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식'은 좀 어려운 한자어다. 서(棲)는 '깃들이다, 살다'라는 뜻이다. 나무에 새가 앉을 때 붙잡는 가지란 뜻을 담은 한자다. 여기서 보금자리, 터전이란 뜻으로 쓰이게 됐다. '깃들이다'의 사전 풀이 역시 '조류가 보금자리를 만들어 그 속에 들어 살다'이다.
겨울이 시작된다는 입동(立冬·11월7일)을 지나면서 날씨가 완연하게 쌀쌀해졌다. 전국 곳곳에는 아직 억새와 갈대숲이 계절의 끝자락을 붙들며 늦가을 정취를 더한다. ‘화왕산 억새 서식지의 은빛 물결….’ ‘황금 물결 출렁이는 순천만 갈대 서식지….’ 이런 데 나오는 ‘서식지’란 말을 어떻게 봐야 할까? 10여년 전 ‘말짱글짱’이란 문패로 서식지의 용법을 소개한 적이 있다. 당시엔 틀린 표현으로 보았으나 지금은 달라졌다. 이들도 당당히 바른 어법이 됐기 때문이다.
‘서식’은 본래 동물에 쓰던 말
당시 글의 일부를 살펴보자. <“강원도 정선의 한 깊은 산속, 멸종 위기 식물인 한계령풀이 자라고 있습니다. 다른 지역에서 발견된 군락지와 면적은 비슷하지만 서식지 환경은 다릅니다.” 멸종 위기 식물을 강원도 산 속에서 발견했다는 소식을 전한 방송사 뉴스 대목이다. 여기서 ‘서식’은 틀린 말이다. 서식(棲息)은 ‘동물이 깃들여 삶’을 뜻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서식’은 그렇게 써왔다. 1999년 나온 표준국어대사전도 마찬가지였다. 그 용례로 ‘서식 환경/서식 조사/희귀 동물의 서식을 확인하다’를 들었다. 2010년까지만 해도 국립국어원은 ‘서식’을 동물이 깃들여 삶, ‘서식지’를 동물이 깃들여 사는 곳으로 설명했다.
그런데 이후 인터넷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서식 풀이를 ‘생물 따위가 일정한 곳에 자리를 잡고 삶’으로 바꿨다. 동물을 생물로 바꾸고, 이에 맞춰 ‘수생 식물 서식’이란 용례를 추가한 것이 핵심이다. 식물에도 ‘서식’을 쓸 수 있게 됐다는 뜻이다. 사전 풀이의 변화로 보면 그동안 써오던 ‘서식’이란 말이 의미 확대를 이룬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니 ‘백로 서식지’뿐만 아니라 ‘철쭉 서식지’니 ‘태백산 주목 서식지’같이 식물에 쓴 표현도 규범적 정당성을 얻은 것이다.
지금은 ‘식물 서식’도 가능한 표현
그런데 이런 뜻의 변화와 쓰임새 확대는 한편으로 아쉬움도 남긴다. 말이란 세월이 흐르면서 바뀌기도 하고 달라지는 일이 흔하다. 다만 그것은 우리말의 정교함과 논리성 측면을 훼손하지 않는 쪽이라야 바람직할 것이다. ‘서식’의 경우는 오히려 말의 쓰임새가 넓어지면서 기존에 있던 섬세한 구별이 무뎌졌다.
‘서식’은 좀 어려운 한자어다. 서(棲)는 ‘깃들이다, 살다’라는 뜻이다. 나무에 새가 앉을 때 붙잡는 가지란 뜻을 담은 한자다. 여기서 보금자리, 터전이란 뜻으로 쓰이게 됐다. ‘깃들이다’의 사전 풀이 역시 ‘조류가 보금자리를 만들어 그 속에 들어 살다’이다. 이 말이 어렵게 느껴지는 까닭은 우리말에서 이 글자가 쓰이는 사례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식(息)은 ‘(숨을)쉬다’란 뜻으로 많이 쓰인다. ‘순식간(瞬息間)’이라고 하면 깜짝일 순, 숨쉴 식, 사이 간, 즉 ‘눈 한 번 깜짝일 사이, 숨 한 번 쉴 사이처럼 짧은 동안’이란 뜻이다. 그래서 서식은 본래 동물이 깃들여 산다는 뜻으로 쓰던 말이었다. 이를 생물로 확대한 게 지금의 서식 풀이이고 쓰임새다. 어쨌거나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이제 ‘식물 서식’이란 표현도 가능해졌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식물의 경우 대개 하나의 개체만 있는 게 아니라 집단으로 자라고 있을 터이므로 ‘군락지(群落地)’란 말을 써도 좋다. 하지만 서식이나 군락 같은 한자말보다는 ‘자라다, 살고 있다’란 말을 쓰는 게 더 쉽고 자연스럽다. ‘서식지’는 ‘사는 곳’이라 하면 된다.
홍성호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hymt4@hankyung.com
겨울이 시작된다는 입동(立冬·11월7일)을 지나면서 날씨가 완연하게 쌀쌀해졌다. 전국 곳곳에는 아직 억새와 갈대숲이 계절의 끝자락을 붙들며 늦가을 정취를 더한다. ‘화왕산 억새 서식지의 은빛 물결….’ ‘황금 물결 출렁이는 순천만 갈대 서식지….’ 이런 데 나오는 ‘서식지’란 말을 어떻게 봐야 할까? 10여년 전 ‘말짱글짱’이란 문패로 서식지의 용법을 소개한 적이 있다. 당시엔 틀린 표현으로 보았으나 지금은 달라졌다. 이들도 당당히 바른 어법이 됐기 때문이다.
‘서식’은 본래 동물에 쓰던 말
당시 글의 일부를 살펴보자. <“강원도 정선의 한 깊은 산속, 멸종 위기 식물인 한계령풀이 자라고 있습니다. 다른 지역에서 발견된 군락지와 면적은 비슷하지만 서식지 환경은 다릅니다.” 멸종 위기 식물을 강원도 산 속에서 발견했다는 소식을 전한 방송사 뉴스 대목이다. 여기서 ‘서식’은 틀린 말이다. 서식(棲息)은 ‘동물이 깃들여 삶’을 뜻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서식’은 그렇게 써왔다. 1999년 나온 표준국어대사전도 마찬가지였다. 그 용례로 ‘서식 환경/서식 조사/희귀 동물의 서식을 확인하다’를 들었다. 2010년까지만 해도 국립국어원은 ‘서식’을 동물이 깃들여 삶, ‘서식지’를 동물이 깃들여 사는 곳으로 설명했다.
그런데 이후 인터넷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서식 풀이를 ‘생물 따위가 일정한 곳에 자리를 잡고 삶’으로 바꿨다. 동물을 생물로 바꾸고, 이에 맞춰 ‘수생 식물 서식’이란 용례를 추가한 것이 핵심이다. 식물에도 ‘서식’을 쓸 수 있게 됐다는 뜻이다. 사전 풀이의 변화로 보면 그동안 써오던 ‘서식’이란 말이 의미 확대를 이룬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니 ‘백로 서식지’뿐만 아니라 ‘철쭉 서식지’니 ‘태백산 주목 서식지’같이 식물에 쓴 표현도 규범적 정당성을 얻은 것이다.
지금은 ‘식물 서식’도 가능한 표현
그런데 이런 뜻의 변화와 쓰임새 확대는 한편으로 아쉬움도 남긴다. 말이란 세월이 흐르면서 바뀌기도 하고 달라지는 일이 흔하다. 다만 그것은 우리말의 정교함과 논리성 측면을 훼손하지 않는 쪽이라야 바람직할 것이다. ‘서식’의 경우는 오히려 말의 쓰임새가 넓어지면서 기존에 있던 섬세한 구별이 무뎌졌다.
‘서식’은 좀 어려운 한자어다. 서(棲)는 ‘깃들이다, 살다’라는 뜻이다. 나무에 새가 앉을 때 붙잡는 가지란 뜻을 담은 한자다. 여기서 보금자리, 터전이란 뜻으로 쓰이게 됐다. ‘깃들이다’의 사전 풀이 역시 ‘조류가 보금자리를 만들어 그 속에 들어 살다’이다. 이 말이 어렵게 느껴지는 까닭은 우리말에서 이 글자가 쓰이는 사례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식(息)은 ‘(숨을)쉬다’란 뜻으로 많이 쓰인다. ‘순식간(瞬息間)’이라고 하면 깜짝일 순, 숨쉴 식, 사이 간, 즉 ‘눈 한 번 깜짝일 사이, 숨 한 번 쉴 사이처럼 짧은 동안’이란 뜻이다. 그래서 서식은 본래 동물이 깃들여 산다는 뜻으로 쓰던 말이었다. 이를 생물로 확대한 게 지금의 서식 풀이이고 쓰임새다. 어쨌거나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이제 ‘식물 서식’이란 표현도 가능해졌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식물의 경우 대개 하나의 개체만 있는 게 아니라 집단으로 자라고 있을 터이므로 ‘군락지(群落地)’란 말을 써도 좋다. 하지만 서식이나 군락 같은 한자말보다는 ‘자라다, 살고 있다’란 말을 쓰는 게 더 쉽고 자연스럽다. ‘서식지’는 ‘사는 곳’이라 하면 된다.
홍성호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hymt4@hankyung.com