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초까진 장님이 소경의 높임말이었다. 귀머거리와 벙어리에도 낮잡는다는 뜻이 없었다. 북한 사회과학출판사에서 1992년 펴낸 <조선말대사전>도 마찬가지다.
“KBS 방송심의위원회의 케이윌 ‘최면’ 방송불가 판정을 적극 환영한다. 소속사는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한 자신을 벙어리에 비유한 것일 뿐’이라며 장애인을 비하하는 말로 사용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대중가요를 접하는 수많은 시민과 청소년들은 ‘벙어리’란 용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청각장애인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비하용어를 사용할 우려가 있다.”
1990년대 말 사회적 인식 변화 반영
2009년 11월 7일 한국농아인협회에서 발표한 성명서의 한 대목이다. 지난호에서도 언급했듯이 우리말에서 장님이나 귀머거리, 벙어리 같은 말은 일종의 ‘금기어’화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이들 용어를 장애인 비하어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장애인에 대한 인권 인식이 커지면서 호칭어(또는 지칭어)에 대한 인식도 함께 바뀌었다. <표준국어대사전>(1999)과 <고려대한국어대사전>(2009) 등의 풀이가 그렇다. 두 사전은 이들 용어를 ‘~을 낮잡는(얕잡는) 말’로 풀었다. 비슷한 시기에 나온 <연세한국어사전>(1998)은 좀 다르다. ‘낮잡는 말’이란 표현이 없다.
애초부터 이들이 낮잡는 말로 쓰인 게 아니라는 점은 다른 사전에서도 확인된다. 1961년 나온 <국어대사전>(민중서림)을 비롯해 <국어대사전>(금성출판사, 1991), <우리말큰사전>(한글학회, 1992) 등 1990년대 초까진 장님이 소경의 높임말이었다. 귀머거리와 벙어리에도 낮잡는다는 뜻이 없었다. 북한 사회과학출판사에서 1992년 펴낸 <조선말대사전>도 마찬가지다. 사전 풀이는 편찬 지침에 따라 달라진다. 중요한 것은 장애인과 이를 나타내는 용어에 대한 인식이 사회 전반적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자기 아내를 홀하게 칭하는 ‘마누라’가 조선시대엔 존칭어로 쓰였던 것처럼 이런 의미 변화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런 변화된 인식이 1990년대 말 국어사전에 반영됐다.
‘한자어 대체말’ 두고 논란도 있어
그런데 이 대목에서 논란거리가 생겼다. 대표적인 사례로 ‘장님/벙어리/귀머거리’와 그 대체어인 ‘시각장애인/언어장애인/청각장애인’을 놓고 보자. 우선 여기엔 공통점이 하나 있다. 고유어와 한자어의 대응 관계라는 점이다. 많은 고유어가 이렇게 분류돼 한자어 대체말이 제시됐다. 의도하지는 않았으나 결과적으로 한자어는 고상한 말이 됐고, 고유어는 비하어가 된 셈이다. 원래 평어로 쓰이던 순우리말을 ‘낮잡는 말’로 처리해 오히려 ‘낙인효과’를 가져온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 배경이다. 말은 쓰지 않으면 사라진다. 이런 방식으로 대체된 많은 고유어가 언젠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곁들여졌다.
수많은 속담에 쓰인 말을 어찌 풀어야 할 것인지도 난제다. 사전에는 ‘장님’으로 시작하는 속담만도 30개가 넘는다. ‘앉은뱅이책상’ 등 합성어와 은유적 표현들은 또 어찌해야 할까? 그런 점에서 일부 사전의 서술 방식을 바꾸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장님은 ‘눈이 먼 사람’, 벙어리는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 귀머거리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이다. 굳이 ‘낮잡아 이르는 말’을 덧붙일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한자어 ‘OO장애인’의 풀이는 ‘××을 점잖게 또는 대접해 이르는 말’ 식으로 바꾸면 된다. 사회적 언어 인식의 변화를 반영한 것으로, 이들은 권장어(바꿔 쓰면 좋은 말)다. 전통적으로 써오던 말을 중심에 놓고 풀면 고유어를 굳이 배제하지 않아도 한자어와 함께 쓸 수 있지 않을까.
☞ 다음호에 계속
“KBS 방송심의위원회의 케이윌 ‘최면’ 방송불가 판정을 적극 환영한다. 소속사는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한 자신을 벙어리에 비유한 것일 뿐’이라며 장애인을 비하하는 말로 사용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대중가요를 접하는 수많은 시민과 청소년들은 ‘벙어리’란 용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청각장애인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비하용어를 사용할 우려가 있다.”
1990년대 말 사회적 인식 변화 반영
2009년 11월 7일 한국농아인협회에서 발표한 성명서의 한 대목이다. 지난호에서도 언급했듯이 우리말에서 장님이나 귀머거리, 벙어리 같은 말은 일종의 ‘금기어’화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이들 용어를 장애인 비하어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장애인에 대한 인권 인식이 커지면서 호칭어(또는 지칭어)에 대한 인식도 함께 바뀌었다. <표준국어대사전>(1999)과 <고려대한국어대사전>(2009) 등의 풀이가 그렇다. 두 사전은 이들 용어를 ‘~을 낮잡는(얕잡는) 말’로 풀었다. 비슷한 시기에 나온 <연세한국어사전>(1998)은 좀 다르다. ‘낮잡는 말’이란 표현이 없다.
애초부터 이들이 낮잡는 말로 쓰인 게 아니라는 점은 다른 사전에서도 확인된다. 1961년 나온 <국어대사전>(민중서림)을 비롯해 <국어대사전>(금성출판사, 1991), <우리말큰사전>(한글학회, 1992) 등 1990년대 초까진 장님이 소경의 높임말이었다. 귀머거리와 벙어리에도 낮잡는다는 뜻이 없었다. 북한 사회과학출판사에서 1992년 펴낸 <조선말대사전>도 마찬가지다. 사전 풀이는 편찬 지침에 따라 달라진다. 중요한 것은 장애인과 이를 나타내는 용어에 대한 인식이 사회 전반적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자기 아내를 홀하게 칭하는 ‘마누라’가 조선시대엔 존칭어로 쓰였던 것처럼 이런 의미 변화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런 변화된 인식이 1990년대 말 국어사전에 반영됐다.
‘한자어 대체말’ 두고 논란도 있어
그런데 이 대목에서 논란거리가 생겼다. 대표적인 사례로 ‘장님/벙어리/귀머거리’와 그 대체어인 ‘시각장애인/언어장애인/청각장애인’을 놓고 보자. 우선 여기엔 공통점이 하나 있다. 고유어와 한자어의 대응 관계라는 점이다. 많은 고유어가 이렇게 분류돼 한자어 대체말이 제시됐다. 의도하지는 않았으나 결과적으로 한자어는 고상한 말이 됐고, 고유어는 비하어가 된 셈이다. 원래 평어로 쓰이던 순우리말을 ‘낮잡는 말’로 처리해 오히려 ‘낙인효과’를 가져온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 배경이다. 말은 쓰지 않으면 사라진다. 이런 방식으로 대체된 많은 고유어가 언젠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곁들여졌다.
수많은 속담에 쓰인 말을 어찌 풀어야 할 것인지도 난제다. 사전에는 ‘장님’으로 시작하는 속담만도 30개가 넘는다. ‘앉은뱅이책상’ 등 합성어와 은유적 표현들은 또 어찌해야 할까? 그런 점에서 일부 사전의 서술 방식을 바꾸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장님은 ‘눈이 먼 사람’, 벙어리는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 귀머거리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이다. 굳이 ‘낮잡아 이르는 말’을 덧붙일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한자어 ‘OO장애인’의 풀이는 ‘××을 점잖게 또는 대접해 이르는 말’ 식으로 바꾸면 된다. 사회적 언어 인식의 변화를 반영한 것으로, 이들은 권장어(바꿔 쓰면 좋은 말)다. 전통적으로 써오던 말을 중심에 놓고 풀면 고유어를 굳이 배제하지 않아도 한자어와 함께 쓸 수 있지 않을까.
☞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