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럴림픽은 '옆의, 나란히'를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패러(para-)'와 올림픽이 결합한 말이다. '올림픽과 나란히 열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및 패럴림픽의 장외 주인공을 꼽으라면 한글과 우리말을 들을 만하다. 올림픽 휘장과 메달을 비롯해 대회장 곳곳에 한글 자음 ㅍ과 ㅊ을 형상화한 문양을 새기거나 내걸어 한글의 아름다움을 한껏 알렸다. ‘손모아장갑’도 눈에 띄었다. 무심코 써온 ‘벙어리장갑’을 순화한 대체어로 화제를 불러모았다. 패럴림픽이란 용어도 우리에게 ‘말의 진화’란 관점에서 생각할 거리를 남겼다.
장애·비장애 가르지 않는 세상 염원
우리나라에서는 장애인에 대한 인권인식이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크게 바뀌었다. 그 전에는 장애자로 많이 불렸다. 서울올림픽 당시만 해도 공식적인 표기는 장애자올림픽이었다. 장애자란 말 자체에 비하하는 의미가 담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언제부턴가 이 말을 다소 낮춰 부르는 말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때가 서울올림픽을 전후한 즈음이었다. 이후 1989년 장애자복지법을 전면 개정한 장애인복지법이 나오면서 ‘장애인’이 우리 사회에 공식용어로 등장했다.
이번 대회에선 한걸음 더 나아가 패럴림픽이 자리 잡았다. 패럴림픽은 ‘옆의, 나란히’를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패러(para-)’와 올림픽이 결합한 말이다. ‘올림픽과 나란히 열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네이버 두산백과). 애초 하반신 마비를 뜻하는 패러플리지아(paraplegia)와 올림픽의 합성어였으나 점차 다른 장애가 있는 선수들도 참가함에 따라 의미가 바뀐 것이다.
장애자올림픽→장애인올림픽→패럴림픽으로의 용어 변화는 우리 사회에서 말을 둘러싼 사회적 인식 변화의 한 측면을 보여준다. 장애인을 단순히 사회적 배려 대상으로 보는 게 아니라 똑같은 구성원 중 하나로 생각하는 것이다. 장애인의 상대어를 ‘정상인’이라고 하면 장애인은 상처받고 소수자로 전락한다. 장애인을 중심에 놓고 보면 그 나머지는 ‘비장애인’이 된다. 장애·비장애를 따로 가르지 않는다는 생각이 넓고 깊게 퍼질 때 비로소 함께하는 세상이 이뤄진다는 염원을 담았다.
어떤 말 쓰느냐에 따라 인식 달라져
우리 언어 현실에선 일반적으로 같은 말이라도 ‘-자’보다 ‘-인’을 좀 더 품위 있는 말로 여기는 것 같다. 장애자가 장애인으로 바뀐 것을 비롯해 대통령 당선자냐 당선인이냐를 따지고, 노숙자보다 노숙인을 더 권장하는 까닭은 그런 문화적 배경에서다. ‘놈 자(者)’에 거부감이 있다 보니 ‘사람 인(人)’을 쓰는 게 격이 높겠다는 생각이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본래 우리말에서 ‘-자’와 ‘-인’에 그런 구별이 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과학자, 지도자, 선구자 등에서 보듯이 존대 의미는 ‘-인’보다 ‘-자’가 더 강하고, 쓰임새도 폭넓다는 학계의 연구 결과도 나와 있다. 우리 사회에서 ‘-자’보다 ‘-인’을 선호하는 현상은 시대에 따라 말에 대한 인식도 달라진 결과라는 얘기다. 어떤 말이 ‘-인’을 취하느냐 ‘-자’를 취하느냐 하는 것은 결국 언중이 선택하는 것이다. 국어사전은 그것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반영한다. 대표적인 사례를 몇 개 들어보자.
‘장님: 시각장애인을 낮잡아(얕잡아) 이르는 말.’ ‘귀머거리: 청각장애인을 낮잡아(얕잡아) 이르는 말.’ ‘벙어리: 언어장애인을 낮잡아(얕잡아) 이르는 말.’ <표준국어대사전>과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의 풀이이다. 하지만 이들이 본래부터 ‘낮춤’의 의미를 담고 있던 것은 아니다.
☞ 다음 호에 계속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및 패럴림픽의 장외 주인공을 꼽으라면 한글과 우리말을 들을 만하다. 올림픽 휘장과 메달을 비롯해 대회장 곳곳에 한글 자음 ㅍ과 ㅊ을 형상화한 문양을 새기거나 내걸어 한글의 아름다움을 한껏 알렸다. ‘손모아장갑’도 눈에 띄었다. 무심코 써온 ‘벙어리장갑’을 순화한 대체어로 화제를 불러모았다. 패럴림픽이란 용어도 우리에게 ‘말의 진화’란 관점에서 생각할 거리를 남겼다.
장애·비장애 가르지 않는 세상 염원
우리나라에서는 장애인에 대한 인권인식이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크게 바뀌었다. 그 전에는 장애자로 많이 불렸다. 서울올림픽 당시만 해도 공식적인 표기는 장애자올림픽이었다. 장애자란 말 자체에 비하하는 의미가 담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언제부턴가 이 말을 다소 낮춰 부르는 말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때가 서울올림픽을 전후한 즈음이었다. 이후 1989년 장애자복지법을 전면 개정한 장애인복지법이 나오면서 ‘장애인’이 우리 사회에 공식용어로 등장했다.
이번 대회에선 한걸음 더 나아가 패럴림픽이 자리 잡았다. 패럴림픽은 ‘옆의, 나란히’를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패러(para-)’와 올림픽이 결합한 말이다. ‘올림픽과 나란히 열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네이버 두산백과). 애초 하반신 마비를 뜻하는 패러플리지아(paraplegia)와 올림픽의 합성어였으나 점차 다른 장애가 있는 선수들도 참가함에 따라 의미가 바뀐 것이다.
장애자올림픽→장애인올림픽→패럴림픽으로의 용어 변화는 우리 사회에서 말을 둘러싼 사회적 인식 변화의 한 측면을 보여준다. 장애인을 단순히 사회적 배려 대상으로 보는 게 아니라 똑같은 구성원 중 하나로 생각하는 것이다. 장애인의 상대어를 ‘정상인’이라고 하면 장애인은 상처받고 소수자로 전락한다. 장애인을 중심에 놓고 보면 그 나머지는 ‘비장애인’이 된다. 장애·비장애를 따로 가르지 않는다는 생각이 넓고 깊게 퍼질 때 비로소 함께하는 세상이 이뤄진다는 염원을 담았다.
어떤 말 쓰느냐에 따라 인식 달라져
우리 언어 현실에선 일반적으로 같은 말이라도 ‘-자’보다 ‘-인’을 좀 더 품위 있는 말로 여기는 것 같다. 장애자가 장애인으로 바뀐 것을 비롯해 대통령 당선자냐 당선인이냐를 따지고, 노숙자보다 노숙인을 더 권장하는 까닭은 그런 문화적 배경에서다. ‘놈 자(者)’에 거부감이 있다 보니 ‘사람 인(人)’을 쓰는 게 격이 높겠다는 생각이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본래 우리말에서 ‘-자’와 ‘-인’에 그런 구별이 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과학자, 지도자, 선구자 등에서 보듯이 존대 의미는 ‘-인’보다 ‘-자’가 더 강하고, 쓰임새도 폭넓다는 학계의 연구 결과도 나와 있다. 우리 사회에서 ‘-자’보다 ‘-인’을 선호하는 현상은 시대에 따라 말에 대한 인식도 달라진 결과라는 얘기다. 어떤 말이 ‘-인’을 취하느냐 ‘-자’를 취하느냐 하는 것은 결국 언중이 선택하는 것이다. 국어사전은 그것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반영한다. 대표적인 사례를 몇 개 들어보자.
‘장님: 시각장애인을 낮잡아(얕잡아) 이르는 말.’ ‘귀머거리: 청각장애인을 낮잡아(얕잡아) 이르는 말.’ ‘벙어리: 언어장애인을 낮잡아(얕잡아) 이르는 말.’ <표준국어대사전>과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의 풀이이다. 하지만 이들이 본래부터 ‘낮춤’의 의미를 담고 있던 것은 아니다.
☞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