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모니의 장광설은 중생을 계도하는
진실한 설법을 상징하는 말이었다.
중국 북송 때 최고 시인인 소동파가 남긴 시구
'溪聲便是長廣舌…'에 본래 의미의 장광설이 나온다.
말의 세계는 깊고도 오묘하다. 별의별 단어들이 다 있다. 지난 호들에서 살핀 ‘주책’ ‘엉터리’ 등은 아예 뜻이 반대로 바뀌어 쓰이는 사례다. 세월이 흐르면서 말의 의미와 쓰임새가 달라지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장광설’도 그중 하나다. 쓸데없이 장황하게 말을 할 때 “장광설을 늘어놓는다”고 한다.진실한 설법을 상징하는 말이었다.
중국 북송 때 최고 시인인 소동파가 남긴 시구
'溪聲便是長廣舌…'에 본래 의미의 장광설이 나온다.
유창한 부처님 설법 뜻하던 ‘장광설’
인류 역사에서 장광설을 가장 잘 늘어놓은 사람은 누구였을까? 석가모니다. 그는 이 말이 태어나게 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사연을 알아보기 전에 짧은 문답풀이를 하나 해보자. ‘천동설, 감언이설, 대하소설, 성선설, 횡설수설, 장광설.’ 모두 ‘-설’로 끝나는 복합어다. 이 중 특이한 ‘-설’이 하나 있다. ‘장광설’이다. 길게 늘어놓는 말을 가리키니 ‘말씀 설(說)’을 쓸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혀 설(舌)’자다. 나머지는 모두 ‘말씀 설’이다.
그 앞에 ‘긴 장(長), 넓을 광(廣)’이 붙었다. ‘길고도 넓은 혀’란 뜻이다. 여기에서 ‘길고 줄기차게 잘하는 말솜씨’란 의미가 나왔다. 이 장광설은 석가모니의 신체적 특징 중 하나였다고 한다. 석가모니의 장광설은 중생을 계도하는 진실한 설법을 상징하는 말이었다. 중국 북송 때 최고 시인인 소동파가 남긴 시구 ‘溪聲便是長廣舌…’에 본래 의미의 장광설이 나온다. ‘계곡 물소리가 곧 부처의 유창한 설법이네…’란 뜻으로, 폭포소리에서 얻은 깨달음을 담은 표현이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이 말이 일상의 단어로 자리 잡으면서 원래 의미가 퇴색했다. 대신에 ‘길고 지루하게 늘어놓는 너스레’란 뜻이 덧칠해졌다. 지금은 이 말을 대부분 후자의 의미로 쓴다.
1957년 완간된 한글학회 <조선말 큰사전>까지만 해도 장광설의 풀이는 ‘길고도 세차게 잘하는 말솜씨’였다. 다른 풀이는 없었다. 1961년 민중서림의 <국어대사전>(이희승 편)에는 여기에 오늘날 쓰는 부정적 의미가 더해졌다. 사전상으로만 본다면 이즈음에 ‘장광설’이 의미이동을 이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세월 흐르며 부정적 의미로 바뀌어
장광설을 늘어놓다 보면 자칫 횡설수설에 빠지기 십상이다. 장광설이 후대로 오면서 좋지 않은 뜻으로 바뀐 것처럼 횡설수설도 비슷한 경로를 거쳤다. 횡설수설의 ‘횡(橫)’과 ‘수(竪)’는 가로와 세로를 의미한다. 원래 ‘가로로나 세로로나 다 꿰뚫어 알고 있음’을 나타내는 좋은 말이다. 이 말의 출처인 중국에서는 지금도 ‘횡설수설’을 ‘이리저리 설득하다, 반복해 깨닫게 하다’(네이버 중국어사전)란 뜻으로 쓴다.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이 말을 ‘조리 없이 이러쿵저러쿵 지껄인다’는 뜻으로 쓴다.
횡설수설이 부정적 의미로 바뀌게 된 데는 글자 ‘횡’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橫은 본래 ‘가로’ 의미로 시작했지만 ‘갑작스러운, 제멋대로’란 파생 의미로도 많이 쓰인다. 횡포(橫暴), 횡행(橫行), 횡령(橫領), 비명횡사(非命橫死) 같은 데 이 ‘횡’ 자가 쓰였는데 모두 부정적인 뜻을 담고 있다. ‘횡설수설’도 원래는 조리가 정연한 말이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말을 되는 대로 내뱉는 것을 가리키게 됐다는 게 정설이다. 이를 순우리말로 하면 ‘개소리괴소리’다. 개 짖는 소리와 고양이 우는 소리라는 뜻으로, 횡설수설하는 것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횡설수설이 더욱 심해져 아예 말이 안 되는 지경에 이르면 ‘언어도단(言語道斷)’이다. 글자 그대로 ‘말할 길이 끊어졌다’는 뜻이다. 국립국어원에서 ‘말이 안됨’으로 순화했으나 말맛을 살리지 못해 죽은말이 됐다. 말다듬기의 방향이 어디에 있는지를 시사하는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