫폼을 중심으로 하는 하향식 신뢰로 변경됐다는 것이다. 책임소재가 명확하던 시대에 사람들은 브랜드를 믿고 구입하는 제품을 신뢰했다. 1800년대 후반 지역 상인들이 대규모 회사로 발전하면서 대량생산이 확산되자 평판만으로는 구입하는 제품과 서비스의 품질을 신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기업 역시 브랜드의 신뢰가 훼손되지 않도록 행동해야만 했다. 하지만 소셜미디어가 보편화되자 상황은 달라졌다. 브랜드보다는 상품평과 피드백, 사진 게시물의 수와 ‘좋아요’를 통한 추천 수가 보다 중요해졌다. 일방적으로 영향을 받는 대상이었던 소비자들은 참가자이자 홍보대사가 됐으며, 실망하면 비판자로 돌변하는 까다로운 존재가 됐다. 더 이상 고분고분한 소비자를 대상으로 중앙에서 신뢰를 구축하고 통제하던 방식은 작동하지 않았다.

플랫폼은 신뢰를 구축하고 관리하는 방식을 하향식으로 바꿔놓았다. 오늘날 사람들은 플랫폼이라는 시스템 하에 모이고 연결된다. 플랫폼을 통해 탑승하고, 여행하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참여자들은 공동체를 형성하고, 공동체 구성원들의 의견을 중요하게 받아들인다. 공동체가 신뢰의 핵심이 된 것이다. 가장 신뢰할 만한 광고는 우리가 알고 믿는 사람으로부터 직접 들은 내용이라는 설문조사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닐슨의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0% 이상이 친구와 가족의 추천을 신뢰하고, 전체의 3분의 2가 온라인 소비자들의 상품평을 신뢰한다고 응답했다.

비즈니스 모델로서의 신뢰

하지만 플랫폼은 중립적이지 않다. 플랫폼 기업에 신뢰란 복잡한 비즈니스 같은 것이다. 신뢰가 없다면 낯선 이의 차에 올라타지 않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 방을 빌려주지도, 빌리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에 사람 간의 연결이 도로나 철도, 다리와 같은 물리적 기반을 매개로 가능해졌다면, 오늘날에는 낯선 사람을 온라인상에서 연결해주는 알고리즘이 존재한다. 이들은 필요한 자동차와 빈 방, 그리고 데이트 상대 등을 번거로운 절차 없이 구할 수 있도록 도와줌으로써 사람들의 신뢰를 얻는다. 마법처럼 보이는 이런 플랫폼의 이면에는 수학천재들이 만든 20억 개 이상의 명령행으로 구성된 알고리즘이 작동하고 있다. 1969년 인간의 달 착륙을 위해 필요한 명령행은 약 5000개였다.

시대에 따라 기술은 진화하지만, 신뢰가 하루아침에 쌓일 수 없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신뢰란 서서히 일관된 과정을 거치면서 쌓인다. 이 과정에서 시간이 필요하고,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한 투자와 노력도 필요하다. 신뢰는 필연적으로 비효율성을 내포하는 것이다. 오늘날 플랫폼이 가져다주는 효율성이 신뢰의 적이 될 수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플랫폼을 통한 알고리즘은 우버, 에어비앤비, 넷플릭스, 틴더, 페이스북, 구글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삶 깊숙한 곳에 이미 들어와 있다. 지속적으로 다양한 측면에서 알고리즘의 통제를 받고 있는 것이다. 수학자 캐시 오닐은 그의 책 <대량살상 수학무기>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기계는 단지 중립적으로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그저 모든 것이 공명정대할 것이라고 무작정 믿어버리지 않을 때 보다 책임감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 판단주체로서의 지위는 언제나 알고리즘이 아닌 우리에게 남아 있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