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샛 경제학 (29) 공공선택이론과 지대추구
산업혁명이 한창이던 19세기 영국에서 증기 자동차가 나왔다. 영국 의회는 1865년 ‘적기조례법(Red Flag Act)’이라는 법을 제정하였다. 자동차가 마차보다 느리게 다니도록 한 규제 법률이었다. 마차 사업자의 이익을 보호한다는 착한(?) 명분이 작용했다. 요즘 자동차에 비해 성능이 형편없지만, 당시만 해도 증기자동차는 ‘꿈의 속도’로 달릴 수 있었다. 시속 30마일, 즉 시속 48㎞였다.하지만 적기조례법에 따라 운전자는 교외에서 시속 4마일, 시내에서 2마일로 달려야 했다. 속도 제한을 위해 기수 한 명이 마차를 타고 자동차 앞에서 달리도록 했다. 기수가 낮에는 붉은 깃발로, 밤에는 붉은 등을 흔들며 속도를 조절했다. 명분은 있었다. 과속에 따른 사고 방지였다. ‘적기조례’ 규제법은 영국 자동차산업에 회복하기 힘든 타격을 가했다. 결국 영국의 자동차산업은 프랑스, 독일, 미국 등 후발국에 주도권을 내주고 말았다.
의회·관료·이익집단의 지대추구
영국 자동차산업의 몰락은 공공선택이론이라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공공선택이론의 창시자인 미국 경제학자(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제임스 뷰캐넌은 개인뿐만 아니라 집단도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한다고 하였다. 국가를 운영하는 정치가·관료들 또한 자기 이익을 위해 행동한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규제를 만들어내는 것은 자기의 권한을 넓혀 이익을 보는 데서 비롯된다는 설명이다. 적기조례가 만들어진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의회 의원 중 상당수가 마차산업과 연관돼 있었고 마차업자들은 규제가 필요했다.
공공선택이론에서는 이를 기득권의 ‘지대추구’로 분석한다. 지대추구란 기득권의 울타리 안에서 집단의 이익을 위해 비생산적 활동(로비·집단 행동 등)을 경쟁적으로 하는 현상을 뜻한다. 영국의 사례는 의회·관료·이익집단이 주축이 된 기득권의 지대추구가 한 국가의 산업 발전에 크나큰 영향을 준다는 점을 보여준다.
카풀·원격의료 사태…지대추구가 만연하는 한국
한국에서도 이와 같은 지대추구 행위를 볼 수 있다. 최근 카풀 서비스와 원격 의료에 대한 택시 업계와 의료계 반발이 대표적이다. 카풀 서비스나 원격 의료는 소비자들의 후생을 증진시키기 위한 신산업들이다. 하지만 기존의 사업 영역에 있는 택시, 의사 집단은 이익을 침해당한다고 생각한다. 이들 집단의 결집력은 모래처럼 흩어져 있는 일반 소비자보다 강고하다. 그렇기에 세력을 형성하여 의회와 정부 관료를 압박·로비를 통해 집단의 이익을 지킨다. 국민은 이익 집단을 막기 위해 들여야 하는 노력에 비해 얻는 것이 매우 적기 때문에 대개 무관심하다. 시장경제에서는 독점적 이익이 발생하면 다른 경쟁자들이 진입·경쟁하며 소비자의 후생이 증대한다. 하지만 정치적 상황을 다루기도 하는 공공선택이론에서는 오히려 이익집단이 진입장벽을 치면서 소비자 후생과 사회적 후생을 떨어뜨린다. 즉, 관료·의회의 이익집단에 대한 지원은 더 생산적으로 투자되어야 하는 자원 배분을 왜곡시켜 오히려 경제 전체의 후생을 감소시킨다.
경제적 자유를 통해 지대추구 행위를 억제해야
지대추구를 줄이기 위해서는 규제를 줄이고, 경제적 자유를 높여야 한다. 최근 한국제도경제학회에서 김행범 부산대 교수는 “경제적 자유가 확립된 국가일수록 지대추구 행위를 효과적으로 억제할 수 있고, 이는 국민소득 증가로 이어진다”는 논문을 발표해 대상을 받았다. 경제적 자유야말로 투명한 경제를 만드는 지름길이다.
정영동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원 jyd54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