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 포항 지열발전이 촉발한 지진의 원리
"포항지진은 '인재(人災)"…국가상대 청구소송 줄이어
2017년 11월 15일 경북 포항에서 규모 5.4의 강진이 일어났을 때 일각에선 자연 지진이 아니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진이 발생했던 곳 근처에서 지열발전소가 한창 건설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주장은 당시만 해도 신빙성이 낮은 의혹으로 치부됐다. 하지만 지난달 20일 상황이 반전됐다. 국내외 전문가로 꾸려진 ‘포항지진 정부조사연구단’이 약 1년간 정밀 조사를 벌인 결과 지열발전이 지진을 촉발시킨 게 맞다는 결론을 냈다. 정부는 부랴부랴 진상 조사에 나섰다. 지열발전소는 국내 기업과 대학, 연구소가 정부 연구개발(R&D) 지원을 받아 진행한 사업이어서다. 조사 결과에 따라 누가 얼마만큼 책임이 있는지 가려질 전망이다."포항지진은 '인재(人災)"…국가상대 청구소송 줄이어
‘포항 지진은 인재(人災)’ 결론
정부조사연구단은 “지열발전소가 땅 밑으로 구멍을 내고 물을 주입하면서 규모 2.0 이하의 작은 지진이 여러 번 일어났다”며 “이런 충격이 쌓여 5.4 규모의 본진으로 이어졌다”고 발표했다. 이어 “자연 지진은 절대 아니다”고 쐐기를 박았다.
지열발전은 땅 밑 깊숙이 높은 압력의 물을 넣어 땅의 열로 데운 뒤 증기와 전기를 발생시키는 원리다. 이때 고압의 물이 지진 원인인 지하 단층을 자극했고 이것이 강진으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연구단은 2016년 1월부터 작년 9월까지 지열발전 작업 중 유독 물을 주입한 직후에 미소 지진이 일어난 사실을 확인했다. 미소 지진은 63차례 발생했다. 2017년 4월엔 중간 규모 지진으로 분류되는 3.1 지진이 일어나기도 했다.
지열발전과 지진의 연관성은 해외에서도 보고된 적이 있다. 2009년 스위스 바젤 지열발전소는 물 주입 과정에서 최대 3.4 규모 지진이 발생하자 지열발전이 지진에 영향을 줬다고 잠정 결론을 낸 뒤 시설을 전면 폐쇄했다.
지진 나도 ‘위험한 물붓기’ 계속
지열발전 사업단이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한 정황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사업단은 부지를 선정하는 단계에서 땅 밑 구조를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 포항 지열발전소처럼 5㎞ 아래의 구조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3차원 탄성파 탐사’가 필수다. 이런 작업은 무시됐다. 사업단은 발전소 부지 밑에 지진 원인인 ‘활성단층’이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사업에 속도를 냈다.
지나치게 높은 수압으로 작업한 것도 문제였다. 수압이 높으면 많은 전기를 얻을 수 있지만 지진 위험도 커진다. 사업단은 최대 89MPa(메가파스칼)의 수압을 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해외 지열발전소보다 3~4배 높은 압력이란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사업단은 3.1 규모 지진이 일어났을 때도 잠시 작업을 멈추기만 하고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이때라도 정밀 조사를 통해 위험을 알아차렸다면 대형 재난은 일어나지 않았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사업단이 경제성만 추구하다 벌어진 일이라지만 정부도 관리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정부는 3.1 규모 지진이 발생했을 때 사업단 보고를 청취했는데도 아무런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소송 규모 수조원대로 커질 수도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도 이어지고 있다. 포항지진범시민대책본부(범대본)는 이미 국가와 사업단을 상대로 “지진으로 발생한 피해를 물어내라”며 손해배상 소송을 낸 상태다. 지금까지 약 1200명이 참여했다. 모성은 범대본 공동대표는 “정부 조사 발표 후 소송 참여자를 추가로 모집 중”이라며 “1만 명 이상은 모일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소송 청구액이 수조원 규모로 커질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다만 소송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릴 전망이다. 국가와 사업단에 손해배상 의무를 지우려면 이들이 사고 위험을 예견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하는데 이 과정이 순탄하지 않아서다. 그동안 국내 지진과 관련한 소송이 드물어 지진으로 인한 피해나 국가 책임을 판단하는 기준이 사실상 없는 것도 소송이 길어질 것으로 예측되는 요인이다.
■NIE 포인트
지열발전이 어떻게 추진돼왔는지 그 과정을 알아보자. 또한 추진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했는지도 정리해보자. 정부는 원전을 축소하고 친환경에너지 비중을 늘린다는 방침이다. 친환경에너지의 장단점을 토론해 보자.
서민준 한국경제신문 경제부 기자 moran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