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중국몽(夢)’ 실현을 위해 야심차게 추진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 사업에 참여했다 빚더미에 앉는 국가가 잇따르고 있다. 중국의 대규모 투자와 지원을 받은 저개발 국가들이 금융 취약국으로 전락하고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만 높아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경제 발전을 위해 끌어들인 중국 자본이 오히려 경제의 발목을 잡는 독(毒)이 되고 있는 것이다.
파키스탄·라오스 등 8개국 ‘금융취약국’으로
지난 7일 국제개발원조 전문 싱크탱크인 글로벌개발센터(CGD)에 따르면 중국이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위해 지난해까지 아시아와 아프리카, 유럽 등 68개국에 지원한 자금은 총 8조달러(약 8552조원)에 달한다. 이 중 23개국은 중국에서 빌린 자금이 많아 ‘상당히 높은 수준’의 부채비율을 기록하고 있다. 동아프리카의 지부티, 아시아의 파키스탄·라오스·몽골·몰디브·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 유럽의 몬테네그로 등 8개국은 중국에 진 빚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가장 위험한 국가로는 파키스탄이 꼽혔다. 파키스탄은 일대일로 핵심 프로젝트 중 하나인 ‘중국-파키스탄 경제회랑(CPEC)’ 사업에 참여하면서 자국 내 인프라 건설 자금의 80%(620억달러)를 중국에서 조달했다. CGD는 “대출이자도 매우 높은 편이어서 파키스탄의 상환 부담이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라오스는 두 번째로 부채 위험이 높은 국가에 올랐다. 중국~라오스 간 철도 건설 비용을 포함해 국내총생산(GDP)의 절반가량인 67억달러를 중국에서 차입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라오스의 부채 상환이 어려울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키르기스스탄도 일대일로 사업에 따른 인프라 건설로 국가부채 규모가 GDP 대비 78% 수준까지 늘어났다. 일대일로 사업 참여 이전의 62%에 비해 큰 폭으로 증가했다.
지부티는 중국에 진 빚이 GDP 대비 91%에 이른다. 일대일로 사업 참여 이전의 82%보다 10%포인트 가까이 높아졌다. 역시 일대일로에 참여하고 있는 캄보디아와 아프가니스탄도 조만간 대외채무의 절반 이상을 중국 자본이 차지하게 될 것으로 전망됐다.
일대일로 추진에 핵심국가들이 공통점
‘빚의 함정’에 빠진 국가는 하나같이 일대일로 사업을 추진하는 데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자리잡고 있다. 중국은 라오스를 통해 동남아시아 거점 확보를 꾀하고 있다. 지부티는 아프리카 진출의 관문 역할을 하는 지정학적 요충지다. 몬테네그로는 유럽으로 가는 길목에 자리한다. 중국은 몬테네그로를 통해 발칸반도와 연결될 수 있는 고속도로 건설에 나섰다. 파키스탄과 몰디브는 인도양으로 나가는 연결고리다.
중국은 또 타지키스탄과 키르기스스탄의 철도, 수력발전소, 가스 파이프라인 건설을 지원하고 있다. 몽골에선 수력발전소 공항 등 국가 기간시설과 수도 울란바토르를 잇는 고속도로 건설 사업의 자금줄 역할을 한다.
스리랑카도 부채 위기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마힌다 라자팍사 전 스리랑카 대통령은 기존의 재원조달 창구였던 아시아개발은행(ADB)과 IMF에 손을 벌리는 대신 중국으로부터 대규모 차관을 도입해 인프라에 투자했다. 남부 함반토타 항구는 2010년 중국의 자금 지원을 받아 지어졌다. 함반토타항의 이용률이 낮아 적자가 쌓이자 스리랑카항만공사는 2016년 지분 80%를 중국 국유 항만기업 자오상쥐에 매각하고 99년간 항구 운영권을 넘겼다. 마이트리팔라 시리세나 스리랑카 대통령은 중국 의존정책의 위험성을 인식하고 차관 재협상 등을 통해 중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끝내 무위로 돌아갔다.
패트릭 멘디스 미국 하버드대 중국연구센터 연구원은 “일대일로 영향권에 놓인 68개국 어디에서든 이런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일대일로는 ‘하나의 길, 하나의 덫’으로도 해석될 여지가 있다”고 경고했다.
CGD는 다른 주요 채권국가와 달리 중국은 부채 문제가 발생할 때 이를 해결할 체계가 마련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채권국 모임인 파리클럽에 가입하지 않고 임시 참가국으로만 등록돼 있다. 미국 일본 한국 등 파리클럽에 속한 22개국은 채무국이 공적 채무를 정상적으로 상환할 수 없으면 채무를 재조정해주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CGD는 “일대일로가 세계 부채 탕감 시스템 전체를 붕괴시킬 정도로 큰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몇몇 국가의 채무 불이행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베이징=강동균 한국경제신문 특파원 kdg@hankyung.com
파키스탄·라오스 등 8개국 ‘금융취약국’으로
지난 7일 국제개발원조 전문 싱크탱크인 글로벌개발센터(CGD)에 따르면 중국이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위해 지난해까지 아시아와 아프리카, 유럽 등 68개국에 지원한 자금은 총 8조달러(약 8552조원)에 달한다. 이 중 23개국은 중국에서 빌린 자금이 많아 ‘상당히 높은 수준’의 부채비율을 기록하고 있다. 동아프리카의 지부티, 아시아의 파키스탄·라오스·몽골·몰디브·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 유럽의 몬테네그로 등 8개국은 중국에 진 빚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가장 위험한 국가로는 파키스탄이 꼽혔다. 파키스탄은 일대일로 핵심 프로젝트 중 하나인 ‘중국-파키스탄 경제회랑(CPEC)’ 사업에 참여하면서 자국 내 인프라 건설 자금의 80%(620억달러)를 중국에서 조달했다. CGD는 “대출이자도 매우 높은 편이어서 파키스탄의 상환 부담이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라오스는 두 번째로 부채 위험이 높은 국가에 올랐다. 중국~라오스 간 철도 건설 비용을 포함해 국내총생산(GDP)의 절반가량인 67억달러를 중국에서 차입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라오스의 부채 상환이 어려울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키르기스스탄도 일대일로 사업에 따른 인프라 건설로 국가부채 규모가 GDP 대비 78% 수준까지 늘어났다. 일대일로 사업 참여 이전의 62%에 비해 큰 폭으로 증가했다.
지부티는 중국에 진 빚이 GDP 대비 91%에 이른다. 일대일로 사업 참여 이전의 82%보다 10%포인트 가까이 높아졌다. 역시 일대일로에 참여하고 있는 캄보디아와 아프가니스탄도 조만간 대외채무의 절반 이상을 중국 자본이 차지하게 될 것으로 전망됐다.
일대일로 추진에 핵심국가들이 공통점
‘빚의 함정’에 빠진 국가는 하나같이 일대일로 사업을 추진하는 데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자리잡고 있다. 중국은 라오스를 통해 동남아시아 거점 확보를 꾀하고 있다. 지부티는 아프리카 진출의 관문 역할을 하는 지정학적 요충지다. 몬테네그로는 유럽으로 가는 길목에 자리한다. 중국은 몬테네그로를 통해 발칸반도와 연결될 수 있는 고속도로 건설에 나섰다. 파키스탄과 몰디브는 인도양으로 나가는 연결고리다.
중국은 또 타지키스탄과 키르기스스탄의 철도, 수력발전소, 가스 파이프라인 건설을 지원하고 있다. 몽골에선 수력발전소 공항 등 국가 기간시설과 수도 울란바토르를 잇는 고속도로 건설 사업의 자금줄 역할을 한다.
스리랑카도 부채 위기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마힌다 라자팍사 전 스리랑카 대통령은 기존의 재원조달 창구였던 아시아개발은행(ADB)과 IMF에 손을 벌리는 대신 중국으로부터 대규모 차관을 도입해 인프라에 투자했다. 남부 함반토타 항구는 2010년 중국의 자금 지원을 받아 지어졌다. 함반토타항의 이용률이 낮아 적자가 쌓이자 스리랑카항만공사는 2016년 지분 80%를 중국 국유 항만기업 자오상쥐에 매각하고 99년간 항구 운영권을 넘겼다. 마이트리팔라 시리세나 스리랑카 대통령은 중국 의존정책의 위험성을 인식하고 차관 재협상 등을 통해 중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끝내 무위로 돌아갔다.
패트릭 멘디스 미국 하버드대 중국연구센터 연구원은 “일대일로 영향권에 놓인 68개국 어디에서든 이런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일대일로는 ‘하나의 길, 하나의 덫’으로도 해석될 여지가 있다”고 경고했다.
CGD는 다른 주요 채권국가와 달리 중국은 부채 문제가 발생할 때 이를 해결할 체계가 마련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채권국 모임인 파리클럽에 가입하지 않고 임시 참가국으로만 등록돼 있다. 미국 일본 한국 등 파리클럽에 속한 22개국은 채무국이 공적 채무를 정상적으로 상환할 수 없으면 채무를 재조정해주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CGD는 “일대일로가 세계 부채 탕감 시스템 전체를 붕괴시킬 정도로 큰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몇몇 국가의 채무 불이행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베이징=강동균 한국경제신문 특파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