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이란?

완전히 새로운 발견의 과정 아닌 기존 기술들이 재조합되는 과정

이전엔 재조합될 수 없다 여겨진 게 디지털로 결합되고 새 가치 창출

재조합 시도가 혁신 창출하려면 다양한 주체의 오픈 이노베이션 필요
[4차 산업혁명 이야기] 인류의 혁신은 끝나지 않았다
“오늘날의 젊은 세대는 부모 세대의 생활수준을 넘어서지 못하는 첫 번째 세대가 될 것이다.” 《미국의 성장은 끝났는가》의 저자 로버트 고든이 혁신 속도가 늦춰진 미국을 연구한 끝에 내린 결론이다. 경제학자 타일러 코웬 역시 비슷한 의견을 제시한다. 2011년 발간된 그의 책 《거대한 침체》에서 미국은 지난 300년간 낮게 달린 과일을 따먹으며 풍족하게 살았지만 최근 40년 동안 낮게 달린 과일은 사라지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나무가 생각보다 헐벗은 상태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고 이야기했다. 즉, 두 경제학자가 비유를 통해 주장한 핵심은 혁신이 고갈됐다는 것이다.

재조합의 혁신

하지만 혁신에 관한 상반된 주장도 존재한다. 2010년 노벨물리학상은 꿈의 신소재라 불리는 ‘그래핀(graphene)’을 발견한 두 명의 러시아 연구자에게 수여됐다. 연필로 사용하는 흑연은 대표적인 그래핀 덩어리로 알려졌지만, 수십 년간 그 누구도 그래핀을 분리해내지 못했다. 하지만 러시아 연구자들은 획기적인 방법으로 0.35㎚에 불과한 그래핀을 분리해냈는데, 그들이 사용한 도구는 바로 ‘스카치테이프’였다. 스카치테이프를 흑연에 떼었다 붙이기를 반복하자 그래핀이 분리된 것이다. 이처럼 일상적인 물건도 전혀 다른 용도로 사용되자, 즉 재조합되자 혁신이 탄생했다.

복잡계 경제학으로 유명한 브라이언 아서는 《기술의 본성》을 통해 발명은 기존에 있는 것들 속에서 찾아내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며 우연한 기회로 탄생한 혁신의 본질을 설명했다. 경제학자 폴 로머 역시 경제성장은 자원을 더 가치 있는 방식으로 재배치할 때마다 이뤄진다고 주장하며 이런 견해를 뒷받침했다. 즉, 이들에 의하면 혁신은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하는 과정이 아니라 기존의 기술들이 재조합되는 과정이다. 다시 말해 수많은 가능성으로 인해 혁신은 결코 고갈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범용기술로서의 정보통신기술

지난 시기의 기술발전 및 경제성장의 역사가 이들 의견이 대립하는 과정이었다면, 앞으로 맞이할 제4차 산업혁명은 이들의 의견이 통합되는 시기가 될 것이다. 혁신이 고갈됐다는 주장은 보다 구체적으로는 경제 발전에 영향을 미치는 기술이 더 이상 출현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과거 세 차례의 산업혁명을 이끈 증기기관과 전력과 같이 파급력 높은 기술은 더 이상 없다는 이야기다. 경제학자들은 이런 기술을 가리켜 ‘범용기술’이라고 정의했다. 경제 전반의 생산성을 크게 향상시킴으로써 생산량을 대폭 늘릴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기술이라는 의미다.

이들 경제학자의 우려와 같이 더 이상 출현하지 않을 것처럼 보였던 범용기술은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으로 다시 논의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범용기술로 인정받은 정보통신기술은 기존에 존재하는 아이디어를 재조합해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내는 도구로서 활발히 사용되기 시작했다. 기계들의 조합에 불과했던 자동차는 디지털 기술과 만나 수많은 도로정보를 저장하고, 분석해 행동할 수 있는 자율주행차로 발전했고, 사회 구성원 간의 만남은 디지털 기술과 만나 페이스북으로 대표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탈바꿈됐다. 더 나아가 아날로그 필름으로 인화되던 사진이 디지털 기술과 만나자 인터넷을 통한 공유가 가능해졌다. 사진공유 앱인 인스타그램은 2012년 페이스북에 약 10억달러에 인수됐다. 디지털 기술이 다양한 기술의 재조합을 이끄는 범용기술로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내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화와 사물인터넷

이런 재조합 혁명의 이면에는 ‘디지털화’라는 현상이 숨어있다. 경제학자 칼 샤피로와 할 배리언은 《정보법칙을 알면 .COM이 보인다》에서 디지털화를 ‘정보를 비트의 흐름으로 부호화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다시 말해 사진, 동영상, 문자 등 모든 매체로부터 나오는 정보를 디지털 언어인 0과 1로 바꾸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인터넷의 등장 이후 웹상에서만 가능했던 디지털화는 오늘날 ‘사물인터넷’ 기술의 등장으로 전 방위로 확산되고 있다. 사물인터넷은 사물과 무선 인터넷이 달린 센서의 조합을 의미한다. 즉, 디지털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작은 센서가 사물에 부착되자 사물의 행동 정보가 모두 0과 1로 변환돼 전송됨으로써, 이전에는 재조합될 수 없다고 여겨지던 움직임들이 결합돼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옷에 부착된 센서가 0과 1의 언어로 체온 정보를 에어컨에 부착된 센서에 전송하면 체온에 맞게 바람의 온도가 자동 조절되고, 창문에 부착된 센서가 채광에 대한 정보를 0과 1의 언어로 조명에 부착된 센서에 전달해 그 강도를 조절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 이야기] 인류의 혁신은 끝나지 않았다
4차 산업혁명은 디지털화와 재조합 혁신을 가능하게 한 디지털 기술이 전 분야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전혀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이런 혁신 과정의 약점은 재조합 가능성이 존재하는 기술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사물인터넷을 통한 폭발적인 정보의 증가 또한 이런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많은 재조합의 시도가 필요하다면, 더 많은 사람이 이 과정에 참여하면 된다. 즉 ‘오픈 이노베이션’이 필요하다. 미 항공우주국이 해결하지 못한 과학적 난제 166개를 웹을 통해 일반인들에게 공개하자 다양한 의견이 모여 49가지의 문제를 해결했다. 새롭게 맞이할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디지털화가 중심이 된 재조합 혁신이 고갈되지 않는 혁신의 원천임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김동영 < KDI 전문연구원 kimdy@kdi.re.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