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샛 경제학 (35) 복지포퓰리즘과 재정건전성
넓은 영토, 풍부한 곡식, 넘치는 석유와 셰일가스가 존재하는 나라. 이를 바탕으로 1차 대전 이후 유럽의 그 어떤 나라보다 부유했던 나라. 하지만 지금 고물가와 경제위기로 지구촌 ‘허당’ 국가로 전락한 나라. 축구 천재 리오넬 메시의 아르헨티나다. 아르헨티나 몰락의 원인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1940년대 중반 후안 도밍고 페론 대통령이 씨앗을 뿌린 ‘복지 포퓰리즘’이 최악의 원인이다. 식량, 주택, 교육 등 국민 생활과 관련한 모든 영역에 걸쳐 지급된 공짜 보조금이 국민과 국가를 파탄의 길로 이끈 것이다.한국의 늘어나는 복지 지출
최근 한국에도 이처럼 현금을 지급하는 복지정책이 우후죽순처럼 나타나고 있다. 정부는 물론이고 지방자치단체들이 경쟁적으로 공짜 퍼레이드를 벌이고 있다. 기초연금과 청년수당, 고교 무상교육지원 계획이 그렇다. 지난 2월 발표한 제2차 사회보장기본계획에 따르면 올해부터 5년간 총 332조원가량이 순수 사회보장성 복지라는 명목으로 투입된다. 여기에는 고용보험 대상자 확대, 병원비 부담 경감, 소득보장을 위한 현금수당 등이 포함된다. 물론 국민의 기본적인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목적의 정책은 누구나 환영한다. 문제는 복지 지출은 한 번 지출이 시작되면 고정적·경직적인 예산이 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대상자가 늘어나면서 소요 예산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실제로 건강보험 재정의 경우 수혜자 확대로 인해 2026년 고갈된다는 분석이 나왔다. 재정적자와 국가채무
국가 경제가 휘청거리는 아르헨티나, 그리스, 이탈리아, 베네수엘라 등의 공통점은 현금 수당과 복지 지출을 급격하게 늘렸다는 데 있다. 가계도 수입보다 빚이 많으면 파산하듯 국가도 마찬가지다. 국가 경제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빚은 좋지 않다. 재정위기국의 경우 ‘재정적자’나 ‘국가채무’가 심각한 상황이다. 재정적자란 한 해 나라 살림에서 정부가 쓴 세출 규모가 거둬들인 세입 금액을 웃돌아 발생하는 적자를 가리킨다. 이때 정부는 부족한 재정을 메우기 위해 중앙은행에서 차입하거나 국공채를 팔아서 돈을 구해 쓴다. 이게 바로 나라의 빚, 즉 국가채무다. 앞선 나라들이 경제위기를 겪는 것은 모두 국가 재정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했다. 복지 포퓰리즘이 만연하면 고정적 지출은 많아지는 반면, 산업 경쟁력을 끌어올려 생산성을 높이지 못해 조세 수입은 감소한다.
결국 부담은 국민의 몫
한국은 대외적으로는 건전재정국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부채 기준을 달리하면 부채 비율이 점점 높아진다. 한국의 2017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D1) 비율은 38.2%다. 국가채무는 금액으로는 660조원이다. 그리고 일반 정부 부채(D2) 비율은 42.5%, 공기업 부채까지 범위를 넓힌 공공부채(D3) 비율은 60.4%로 높아진다. 올해 33조원인 재정적자 규모는 2022년까지 63조원으로 두 배 늘어난다. 그 기간 누적 재정적자는 195조원에 달한다. 게다가 한국은 세계에서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고령화·저출산이 진행 중이다. 복지와 관련한 ‘의무적 지출’은 시작되면 대상 집단의 반발로 줄일 수도 없다. 결국 정부는 지출이 세입보다 늘어나면서 이를 메우기 위해서는 국채를 발행하거나 세금을 올려야 한다. 결국 국민이 부담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는 ‘페이고 원칙’과 같이 준칙을 세워 정부 재정을 엄격히 관리해야 한다.
■ 페이고 원칙[Pay as you go]
pay as you go란 문장은 ‘현금으로 지불하다’ ‘지출을 수입 안에 억제하다’라는 뜻이다. 의무지출을 위한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새로운 입법을 하고자 할 때 이에 상응하는 세입 증가나 법정지출 감소 등 재원조달 방안이 동시에 입법화되도록 의무화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정부의 새로운 재정지출 항목이 추가됨으로써 재정수지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상쇄시키기 위해서다.
정영동 한경경제교육연구소 연구원 jyd54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