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잘생기다'는 형용사 같지만 동사예요](https://img.hankyung.com/photo/201712/01.15463568.1.jpg)
지난 4일 국립국어원이 올해 3분기 표준국어대사전 정보수정 사항을 공개했다. 그중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것은 단연 ‘잘생기다’였다. 품사를 형용사에서 동사로 바꿨다. 누리꾼들은 대부분 고개를 갸웃했다. ‘잘생기다’에 동작성이 있나? 상태를 나타내는 말 아닌가? 이게 의문의 핵심이었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오래전부터 ‘잘생기다’를 동사로 분류해 왔다.
의미는 품사 가르는 기준 안 돼
국어에서 품사를 분류하는 기준은 단어 의미와 형태, 기능이다. 이때 의미는 그리 중요하게 보지 않는다. 의미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기도 해 객관적으로 품사를 가르기 어렵기 때문이다. 구조주의 언어학에서는 그보다 형태와 기능을 중심으로 살핀다.
‘잘생기다’를 형용사로 생각하는 사람은 그 의미가 동작이 아니라 상태를 나타낸다고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즉 동작성이 있으면 동사, 상태나 성질을 나타내면 형용사라고 구별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구별은 안정적이지 않다. 예를 들어 보자. ‘늙다’는 동사일까 형용사일까? 대부분은 ‘늙다’가 동작성보다 상태의 의미를 더 많이 갖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니 형용사로 보면 될까? 그렇지 않다. 이 말은 동사다. “너, 그렇게 고민 많이 하면 빨리 늙는다” 같은 데서 보듯이 동사의 대표적 활용 지표인 ‘-는다’가 가능하다.
‘잘생기다’도 마찬가지다. 의미상으로는 상태를 나타내지만 형태상으로는 동사다. 그러면 형태란 게 무엇인가? 이걸 이해하는 게 핵심이다. 이번 정보 수정의 근거가 된 것이기도 하다. 배주채 가톨릭대 국어국문과 교수가 이에 관해 잘 구명했다.(<‘잘생기다’류의 품사, 한국학연구>. 아래는 이 논문을 토대로 정리한 것이다.)
“잘생겼다”는 완료상… 동사에서만 가능
품사 분류에서 형태를 살핀다는 것은 동사/형용사의 경우 어떤 방식으로 활용하는지를 본다는 뜻이다. 대표적인 게 △종결어미 ‘-는다/ㄴ다’가 붙어 현재를 나타내면 동사로 본다는 규칙이다. 이 외에도 몇 가지 더 있다. △종결어미 ‘-다’가 붙어 현재를 나타내면 형용사다. △선어말어미 ‘-었’이 붙어 현재를 나타내면 동사다. △관형사형 어미 ‘-는’이 붙어 현재를 나타내면 동사다. 이 네 가지 기준 중 하나만 만족하면 해당 품사로 분류한다.
‘잘생기다’는 선어말어미 ‘-었’이 붙어 현재를 나타낸다는 점에서 동사로 판정됐다. “그는 참 잘생겼다”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 상태를 나타낸다. 대표적인 과거 표시 형태소인 ‘-었’은 현재완료상을 나타내는 데도 쓰인다. “합격 소식을 지금 막 들었다”에서 ‘들었다’는 과거시제가 아니다. ‘지금 막’이라는 부사와 어울려 쓰인 데서도 알 수 있듯이 현재 상황을 나타내는 것이다(이익섭/임홍빈, ‘국어문법론’). 이에 비해 ‘예뻤다, 슬펐다’처럼 형용사에서는 ‘-었’이 늘 과거를 나타낸다. 안상수 전 금성출판사 사전팀장은 “이런 완료상은 오로지 동사에서만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잘생기다'는 형용사 같지만 동사예요](https://img.hankyung.com/photo/201712/01.15463567.1.jpg)
‘잘생기다’가 동사라고 해서 ‘잘생겨지는 중이다’ ‘잘생겨라’ 같은 표현이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잘생기다’는 형태상 동사에 해당하지만 전형적인 동사의 특징을 갖추지는 않았다. 동사와 형용사를 가르는 대표적인 기준인 ‘-는다/ㄴ다’도 배척하고, 명령형 청유형도 안 된다. 활용에 제약이 많은 동사라는 뜻이다.
홍성호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