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 한국 '마이너스 성장' 쇼크

전문가들 "친기업정책으로 성장 돌파구 찾아야" 조언
10년 만에 '최악 경제성적표' 받은 소득주도성장론
문재인 정부는 2017년 5월 집권 직후부터 ‘소득주도성장’을 경제정책 기조로 채택했다. 최저임금을 2년간 약 30% 올렸고, 주 52시간 근로제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도 단행했다. 의욕적으로 정책을 밀어붙였지만 성과는 기대와 다르다. 생산·투자·고용·수출 등 모든 경제 지표가 하락세다. 올 1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 만에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청년실업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소득주도성장론의 핵심은 ‘선순환’

현 정부의 핵심 정책인 소득주도성장론은 정부 출범 초기에 수립됐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가계소득을 높이면 소비가 확대돼 투자가 늘고, 성장으로 이어진다는 게 핵심 논리다. ‘칼레츠키 학파’(폴란드 경제학자 미하우 칼레츠키가 이끈 포스트 케인지언 학파)의 성장 모형인 임금주도성장론의 한국판이다. 자영업자 비중이 높은 한국 실정을 감안해 임금(wage) 개념을 자영업자 소득까지 포괄하는 소득(income)으로 확대했다는 정도만 차이가 있다.

소득주도성장론의 키워드는 선순환이다. 소비 증가는 곧 기업들이 판매하는 물건 및 서비스 수요가 늘어난다는 의미다. 기업들은 소비자가 원하는 물건을 더 많이 생산하기 위해 생산 설비를 보강한다. 이 과정에서 고용도 늘어난다. 일자리를 얻은 사람들이 소비를 늘리면 다시 기업 투자가 확대되고 경제가 끝없이 성장한다는 이론이다. 임금이 오르면 생산성 역시 자연스럽게 늘어난다는 게 소득주도론자들의 주장이다. 월급이 오른 노동자는 신바람이 나 일하게 된다는 얘기다. 노동자가 임금을 많이 주는 기업주에게 호의를 갖게 돼 비생산적인 ‘노동 투쟁’ 역시 사라지게 될 것이란 논리도 깔고 있다.

좋은 이론이 왜 현실에선 안 통할까

10년 만에 '최악 경제성적표' 받은 소득주도성장론
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집중적으로 펼쳤지만 주요 경제지표가 줄줄이 하락한 이유는 뭘까. “듣기 좋은 이론이지만 현실에선 작동할 수 없는 모델”이라고 경제 전문가들은 단언했다. 임금을 올리면 가계 소득이 늘어 소비가 증가하는 긍정적인 효과가 일부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동시에 기업 비용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소비 증대가 기업 수익 감소로 인한 경제적 타격보다 클 때만 선순환이 이뤄진다는 얘기다.

또 임금이 10% 오른다고 소비를 종전보다 10% 늘리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게 경제학자들의 지적이다. 연금과 세금, 이자비용 등 다른 지출도 덩달아 늘기 때문이다. 반면 기업의 비용 부담은 정확히 10% 오르게 된다. 수익이 감소하니 투자·고용을 줄이고 심지어 문 닫는 기업이 나오게 된다. 결과적으로 실업률이 치솟고 경제 역시 활력을 잃을 수 있다.

기업이 임금을 올리면 직원들이 애사심을 갖고 스스로 생산성을 높일 것이란 주장도 틀렸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가 강제로 임금을 올리면(최저임금 인상) 근로자들은 기업에 충실하기보다 정치·노조 활동을 통해 임금 인상을 꾀하기 쉽다는 게 정치경제학계의 설명이다.

국제 경제학계에서도 소득주도성장은 극소수 이론일 뿐이다. 실증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로버트 배로 하버드대 교수 등 주류 경제학계의 석학들은 “임금주도 성장은 경제학적으로 맞지 않는 터무니없는 아이디어”라고 비판했다. 과도한 복지와 임금·연금 인상으로 국가 부도를 겪었던 그리스, 경제 위기가 심해지자 최저임금을 300% 이상 올렸지만 경제 상황이 되레 악화된 베네수엘라 등은 소득주도성장 실험의 대표적인 실패 사례다.

친시장·친기업 정책 펴야 경제 성장

정부가 검증되지 않은 이론을 밀어붙이다가 ‘역성장 충격’을 낳았다는 비판이 나온다. 글로벌 경기 불안과 주력 업종의 구조조정 등 과제가 쌓여 있는데도 정부가 오히려 기업 발목만 잡고 있다는 점에서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정치권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는 데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 성장을 견인하는 가장 큰 축이 기업이어서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소득주도성장은 수요를 늘려 성장하겠다는 정책인데 공급 부문에서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며 “전반적인 산업구조 개혁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NIE 포인트

최저임금을 올려 경제성장의 선순환을 이끈다는 소득주도성장론이 현실에서 안 통하는 이유를 생각해보자.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편 나라와 그 결과를 토론해보자. 우리나라 주력 산업의 경쟁력이 약화되는 원인이 무엇인지 논의해보자.

성수영 한국경제신문 경제부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