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외환위기 넘긴 뒤 국가위상 더 올라갔죠
20년 전 국제통화기금(IMF)에 자금을 요청할 당시 한국 경제는 말 그대로 ‘위기’ 자체였다. ‘나라의 곳간’격인 외환보유액은 200억달러를 밑돌 정도로 바닥을 드러냈고, 1997년 한 해에만 1만7000여 개 기업이 도산했다. 국가신용등급은 줄줄이 낮아지며 ‘투기등급’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한국 경제는 적어도 수치적으로는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로 위기를 극복하고 국제적 위상도 높아졌다.
외환보유액 세계 9위 국가로우리나라가 IMF에 자금 지원을 요청한 것은 ‘총체적 경제 부실’의 결과였다. 1997년 1월 철강·건설이 중심이었던 국내 기업 서열 14위 한보그룹의 부도를 시작으로 기아자동차 등 굵직굵직한 기업들이 줄줄이 파산했다. 한 해에만 1만7000여 개 기업이 파산한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다. 한국 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커진 외국인들은 자금을 빼나가기 시작했고, 주가는 크게 하락했다. IMF에 자금 지원을 요청한 바로 전 해인 1996년에는 경상수지 적자가 239억달러로 사상 최대치에 달했다.
기업의 연쇄 부도와 경상수지 적자 등으로 ‘나라의 곳간’격인 중앙은행(한국은행)의 외환보유액은 완전 고갈 상태에까지 이르렀다. 1996년 말 외환보유액은 불과 332억달러였으며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하기 직전에는 200억달러도 밑돌았다. 한마디로 나라 빚을 갚은 돈이 거의 없었다는 얘기다. 현재 외환보유액 3845억달러(10월 말 기준·세계 9위)를 감안하면 당시 외환이 얼마나 부족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1997년 초 달러당 1000원대 안팎에서 움직이던 원·달러 환율은 그해 말 2000원에 육박했다. 국내에서 유통되던 달러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달러값이 두 배 정도 비싸진 것이다(원화 가치 급락). 현재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1100원 안팎으로, 원화 강세가 수출에 부담을 주는 상황이 됐다. 그만큼 국내의 달러 유동성이 풍부하다는 얘기다. ‘경제의 거울’인 주가는 1995년 1200선 가까이까지 올랐다가 IMF와 국제금융에 합의한 97년 12월에는 400선을 밑돌았고 이듬해 6월에는 280까지 급락했다. 현재 주가지수(코스피)는 2500을 웃돌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 중이다.
캐나다와 무제한 통화스와프 체결
한국이 20년 전처럼 외환위기에 처할 가능성은 현저히 낮아졌다. 특히 한국이 외환 유동성 위기에 처했을 때 캐나다달러를 무제한으로 빌릴 수 있는 파격적 조건의 통화스와프를 체결함으로써 ‘외환시장의 안전판’이 더 튼튼해졌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15일(현지시간) 오타와에 있는 캐나다중앙은행 본부에서 스티븐 폴로즈 총재와 통화스와프 계약서에 서명했다. 통화스와프는 외화가 바닥났을 때 미리 정한 환율로 자국 통화를 상대국 통화로 교환하는 거래다. 일종의 ‘외화 안전판’으로, 가계로 따지면 마이너스 통장과 같다.
이번 계약은 만기와 한도를 미리 정하지 않은 파격적인 조건으로 이뤄졌다. 위기 발생 시 우리가 원하는 만큼, 원하는 기간에 캐나다달러를 빌려 쓸 수 있다는 의미다. 이 총재는 “통화스와프 대상이 사실상 기축통화란 점에서 2008년 금융위기 때 미국과 통화스와프를 체결한 이래 가장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캐나다달러는 유로화 엔화 파운드화 등과 함께 준(準)기축통화 대접을 받는다.
투기등급에서 ‘우량등급’ 국가로
국가신용등급은 한 나라가 빚(국채)을 갚을 능력과 의지가 어느 정도인지를 등급으로 나타낸 것이다. 경제성장률이나 잠재성장률, 국가부채, 노동시장의 유연성, 정치적 안정 등을 두루 평가해 등급을 부여한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우리나라의 국가신용등급은 가파르게 곤두박질쳤다. 국제 3대 신용평가사인 무디스의 경우 IMF에 구제 금융을 신청하기 직전까지 한국에 부여한 A3등급을 불과 한 달도 안돼 투자부적격(투기)등급인 Ba1으로 4단계나 떨어뜨렸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나 피치 등 다른 신용평가사도 마찬가지였다.
현재 우리나라 국가신용등급은 국내총생산(GDP) 세계 3위인 일본이나 주요 2개국(G2)으로 불리는 중국보다 높다. 무디스가 부여한 등급은 위에서 세 번째로 높은 Aa2로 일본 중국보다 각각 두 등급이 높다. S&P 등급 역시 일본 중국보다 두 단계가 높다. 빚을 갚을 능력이 없어 투기등급 국가로 낙인찍혔던 대한민국이 ‘국제적 신용이 아주 좋은’ 나라가 된 것이다. 경직된 노동시장 개혁, 규제 완화 등의 과제가 남았지만 외환위기 20년 만에 한국의 위상이 크게 높아진 것은 분명하다.
◆NIE 포인트
IMF 외환위기 당시 우리나라 경제가 어떠했는지를 알아보자.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구체적 내용도 살펴보자.
신동열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shin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