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이후'와 '후'는 의미가 달라요
말을 할 때 정교한 구별이 필요하다. 속담에 '아 해 다르고 어 해 다르다'는 말은 괜히 생긴 게 아니다. 우리말의 발전, 나아가 논리적·합리적 사고의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연임하게 됐다. 언론들은 지난 3월3일자에서 이 소식을 전했다. 한은 역사에서 총재가 연임한 경우가 드물어 이 뉴스는 더욱 화제가 됐다. 김유택 전 총재(1951년 12월18일~1956년 12월12일)와 김성환 전 총재(1970년 5월2일~1978년 5월1일)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 사례라고 한다. 이것을 짧게 “이 총재 연임은 김유택, 김성환 전 총재 이후 세 번째다”라고 말할 수 있다.

‘이전/이후’는 기준 시점 포함해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이후'와 '후'는 의미가 달라요
언론사에 따라 이를 조금 달리 표현한 곳도 있었다. “이 총재 연임은 김유택, 김성환 전 총재 이후 처음이다.” 이는 맞는 것일까? 어찌 보면 두 사람이 연임한 뒤로는 처음이니 맞는 말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동일한 문장에서 ‘처음’과 ‘세 번째’는 분명히 다르다. 둘 중 하나는 틀린 표현이지만 현실언어에서 우리는 이를 구별하지 않고 두루뭉술 섞어 쓰는 경향이 있다.

‘이전(以前)/이후(以後)’와 ‘전/후’는 엄연히 다른 말이다. 가령 “그는 2010년 이후 새벽 운동을 시작했다”라고 하면 2010년부터라는 뜻일까? 아니면 2011년부터를 뜻하는 것일까? 이전/이후는 ‘기준이 되는 때를 포함해’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2010년부터 했다는 뜻이다. 이에 비해 ‘전/후’는 기준이 되는 때를 포함하지 않는다. ‘2010년 후’라고 하면 2011년부터를 가리킨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이 개념에 대한 이해는 글쓰기에서 매우 중요하다.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글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신문을 비롯해 인터넷에는 다음과 같은 식의 문장이 수두룩하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8년 1월 고용동향’을 보면 실업자는 102만 명으로 1년 전보다 1만2000명 늘었다. 1월 기준으로 2010년(121만8000명)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2010년 이후라고 하면 2010년 수치를 포함하는 것이므로 가장 높은 게 아니다. 즉 ‘2010년(121만8000명) 이후 두 번째로 높은 수치다’라고 해야 정확한 표현이다. 이를 ‘2010년 후 가장 높은 수치다’라고 써도 된다.

정교한 언어 사용이 논리적 사고의 바탕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따라 오는 4월1일부터 다주택자에게 양도세 중과가 시행될 예정이다. 이를 다룬 다음 같은 글은 어떨까. “양도세가 중과되는 지역의 다주택자라면 4월 이전에 부담부증여를 하는 게 유리하다.” 가령 정확한 내용을 모르는 상태에서 이런 안내를 들었다고 치자. 이 설명대로라면 4월 이전, 즉 4월까지 증여하면 양도세 중과를 면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사실과 달라져 이 사람은 졸지에 중과된 양도세를 맞아야 한다. ‘이전’과 ‘전’이 가져오는 중대한 차이다. 같은 방식으로 ‘4월 이후 중과’는 4월부터, ‘4월 후 중과’는 4월을 넘긴 시점, 즉 5월부터임을 구별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첫 사례로 돌아가 살펴보자. “이 총재 연임은 김유택, 김성환 전 총재 이후 세 번째다.” 이것은 바른 표현이다. 이를 “이 총재 연임은 김유택, 김성환 전 총재 이후 처음이다”라고 하면 틀린 말이 된다. 이를 다시 “이 총재 연임은 김유택, 김성환 전 총재 후 처음이다”라고 하면 맞는 말이다.

말을 할 때 이런 정교한 구별이 필요하다. 속담에 ‘아 해 다르고 어 해 다르다’는 말은 괜히 생긴 게 아니다. 우리말의 발전, 나아가 논리적·합리적 사고의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