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 포퓰리즘으로 무너진 베네수엘라
아르헨 등 경제 실패 '흑역사'…'시장경제' 칠레는 지속 성장
한때 ‘핑크 타이드(pink tide)’가 남미를 휩쓸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다. 핑크 타이드는 사회주의 좌파세력의 득세를 뜻한다. 빨간색이 아니라 핑크색인 이유는 남미 좌파가 정통 사회주의보다 자원 민족주의와 포퓰리즘이 결합된 중도 좌파에 가깝기 때문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남미 12개국 가운데 베네수엘라,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10개국에 ‘포퓰리즘 정권’이 들어섰다. 베네수엘라는 10여 년 만에 ‘남미의 북한’으로 전락했다. 아르헨티나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는 신세가 됐다.아르헨 등 경제 실패 '흑역사'…'시장경제' 칠레는 지속 성장
원인은 대개 비슷하다. 남미의 포퓰리즘 정부는 산업을 육성하기는커녕 걸핏하면 기업을 국유화했다. 좋은 자리가 있으면 권력자의 측근에게 나눠줬다. 석유·광물이나 곡물 가격이 오르면 ‘사회주의 낙원’이라 자랑하고, 원자재 값이 폭락하면 빈국으로 전락했다. 미국 혹은 자본주의를 탓하는 불행한 역사가 반복됐다.
IMF에 20여 차례 손 벌린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는 포퓰리즘의 후유증으로 경제 위기가 반복되는 대표적인 국가다. 방만한 복지로 재정 적자가 일상화했다. 1958년 이후 20여 차례나 IMF 신세를 졌다. 아르헨티나는 1·2차 세계대전의 피해를 입지 않은 데다 천연자원이 많아 20세기 초·중반만 해도 세계 5위권 경제 대국으로 꼽혔다. 100여 년이 지난 지금은 한참 밀려난 ‘옛이야기’가 됐다.
전문가들은 1940~1950년대 집권한 후안 도밍고 페론 대통령과 부인 에바 페론이 등장하면서 ‘아르헨티나의 비극’이 시작됐다고 설명한다. 국가 재정은 생각하지 않고 ‘퍼주기식 복지’에 몰두했다는 이유에서다. 그런데도 에바 페론은 빼어난 미모와 언변으로 노동자와 빈민의 대변자로 추앙받았다. 그의 일대기를 담은 영화까지 제작됐다.
아르헨티나는 작년에도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 인상 등 외부 요인도 있지만, 내부 요인이 더 컸다는 지적이다. 2003년 집권했던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전 대통령은 서민들에게 현금을 뿌리고, ‘기름·전기 보조금’ 정책도 내놨다. 후임자였던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전 대통령 역시 학생들에게 컴퓨터를 무상 지급하는 등 나랏돈을 물 쓰듯 했다.
룰라 후유증으로 고전하는 브라질
포퓰리즘은 아르헨티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부분 남미 국가가 경험하고 있다. 빈부격차가 극심한 탓에 쉽게 포퓰리즘에 휩쓸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남미 지역의 지니계수는 0.55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지니계수는 소득 불평등 정도를 0에서 1 사이의 숫자로 나타내며 높을수록 불평등하다.
브라질에선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전 대통령이 2003년 취임한 후 지우마 호세프 전 대통령이 2016년 탄핵될 때까지 13년간 포퓰리즘 정책이 남발됐다. 빈곤층 보조금인 ‘보우사 파밀리아’ 대상자가 2003년 1600만 명에서 2013년까지 5500만 명으로 늘었다. 실업급여도 대폭 인상됐다.
룰라 전 대통령이 재임할 때만 해도 문제가 크게 드러나지 않았다. 글로벌 경제 호황 덕분이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원자재 값이 폭락하자 상황이 바뀌었다. 브라질 경제는 2015년부터 2년 연속 역성장했다. 헤알화 가치는 24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2017년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부채 비율이 77%를 넘었고, GDP 대비 재정적자는 7%대에 달했다.
칠레와 콜롬비아는 ‘포퓰리즘 예외국’
남미에서도 예외국이 있다. 칠레는 2010년 남미에선 제일 먼저 ‘선진국 클럽’으로 불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 됐다.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전 대통령은 1973년 쿠데타로 권력을 잡아 1990년까지 집권하면서 독재라는 비난을 받았지만 경제 부문만큼은 시장주의를 따랐다. 작년 3월 기업인 출신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이 취임한 뒤엔 경제가 더욱 활기를 띠고 있다. 피녜라 대통령은 ‘조세 단일화·법인세 인하·대규모 인프라 투자·자유무역협력 확대’라는 4대 친시장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콜롬비아도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지난해 칠레에 이어 남미에서 두 번째로 OECD에 가입했다. 경제 성장률이 들쭉날쭉한 주변국과 달리 꾸준하게 성장하고 있다. 좌익 게릴라인 콜롬비아혁명군(FARC) 등과의 내전 때문에 ‘좌파 포퓰리즘’ 세력이 제도권에 진입하지 못한 덕을 봤다는 분석이 나온다.
■NIE 포인트
남미국가에서 특히 포퓰리즘이 만연한 역사·환경적 요인을 정리해보자. 정치인들이 선심성 정책을 내놓을 때 이를 견제할 수단은 무엇이 있을지 토론해보자. 그리스 등 남미 이외 국가에서의 포퓰리즘도 함께 알아보자.
이현일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