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 리디노미네이션 논란

화폐단위 변경 편익 있지만 물가상승 등 부담 커
리디노미네이션 논의와 무관하게 시장에서는 이미 1000원을 1원으로 줄여 표기하는 곳이 적지 않다. 서울 중림동의 한 카페는 커피 가격으로 3500원 대신 3.5로 표기하고 있다.
리디노미네이션 논의와 무관하게 시장에서는 이미 1000원을 1원으로 줄여 표기하는 곳이 적지 않다. 서울 중림동의 한 카페는 커피 가격으로 3500원 대신 3.5로 표기하고 있다.
1980년대 대기업 직원들의 평균 연봉은 대략 300만~400만원이었다. 하지만 최근 연봉은 평균 6000만~8000만원 선이다. 그 사이 20배가량 오른 것이다. 임금뿐만이 아니다. 당시 아이스크림 콘의 대명사였던 브라보콘 가격은 50원 정도였지만 지금은 편의점에서 1500원에 팔린다. 한국 화폐 단위인 ‘원’이 쓰이기 시작한 1962년과 지금 경제 상황을 비교하면 그 격차는 더 커진다. 1인당 국민소득(GNI)은 400배 늘었고 물가는 약 60배 치솟았다.

사람들 사이의 거래 단위는 점점 커지고 있다. 국민이 고액 물건을 사고팔 때는 수십만~수천만 단위까지 계산해야 하는 상황이다. 심지어 국가 단위 경제지표를 다룰 때는 천문학적 단위들이 쓰인다. 최근엔 ‘경(京)’도 등장했다. 2017년 기준 국민순자산은 1경3817조5000억원이었다. 1경은 1조보다 1만 배 많다. 0이 무려 16개 붙는다. 이처럼 화폐에 0이 지나치게 많아지면 정부는 인위적으로 화폐 단위를 조정하기도 한다. 최근 들어 정부와 정치권의 뜨거운 이슈로 부상한 리디노미네이션(redenomination)이 그것이다. 정부와 리디노미네이션 주체인 한국은행은 공식적으로 반대하고 있지만 정치권을 중심으로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반면 부작용이 클 것이라는 우려 또한 만만찮다.

리디노미네이션과 ‘화폐가치 절하’는 달라

정치권 일부 "1000원을 1원으로 낮추자" 주장
한국은행은 리디노미네이션의 정의에 대해 ‘명칭 또는 구매력이 다른 새로운 화폐 단위를 만들어 현재의 화폐 가치로 표시된 가격, 증권의 액면가, 예금·채권·채무 등 일체의 금액을 법정비율(교환비율)에 따라 일률적으로 조정하여 신 화폐 단위로 표기 및 호칭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쉽게 말하면 화폐의 실질가치는 그대로 두고 액면단위만 바꾸는 것이다. 1000원을 1원, 또는 1환으로 바꾸는 식이다. 이 경우 4000원짜리 커피 한 잔 가격은 4원이 되고 800원짜리 볼펜은 0.8원이 된다.

반대로 액면 단위는 그대로 두고 가치를 바꾸는 ‘화폐가치 절하’와는 구분된다. 때때로 비정상적인 경제 상황으로 물가가 급등하는 나라들은 화폐 가치를 강제로 낮추는 화폐 가치 절하 조치를 취하기도 한다.

“화폐에 ‘0’이 너무 많아 축소 필요”

리디노미네이션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가장 큰 이유는 화폐 단위에 ‘0’이 너무 많아서다. 기장, 계산, 지급 등에서 불편과 비효율이 커져 0의 개수를 축소해 계산과 거래의 편익을 도모하자는 취지다.

다른 이유는 원화의 액면 가치가 외국 달러에 비해 낮다 보니 국가의 대외 위상이 낮아진다는 평가 때문이다. 원·달러 환율은 현재 달러당 1140원 안팎이다. 외국 관광객이 한국에 와 100달러를 바꿨는데 십만 단위가 찍힌 지폐를 받으면 원화 가치가 낮아보인다.

국제 여행이 빈번해지고 무역·금융 거래 규모가 확대되는 상황에서 주요국 통화에 대한 환율이 한 자릿수로 조정되면 내외국인이 물가 및 경제량을 상호 비교하거나 계산하는 게 쉬워진다는 점도 있다. 예컨대 1000원이 1원으로 리디노미네이션 됐다고 가정해 보자. 2000만달러라는 숫자를 접했을 때 ‘2000만원보다 조금 많은 금액’이란 식으로 빠르게 계산해볼 수 있다. 검은돈을 양지로 끌어내 지하경제를 양성화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는 얘기다.

화폐 교체 비용·물가 자극 등 부담

반론도 만만치 않다. 우선 비용이 문제다. 국내외에 풀린 화폐를 장기간에 걸쳐 모두 바꿔야 한다. 거기에 들어가는 직접 비용만 3조원 안팎으로 추산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각종 자판기와 현금인출기의 관련 부품을 모두 교체해야 한다.

물가가 오를 가능성도 있다. 우선 가격이 낮은 서민 물가가 뛸 수 있다. 1000원이 1원이 되면 800~900원짜리 물건은 0.8원, 0.9원이 아니라 1원에 수렴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여기에 심리적으로 1000원이 1원, 1만원이 10원이 되면서 가격에 대한 저항감이 약해져 소비를 부추길 것이란 우려도 적지 않다.

■NIE 포인트

리디노미네이션(화폐 단위 변경)의 장·단점을 비교해보자. 1000원이 1원으로 화폐단위가 변경됐다고 가정할 때 어떤 영향을 미칠지 토론해보자. 화폐 단위 변경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어떤 여건들이 충족돼야 할지 정리해보자.

고경봉 한국경제신문 경제부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